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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위험한 레임덕 시작" …대선 불복 이어 국방장관 잘랐다

중앙일보 2020.11.10 05:28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왼쪽)과 마크 에스퍼 미 국방부 장관. 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왼쪽)과 마크 에스퍼 미 국방부 장관. 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을 경질하고 크리스토퍼 밀러 대테러센터장을 국방장관 대행으로 임명했다. 재선에 실패해 두 달여 뒤 퇴임을 앞둔 현직 대통령이 국가안보에 핵심인 국방장관을 교체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공개 반기 든 에스퍼 경질, 밀러 장관대행 임명
NYT "트럼프, 이란 등에 군사작전 수행할까 우려"
"관료 해임으로 조직 불안정, 새 행정부에 타격"

 
미 언론은 대선 불복을 선언한 트럼프 대통령이 인사권을 무기로 흔들리는 고위 관료들을 다잡으려는의도라고 분석했다. 어수선한 정권 교체기에 안보를 책임진 장관을 전격 경질하면서 적대국들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함께 나온다. "위험한 레임덕이 시작된 것일 수 있다"(CNN)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후 트위터를 통해 "매우 존경받는 크리스토퍼 C 밀러 대테러센터장을 국방장관 대행으로 발표하게 돼 기쁘다"면서 "즉각 효력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이어 별도 트윗에서 "밀러는 잘해낼 것"이라며 "마크 에스퍼는 해임됐다. 나는 그의 공직에 감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트윗을 올리기 불과 5분 전 마크 메도스 백악관 비서실장은 에스퍼 장관에게 전화로 해임 사실을 알렸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밀러 장관 대행은 트럼프 대통령의 네 번째 국방장관이 됐다. 대테러센터는 2001년 9·11 테러 이후 테러 관련 정보 수집을 위해 설립된 정보기관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윗으로 에스퍼 국방장관을 경질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윗으로 에스퍼 국방장관을 경질했다.

 
CNN·NYT 등 미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에게 협조하지 않았던 관료들을 해고하는 보복성 인사가 시작된 것일 수 있다고 전했다. 
 
2019년 7월 취임 후 에스퍼 장관은 '예스퍼(Yes-per)'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충성하는 '예스맨'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지난 6월 인종차별 반대 시위 진압에 현역 군인을 투입할 수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 발언에 공개적으로 반대 의견을 내다 눈 밖에 났다.
 
백악관은 지난 6월 1일 평화로운 시위대를 최루탄으로 해산시킨 뒤 사진 촬영 행사를 강행했다.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왼쪽)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따라가 비판받자 나중에 사과했다. [AP=연합뉴스]

백악관은 지난 6월 1일 평화로운 시위대를 최루탄으로 해산시킨 뒤 사진 촬영 행사를 강행했다.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왼쪽)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따라가 비판받자 나중에 사과했다. [AP=연합뉴스]

 
평화로운 시위대를 최루탄으로 해산한 뒤 백악관 앞 교회에 가서 홍보 사진 촬영 행사를 한 트럼프 대통령을 수행한 것이 비판받자 에스퍼는 기자회견에서 "어떤 자리인지 모르고 따라갔다"며 사실상 사과하기도 했다. 
 
이어 노예시대 잔재가 남아있는 남부 연합기 사용을 금지하고, 군부대 명칭도 바꾸겠다고 밝히면서 트럼프 대통령에 또다시 반기를 들었다.
 
지난 7월에는 러시아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을 살해하는 대가로 현상금을 걸었다는 NYT 보도가 나오자 에스퍼는 의회에서 관련 보고를 받았다고 의회에서 시인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에스퍼 장관에 대한 불만이 점점 커졌지만, 대선을 앞두고 민감한 시기에 국방장관 교체는 부적절하다는 공화당 지도부 등 설득에 대선 이후 교체로 가닥을 잡았다. 
 
에스퍼도 대선이 끝나면 결과와 상관없이 사임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NYT는 에스퍼 장관이 사직서에 "나는 헌법을 존중하며 나라를 위해 복무하므로 나를 교체하겠다는 당신 결정을 받아들인다"고 썼다고 전했다.
 
대통령 임기를 두달여 앞둔 시점에서 벌어진 국방장관 교체에 단순한 보복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충성파를 앉혀놓고 독단적인 일을 도모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국방부 관료를 지낸 엘리사 스롯킨 하원의원은 대통령이 임기 만료 72일을 앞두고 국방장관을 해임할 수 있는 이유로 세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첫째, 장관이 무능하거나 잘못한 경우, 둘째 앙심에 의해, 셋째 장관이 거부할 것이 예상되는 행동을 대통령이 하고 싶은 경우라고 했다. 그러면서 "셋째 경우는 매우 걱정스럽다"고 했다.
 
NYT는 "국방부 내부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임기 말에 이란이나 다른 적대국들에 대해 공개적 또는 비밀리에 작전을 개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고 전했다.  

 
존 브레넌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CNN에 출연해 "에스퍼 장관이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무엇을 거절했는지 누가 알겠는가"라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군사적 행동을 할지, 국가안보를 해치는 어떤 정보를 공개하겠다고 위협할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을 "코너에 몰린 호랑이"에 비유하며 "확 달려들 수 있는데, 그에게 아직도 엄청난 권한이 있다는 게 문제"라고 덧붙였다.
 
NYT는 익명의 행정부 관리 2명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은 사람들을 해고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렇게 할 시간이 두 달밖에 남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에스퍼 장관 해임을 온통 조 바이든 당선인의 대선 승리에 쏠린 세간의 관심을 되돌릴 수 있는 기회로 삼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가 자신의 멍든 자존심을 달래기 위해 국가 안보를 사보타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측근인 크리스 쿤즈 상원의원은 CNN에 출연해 "트럼프 대통령이 고위 행정 관료들을 대거 해임해 조직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것은 다음 행정부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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