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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마비·대상포진…'정치인 스트레스'에 판사들이 쓰러진다

중앙일보 2020.11.11 16:01
심장마비로 숨진 이모 부장판사가 근무했던 서울서부지방법원. [뉴스1]

심장마비로 숨진 이모 부장판사가 근무했던 서울서부지방법원. [뉴스1]

"술도 거의 안 마시는 분이었는데…"

윤미향 의원의 사건을 맡았던 서울서부지방법원의 이모(54) 부장판사가 10일 심장마비로 숨지자, 그의 동료 판사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온화한 성격으로 배석 판사와도 잘 어울렸던 그를 기억하는 한 부장판사는 "술도 거의 안 마시는 분이었다. 정치적 사건을 맡으며 스트레스가 상당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3년 연속 형사합의부 재판장 맡아  

올해 2월 서울남부지법에서 서울서부지법으로 전보된 고(故) 이 부장판사는 윤 의원 사건과 '재산축소 신고' 혐의로 기소된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 사건을 맡고 있었다. 그외에도 판사들이 꺼리는 형사합의부 재판장으로 수백억원대 사기 사건과 살인사건, 성범죄 사건에 대한 선고를 해왔다. 
 
이 부장판사는 지난 2년간 근무했던 서울남부지법에서도 형사항소부를 맡아 손혜원 전 의원의 '목포 부동산' 몰수보전 청구 인용 결정을 내렸다. 판사들이 가장 꺼리는 형사합의부 재판장을 한 판사가 3년 연속 맡는 것은 이례적이다. 수도권에 근무하는 부장판사는 "형사사건을 계속 맡으시며 스트레스가 쌓여왔던 것 같다"고 했다.
 
10일 심장마비로 숨진 이모 부장판사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윤미향(사진) 의원 사건의 재판장이었다. [연합뉴스]

10일 심장마비로 숨진 이모 부장판사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윤미향(사진) 의원 사건의 재판장이었다. [연합뉴스]

법원 내부에선 이 부장판사의 죽음을 단순한 과로사만으로 보지 않는다. 판사 개인에 대한 정치권의 거센 비난과 그 지지자들의 신상털이, 판결에 대한 대대적인 관심이 쏠린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김경수 2심 판사 대상포진, 1심 판사 신변보호 요청 

최근 김경수 경남지사의 항소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한 함상훈 재판장도 대상포진을 앓았다. 얼굴에 수포가 번질만큼 심각했다. 함 재판장은 김 지사 판결 뒤에도 김어준씨 등 여권 지지자들로부터 "앞뒤가 안맞는 판결"이란 비난을 받고있다. 지난해 1월 김 지사에게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던 성창호 부장판사는 판결 뒤 법원에 신변보호 요청을 했다. 
 
현직 판사들은 "법원에 대한 비판은 과거에도 있어왔지만 그 강도가 전례없는 수준으로 높아졌다"고 말한다. 올해 광화문 집회를 허용했던 서울행정법원의 박형순 부장판사가 대표적인 사례다. 정세균 국무총리까지 나서 박 부장판사를 비난했다. 여당은 '박형순 금지법'까지 만들었다.
 
지난해 1심에서 김경수 경남지사에게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한 성창호 부장판사는 판결 뒤 법원에 신변보호 요청을 했다. 사진은 2018년 박 전 대통령의 1심 선고공판 당시 모습. [연합뉴스]

지난해 1심에서 김경수 경남지사에게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한 성창호 부장판사는 판결 뒤 법원에 신변보호 요청을 했다. 사진은 2018년 박 전 대통령의 1심 선고공판 당시 모습. [연합뉴스]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재판장인 임정엽 부장판사도 정 교수 지지자들로부터 "적폐판사다""탄핵해야 한다"는 비난을 받는다. 정치인 사건을 맡아본 경험이 있는 한 판사는 "난 잘 버티는 편이었다. 하지만 판사마다 느끼는 강도는 다를 것"이라 말했다. 
 

'웰빙 판사'라지만 현업에선 과로가 일상화  

정치적 사건을 맡는 판사들의 건강에만 경고등이 켜진 것은 아니다. 2018년과 2015년엔 과로로 2명의 여성 판사들이 목숨을 잃었다. 사인은 모두 심정지였다. 대법원에서 근무하는 한 재판연구관은 "대법원에도 대상포진을 앓는 판사들이 여럿 있다"고 말했다.
 
최근 민사 미제 사건이 늘어나며 '웰빙 판사'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하지만 현업에 있는 대다수의 판사들은 과로에 시달린다. 차성안 서울서부지방법원 판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실심(1·2심)의 법관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지방법원의 한 지원장은 "과로가 일상화된 한국 사회의 문화에서 법원도 예외가 되진 못하는 것 같다"고 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달 28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시정연설이 끝난 뒤 퇴장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달 28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시정연설이 끝난 뒤 퇴장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김명수 대법원장 더 목소리 내달라" 

법원 내에선 정치권의 판사 공격에 대해 김명수 대법원장이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해주길 바라는 목소리도 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미국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연방 판사를 비난하자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나서 '우리에겐 오바마 판사도, 트럼프 판사도, 부시 판사도, 클린턴 판사도 없다"고 즉각 반박했다"며 "김명수 대법원장이 판사들을 위해 더 나서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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