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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판 ‘82년생 김지영’인가…르포식 에피소드로 화제 ‘산후조리원’

중앙일보 2020.11.10 16:20
tvN 드라마 ‘산후조리원'의 주인공 오현진(엄지원). ″아이만 낳으면 당연히 생기는 게 모성인 줄 알았는데, 난 엄마가 되기 전의 삶이 훨씬 더 익숙하다″며 괴로워한다. 사진 tvN

tvN 드라마 ‘산후조리원'의 주인공 오현진(엄지원). ″아이만 낳으면 당연히 생기는 게 모성인 줄 알았는데, 난 엄마가 되기 전의 삶이 훨씬 더 익숙하다″며 괴로워한다. 사진 tvN

누구도 대놓고 말하지 못했던 진짜 현실이다. 출산 과정은 굴욕감마저 사치스러운  ‘짐승의 세계’ 이고, 평화스런 휴양지처럼 보였던 산후조리원은 오직 젖을 위해 먹고 젖을 위해 운동하고 젖을 위해 마시는 ‘젖의 천국’ 이다. 세 시간에 한 번씩 수유하고 유축하고 잠깐 눈 붙일까 하면 또 수유하고…. 젖 먹이기에 지친 초보 엄마는 “난 너무 피곤하다가도 우리 아기 얼굴만 보면 피로가 딱 풀리던데”란 다른 엄마 말이 이상하고 불편하게 느껴진다.  
 
아름답고 위대한 모성으로 포장돼왔던 출산ㆍ육아 과정의 실상이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지난 2일부터 방송 중인 tvN 월화드라마 ‘산후조리원’에서다. 예능 프로그램 ‘ 롤러코스터’ ‘SNL 코리아’ 등에서 활동했던 김지수 작가가 자신의 3년 전 출산 경험담을 녹여 각본을 쓴  ‘산후조리원’은 “단 한 번의 출산으로 일상과 일ㆍ관계들이 너무나 달라져버린 여자들의 이야기”를 표방한다. 극중 산후조리원 원장(장혜진)의 대사를 빌리자면 “임신은 고달프고 출산은 잔인하고 회복의 과정은 구차”하다. 그 과정을 르포식 에피소드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산후조리원’은 밀리언셀러 소설『82년생 김지영』을 닮았다. 동시대 여성이 보편적으로 겪음직한 경험의 현장을 주인공의 이야기로 그려낸다.
 
tvN 드라마 '산후조리원'. 주인공 오현진(엄지원)이 만삭인 상태로 바이어를 만나는 장면이다. 사진 tvN

tvN 드라마 '산후조리원'. 주인공 오현진(엄지원)이 만삭인 상태로 바이어를 만나는 장면이다. 사진 tvN

‘산후조리원’의 주인공은 마흔두 살의 18년 차 직장인 오현진(엄지원). 초고속 승진을 거듭해 드럭스토어 올리블리의 최연소 상무로 승진한 바로 그 날, 임신 사실을 알게된다. 외국인 바이어 앞에서 양수가 터진 순간에도 침착하게 119에 전화를 걸어 구급차를 부른 ‘완벽’ 커리어우먼이지만, 진통이 시작되면서부터는 평소의 오현진이 아니었다. 드라마는 관장과 제모, 내진 등 그동안의 대중문화 콘텐트에서 드러내지 않았던 출산의 과정까지 다큐처럼 보여준다. 1기 굴욕기, 2기 짐승기, 3기 무통천국기, 4기 대환장파티기, 5기 반드시기쁨기로 나눠진 출산의 단계마다 오현진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접한다. 관장 후 10분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화장실로 뛰어들어갔고, 3초 들이마시고 8초 내뱉는 호흡법은 흉내조차 낼 수 없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지나 아들 ‘딱풀’이를 무사히 낳은 이후의 감정도 예상과 너무 달랐다. ‘뭐가 이렇게 빨갛지? 예쁜건가?’ 아이를 처음 본 순간, 오현진의 마음이었다.  
 
출산 후 회복실을 거쳐 입원실로 왔을 때는 어떤가. 기진맥진해 있는 산모를 옆에 두고 시부모는 “순산했다”며 기쁨에 들떠있다. “아무리 고생스러워도 애기 얼굴 보면 싹 잊혀지는 게 엄마”라는 시어머니에게 친정어머니가 한 마디 한다. “순산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순산이 어디 있어?  내 새끼는 죽다 살아났구만.” 오현진의 눈에 눈물이 핑 도는 순간이고, 시청자들 역시 “겪어본 사람들은 알아들을 만한 내용”이라고 감탄하는 장면이다.  
 
수유 과정의 갈등을 담은 9일 3회 방송에서도 실제 엄마들의 상황이 실감나게 그려졌다. 모유 양이 적어 “이 이상한 젖의 천국에서 난 무능한 젖소”라며 자괴감에 빠진 오현진. “분유를 주면 어떨까…”라고 중얼거리는 그를 산모들의 롤모델인 사랑이엄마(박하선)는 “줄 수 있는 모유를 안 줘서 나중에 애한테 문제가 생기면 평생 후회할 거냐”고 몰아세운다. 이 때 끼어든 미혼모 이루다(최리)의 “분유가 무슨 독약이냐. 요즘 젖소들도 방목해서 행복하게 자란다. 여기 갇혀서 잠도 못자고 스트레스 받는 엄마들의 모유가 더 좋다고 생각하냐”는 반박까지, 현실의 엄마들도 한번쯤 갈등하며 고민해봤을 생각거리다.  
 
총 8부작으로 기획된 ‘산후조리원’은 이제 본격적인 스토리 전개에 들어간다. tvN 측은 “미스터리 요소가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갓 엄마가 된 여성들의 성장을 응원하고 공감하는 내용”이라고 밝혔다. 1∼3회 시청률은 3∼4% 선. 화제성에 비해 소소한 수치다. 이에 대해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3회 한 회 방송 내내 젖 얘기만 하는 등 기존 드라마 시청자들에게 낯설게 보일 수 있어서일 것”이라며 “하지만 엄마에게 불안감ㆍ죄책감을 주입해 모성을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풍자적으로 다뤘다는 점에서 신선하고 빼어난 양성평등 콘텐트”라고 평했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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