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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딸 잃고 神 원망한 바이든, 그런 그를 일으킨 ‘두컷 만화’

중앙일보 2020.11.10 05:00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책상 위엔 수십 년간 간직해 온 조그만 액자 하나가 놓여있다. 액자에 담긴 건 두 컷짜리 만화. 그는 평소 "이 만화가 필요할 때마다 나를 겸손하게 만든다"고 말해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책상에는 '만화 액자'(노트북 뒤편)하나가 놓여있다. 그가 1972년 교통사고로 아내와 딸을 잃은 후 신을 원망하며 슬픔에 빠져있자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건넨 것이다. [트위터 캡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책상에는 '만화 액자'(노트북 뒤편)하나가 놓여있다. 그가 1972년 교통사고로 아내와 딸을 잃은 후 신을 원망하며 슬픔에 빠져있자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건넨 것이다. [트위터 캡처]

 

바이든 당선자 책상 위 두 컷 '만화 액자' 눈길
부인과 딸 잃고 방황하던 바이든에 아버지 건네
"왜 나입니까?" 절규에 돌아온 답은 "왜 넌 안되지?"

만화는 미국 유명 작가 딕 브라운(1917~1989년)의 '공포의 해이가르'다. 주인공인 해이가르는 거칠지만 가정적인 바이킹이다. 그는 자신이 탄 배가 폭풍우 속에서 벼락에 맞아 좌초되자 신을 원망하며 하늘을 향해 외친다. "왜 하필 나입니까?(Why me?)". 그러자 신은 그에게 이렇게 되묻는다."왜 넌 안되지?(Why not?)".  
 
바이든 당선인이 수십 년간 간직해 온 만화. 그는 이 만화를 통해 불행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트위터 캡처]

바이든 당선인이 수십 년간 간직해 온 만화. 그는 이 만화를 통해 불행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트위터 캡처]

영국 유명 언론인 피어스 모건은 바이든 당선인의 대선 승리가 확정된 뒤인 7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이 만화에 얽힌 사연을 전했다. 
 
모건에 따르면 바이든 당선인은 2015년 장남 보 바이든이 뇌암으로 세상을 떠난 후 모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모건에게 "피어스, 조 바이든입니다"라고 인사를 건넸다. 모건은 바이든 당시 부통령과 일면식도 없었지만, "개성 있는 목소리"를 듣고 그가 맞다는 것을 확신했다고 했다.
 
바이든 당선인이 장남 보와 끌어 안고 있는 모습. [트위터 캡처]

바이든 당선인이 장남 보와 끌어 안고 있는 모습. [트위터 캡처]

바이든은 모건에게 "아들에 관해 쓴 기사에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어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델라웨어주 법무장관을 지낸 보는 46세에 요절하기 전까지 바이든의 정치적 후계자로 꼽혔다. 전도유망한 젊은 정치인의 죽음을 접한 모건은 '보 바이든은 미국 최고의 대통령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당시 부통령이었던 바이든은 이때 모건에게 이 만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바이든 당선인은 29세였던 1972년 상원의원이 되자마자 부인과 딸을 교통사고로 잃었다. 아들 보와 헌터도 이 사고로 중상을 입었다. 그는 신을 원망하며 왜 하필 자신에게 이런 불행이 닥쳤는지 그 이유를 거듭 묻고 있었다.
 
바이든 당선인이 전 부인 닐리아 헌터, 두 아들 보와 헌터, 딸 나오미와 찍은 가족 사진. 닐리아 헌터와 나오미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트위터 캡처]

바이든 당선인이 전 부인 닐리아 헌터, 두 아들 보와 헌터, 딸 나오미와 찍은 가족 사진. 닐리아 헌터와 나오미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트위터 캡처]

바이든 당선인이 교통사고로 아내와 딸을 잃은 직후인 1973년 1월 장남 보 바이든이 누워있는 병실에서 상원의원 선서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바이든 당선인이 교통사고로 아내와 딸을 잃은 직후인 1973년 1월 장남 보 바이든이 누워있는 병실에서 상원의원 선서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바이든 당선인은 모건과의 통화에서 "당시 아버지는 내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믿음을 잃기 시작했다는 걸 알아차렸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아버지는 내가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작정이었다"고 말했다.  
 
바이든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만화를 넣은 액자를 건넸다. 그 만화가 바로 딕 브라운의 '공포의 해이가르'였다. "아버지는 내가 낙심해 있을 때마다 '얘야, 세상이 네 인생을 책임져야 할 의무라도 있니? 어서 털고 일어나'라고 말해줬다"고 전했다. 이어 "이 만화는 나에게 ‘이미 일어난 일은 합리화할 방법이 없다’,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불행은 찾아올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아버지의 방식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는 이 만화를 통해 "아무리 나쁜 일처럼 보여도 많은 사람이 나보다 훨씬 더 안 좋은 일을 겪고 있고, 위로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들과 '삶의 목적'을 찾으려는 노력을 통해 힘든 일을 극복해 나갈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털고 일어서지 않으면 일어난 일에 짓눌려질 것이다. 나는 처음엔(아버지가 만화를 주었을 때) 그 뜻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아들 보가 세상을 떠난 후에 만화가 주는 메시지가 너무나 소중한 것이 됐다"고 말했다.   
 
바이든 당선인의 아버지 조셉 바이든 시니어(1915~2002년)는 보일러 청소와 중고차 판매 일을 했다. 그는 선거 운동을 하면서 "아버지는 항상 제게 '사람을 평가할 땐 그가 얼마나 자주 쓰러졌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빨리 일어섰느냐를 봐야 한다'고 말씀하셨다"고 자주 말해왔다.
   
조 바이든 당선인이 1985년 딸 애슐리를 안은 채 아들 보와 헌터, 조지 H.W. 부시 부통령(상원의장) 앞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당선인이 1985년 딸 애슐리를 안은 채 아들 보와 헌터, 조지 H.W. 부시 부통령(상원의장) 앞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바이든은 자신의 아들을 기리는 칼럼을 쓴 모건에게 "내가 당신에게 빚을 졌다. 언젠가 갚을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이에 모건은 "당신은 내게 진 빚이 없다. 보에 대한 글은 내가 그렇게 믿기 때문에 쓴 것이다. 보의 죽음은 당신의 가족뿐 아니라 미국에도 크나큰 손실"이라고 답했다.
 
바이든은 모건에게 "아이들을 매일 안아줘라. 자식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며 통화를 마쳤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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