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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이효석의 메밀밭도, 무덤도 없는 봉평…고향 맞아?

중앙일보 2020.11.12 13:00

[더,오래] 조남대의 은퇴일기(2) 

은퇴한 베이비부머가 제2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부딪히는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풀어간다. 친구와의 관계, 취미활동, 손주 육아 문제, 경제적 어려움, 자녀와의 갈등 등 은퇴자가 겪는 일상을 담담하게 기술한다.〈편집자〉  

 
올해 추석에는 코로나 19로 인해 차례를 지내지 않기로 하고 아내와 함께 무작정 여행을 떠났다. 강원도 쪽으로 방향을 정하고 달리다 보니 몇 년 전에 가본 대관령 하늘목장이 생각났다. 휴게소에서 커피를 산 다음 차창 밖 풍경을 감상하며 기분 좋게 달렸다.
 
하늘목장 입구에 도착하자 안개가 자욱한 날씨에도 가족 나들이객이 많다. 정상까지 쉬엄쉬엄 걸어갔으면 좋으련만 날씨가 좀 쌀쌀해 트랙터 마차를 탔다. 바퀴가 내 키보다 더 큰 트랙터는 40명이나 탄 마차를 끌고도 조금도 힘든 기색 없이 정상까지 올라간다. 날씨가 좋으면 풍력발전기가 돌아가는 멋진 풍경뿐 아니라 동해까지 훤히 볼 수 있을 텐데 자욱한 안개 때문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아 애석하다.
 
문득 요양병원 침대에 누워 힘없이 쳐다보는 어머니의 흐릿한 눈망울을 보는 것 같다. 추석을 맞아 자식들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실 텐데 코로나로 인해 면회가 안 되니 얼마나 외로우실까. 죄송한 마음이 안개처럼 내 몸속으로 스며든다.
 
아내와 함께 무작정 여행을 떠났다. 강원도 쪽으로 방향을 정하고 달리다 보니 몇 년 전에 가본 대관령 하늘목장이 생각났다. 안개가 자욱한 하늘목장 정상. [사진 조남대]

아내와 함께 무작정 여행을 떠났다. 강원도 쪽으로 방향을 정하고 달리다 보니 몇 년 전에 가본 대관령 하늘목장이 생각났다. 안개가 자욱한 하늘목장 정상. [사진 조남대]

 
아무 준비 없이 오다 보니 반소매 차림이라 한기를 느낄 정도로 추워 곧바로 하산하는 마차를 타고 중간쯤에서 내려 걸었다. 도중에 만난 안개 자욱한 숲속 오솔길은 그림에서나 봐왔던 환상적인 풍경이다. 다행히 멋진 장면을 보게 되어 정상에서 아무것도 못 본 아쉬움이 다소나마 해소되었다.
 
아내 친구 집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정동진을 거쳐 안목해변의 커피 거리를 찾았다. 4층 정도의 가게들이 바다를 바라보고 500m 이상 늘어서 있는데 대부분이 카페다. 여기가 강릉에서 제일 붐비는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카페마다 들어찬 젊은 연인은 커피와 빵을 앞에 두고 사랑을 속삭인다. 싱그러움이 물씬 풍긴다. 내 몸속에 웅크리고 있던 젊은 혈기가 덩달아 솟아나는 것 같다.
 
커피 두 잔을 들고 제일 높은 4층으로 올랐다. 짙푸른 바다와 맞닿아 있는 하늘에는 흰 구름이 옅게 떠 있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가 우울하고 답답했던 가슴을 확 뚫어 준다. 해변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물살을 가르며 신나게 달리는 모터보트에 매달린 젊은이의 환호성이 나를 학창 시절로 되돌아가게 한다. 뛰어 내려가 보트를 타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지만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구경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은 생각에 발목이 잡혀 움직이지 못한다. 마음만 젊었다는 것이 탄로 났다.
 
안개 자욱한 숲속 오솔길은 그림에서나 봐왔던 환상적인 풍경이다.

안개 자욱한 숲속 오솔길은 그림에서나 봐왔던 환상적인 풍경이다.

 
커피 거리 옆 소나무 숲 사이로 3km에 걸쳐 쭉 이어진 송정 해안 도로에 접어들자 시원한 바닷바람과 솔향에 취해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차를 세웠다. 숲 사이로 햇볕이 들어와 멋진 광경을 연출하는 소나무를 카메라에 담았다. 숲속 간이의자에서 해변을 바라보고 책을 읽는 노신사를 발견하자 너무나 멋있어 발걸음을 멈췄다. 나도 저런 여유를 가져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쉬엄쉬엄 명상도 하면서 여행을 해 보고 싶은데 호기심 많고 방랑기 있는 성격 때문에 그러지 못한다. 이제는 여유를 갖고 여행을 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또 다른 한편에는 다음 목적지인 봉평으로 이미 떠난다.
 
봉평은 여러 번 다녀온 곳이지만 지금쯤이면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을 것 같아 자동차를 급하게 몰았다. 지난여름 잦은 비로 메밀꽃은 피어 있지만 제대로 자라지 못해 키가 20〜30cm 정도로 작은 데다 듬성듬성 있어 볼품이 없다. 해안가 모래사장에 해초가 드문드문 자라고 있는 것 같다. 코로나로 인해 축제가 취소돼 관리가 소홀했던 걸까? 소금을 뿌려놓은 것 같은 하얀 메밀밭을 기대했는데 볼 수 없어 너무나 아쉬웠다. 
 
정동진을 거쳐 안목해변의 커피 거리를 찾았다. 4층 정도의 가게들이 바다를 바라보고 500m 이상 늘어서 있는데 대부분이 카페다.

정동진을 거쳐 안목해변의 커피 거리를 찾았다. 4층 정도의 가게들이 바다를 바라보고 500m 이상 늘어서 있는데 대부분이 카페다.

 
고교 시절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을 읽을 때의 그 감동이 많이 퇴색되기는 했지만, 짜릿했던 느낌은 아직도 뇌리에서 맴돌고 있어 이효석 문학관으로 향했다. 문학관에는 생애와 문학세계, 작가 활동 등에 대한 것뿐 아니라 메밀의 효능과 영양에 대해서까지 자세히 설명해 놓은 것이 좀 특이했다.
 
이효석은 유년기에는 봉평과 서울을 오가며 보내다가 결혼 후 함경도 경성과 평양에서 교사생활을 하는 등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며 살았다. 사후에도 한 곳에 있지 못하고 평창 진부에 안장되었다가 영동고속도로 개설로 용평으로 이장된 후 어떤 연유인지 지금은 파주공원묘지에 있다. 죽어서도 고향 땅에 묻히고 싶어 하는 마음을 헤아렸는지 문학관 위쪽에는 가묘를 조성해 놓고 그가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추석임에도 고향을 갈 수 없는 안타까운 나의 마음은 고향으로 가지 못하고 파주에 누워 있는 이효석 못지않은 것 같다.
 
오랜만에 가져보는 여유로움이지만 조상님과 어머니를 뵙지 못하여 마음 한구석이 쓸쓸하고 허전하다.

오랜만에 가져보는 여유로움이지만 조상님과 어머니를 뵙지 못하여 마음 한구석이 쓸쓸하고 허전하다.

 
예년 같으면 교통체증을 우려해 새벽같이 고향으로 달려갔을 텐데 코로나로 인해 추석임에도 불구하고 한가롭게 여행을 다녀왔다. 오랜만에 가져보는 여유로움이지만 조상님과 어머니를 뵙지 못하여 마음 한구석이 쓸쓸하고 허전하다. 36년 동안 한 번도 빠짐 없이 시집의 명절 차례에 동행해 준 아내가 고맙다. 이번 여행으로 그동안 고생한 아내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됐다면 더 바람이 없겠다. 여행은 항상 새로운 활력과 깨달음을 준다.
 
동북아경제협력위원회 행정위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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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대 조남대 동북아경제협력위원회 행정위원장 필진

[조남대의 예순에 떠나는 배낭여행] 해외여행을 여러 번 해 본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패키지여행을 다녀보면 빠듯한 일정으로 관광지를 옮겨 다니기에 바쁠 뿐, 시간이 지나면 남는 것이 별로 없다. 나이가 들어 은퇴하자 좀 느긋하게 여유를 갖고 내 마음대로 여행을 하고 싶어졌다. 그러려면 나 혼자나 몇 명이 배낭여행을 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영어 실력이 부족하고, 인터넷을 활용하여 검색하는 것도 서툴고, 순발력도 떨어진 데다 용기나 자신감도 없다. 주변에서 하면 된다는데 말처럼 쉽지 않다. 그러나 이번에 남자 3명 여자 2명 등 5명이 의기투합하여 한 달 일정으로 동남아 4개국 배낭여행을 떠났다. 과연 할 수 있는지, 어떤 난관이 기다리는지 함께 떠나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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