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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호의 시시각각] 외교는 아무나 하나

중앙일보 2020.11.10 00:30 종합 34면 지면보기
남정호 논설위원

남정호 논설위원

지난달 26일 국회에서는 한국 외교의 무력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상황이 벌어졌다. 미국 대선 8일 전에 열린 외교부 국정감사장. 질의에 나선 박진 국민의힘 의원은 바이든 시대를 염두에 둔 외교부의 준비 태세를 따졌다. “공개·비공개로 준비 중”이란 대답이 나오자 박 의원은 바이든 캠프의 외교·안보 핵심 참모인 토니 블링컨 전 국무부 부장관과 미셸 플러노이 전 국방부 차관을 거명했다. 둘 다 국무·국방부 장관과 백악관 안보보좌관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 외교부에서 매긴 바이든 캠프 내 중요도 순위에서 1, 3위를 차지한 핵심 중 핵심이다.
 

바이든 취임 앞두고 소통 부재 심각
외교 수뇌부, 핵심 참모도 못 만나
야당 측 도움 받는 게 현실적 대안

박 의원은 강경화 장관, 최종건·이태호 1·2차관,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김준형 국립외교원장 등 외교부 수뇌부를 차례로 호명하며 “이들을 만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죄다 “없다”는 거였다. 박 의원은 “이런 인사도 안 만나면서 무슨 대미 정책 준비냐”고 호통쳤다. 이에 외교부 측은 “외국의 선거 개입 우려로 바이든 캠프에선 해외 인사와의 접촉을 막고 있다”고 설명했다. 틀린 해명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들을 접해 본 당국자가 외교부 수뇌부에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은 놀랍다 못해 공포스럽다. 둘 다 자주 한국을 드나들던 지한파 인사인 까닭이다. 블링컨은 국무부 부장관으로 취임한 2015년 1월 이후 2년 동안에만 네 번 한국에 왔다. “김치를 좋아한다”는 플러노이도 2016~2017년 미 안보 전문가들을 이끌고 방한해 외교부를 찾았으며 이전에도 “두 번 온 적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 외교가에도 낯익은, 한·미 관계에 깊숙이 관여해 온 인물이란 얘기다. 이 같은 인사들을 외교부 수뇌부가 만난 적이 없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외교부와 바이든 외교라인 간에 소통이 잘될 리 없다.
 
이런 ‘웃픈’ 상황은 문재인 정권의 작품이다. 한반도 문제에 천착해 온 이들과 교분을 쌓아 온 한국 외교관은 당연히 적잖았다. 문제는 현 정부에서 정권을 잡자마자 이들을 잘 아는 북미·북핵통 외교관들을 죄다 적폐로 몰아 내쫓거나 한직으로 내쳤다는 거다. 그러면서 현 정권은 주요 포스트에 전문성과 거리가 먼 친문 인사들을 앉혔다. 지난 9월 현재 문 정부 출범 이래 임명된 42명의 특임 공관장 중 67%인 28명이 이런 케이스라고 한다.
 
과거에도 보수·진보 간 정권이 바뀔 때면 장차관은 으레 교체됐다. 하지만 유능한 고위 외교관들을 별다른 이유 없이 한꺼번에 내쫓진 않았다. 김대중 대통령은 김영삼 정권 때의 홍순영 차관을 장관으로 썼다. 이명박 정권의 초대 외교 수장인 유명환 장관도 노무현 대통령 때 차관을 지냈다.
 
더 기막힌 건 한·중·일 3국 중 바이든 정권과의 불통을 걱정하는 건 우리뿐이라는 점이다. 지난달 초 일본의 시사잡지 프레지던트에는 이런 기사가 실렸다. “스가 요시히데 총리는 오바마 정권 때 관방장관이어서 난항을 겪던 미군기지 문제 등을 논의하며 미국 측과 신뢰를 쌓았다”며 “바이든이 당선될 경우 참모진은 오바마 시대의 멤버로 채워질 전망으로 (스가 총리가) 이들의 사고방식과 버릇까지 꿰뚫고 있어 참으로 든든하다”고. 중국 역시 시진핑 주석 자신이 바이든을 잘 안다. 그가 부주석이던 2009년 1월, 바이든이 파트너 격인 부통령으로 취임한 덕이다. 이후 시진핑이 2013년 주석에 오르기까지 두 사람은 4년간 단독 만찬만 여덟 번 할 정도로 가깝게 지냈다. 이들을 보좌한 미·일, 미·중 담당자들도 서로 잘 알 수밖에 없다.
 
문 정부는 이제 정통 외교관을 홀대한 업보를 치르게 됐다. 이인삼각으로 대북 문제를 함께 풀어야 할 바이든 측 핵심 외교라인과 원활하게 소통할 채널이 사라진 것이다. 더 큰 비극은 그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사실이다. 궁여지책으로 바이든 진영과 친숙한 야당 측 인사들의 도움을 받는 게 그나마 현실적인 방안일 수 있다.
 
남정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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