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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추미애의 묻지마 검찰개혁

중앙일보 2020.11.10 00:27 종합 29면 지면보기
조강수 사회에디터

조강수 사회에디터

2003년 노무현 대통령,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일성은 같았다. 검찰 개혁이었다. 방법이 달랐다. 노무현은 취임 12일 뒤 전국에 생중계되는 ‘검사와의 대화’ 자리를 마련해 직접 대화를 시도했다. 정공법을 택했다. 현장의 젊은 검사들은 브레이크가 없었다. 제왕적 권력을 막 손에 쥔 선출된 권력 앞에서 한 마디도 지지 않았다. 급기야 대통령 입에서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지요”가 튀어나왔다. ‘검사스럽다’는 신조어도 이때 나왔다. 청와대 민정수석이던 문재인 대통령이 이를 지켜봤다. 여야 대선자금 수사 때 노무현은 송광수 검찰총장에게 청와대 핫라인으로 전화를 걸어 청와대에서 만나자고 연락했다. 송 총장이 수사 중에 부적절하다고 말하자 몇초간 생각하다 흔쾌히 수용했다. 설득과 담판, 수용이 노무현 정신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에겐 꿈이 있었다. 국가를 권력적 수단이 아닌 명분과 가치로 이끌고 싶어했다. 그만큼 고통도 컸다. 어찌 보면 대통령도, 정치도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의 양심에 비해 우리 정치는 너무 혼탁했다.”(김병준 『대통령 권력』)
 

검찰개혁, 노무현은 가치에
문 대통령은 힘빼기에 방점
대리인 추는 ‘법무검찰총장’

노 전 대통령에게서 “정치 하지 말라”는 조언을 들었다는 문 대통령은 처음부터 ‘권력적 수단’을 동원해 개혁을 밀어붙였다. 이전의 실패를 교훈 삼아 검찰과의 대화는 목록에서 뺐다. 대신 인사권으로 기반을 뒤흔들었다. 항명의 아이콘 윤석열을 서울중앙지검장에 파격 발탁한 게 취임 9일 만이다. 검찰총장에 발탁하려다 참모들의 만류로 한발 물러났다. 직접 나서는 대신 비검사 출신의 ‘자칭 검찰개혁주의자’ 조국, 정치인 추미애를 연달아 투입했다. 이들의 관심이 검찰의 정치적 중립 보장이라는 가치보다 검찰 힘빼기라는 권한 분산과 노무현 죽음에 대한 제도적 보복에 더 쏠려 있었던 게 패착이었다. 개혁 기관차는 공수처를 대통령 산하로 편제하면서 탈선했다.
 
요즘 추 장관에겐 ‘검찰총·장관’(검찰총장+법무장관), ‘법무·검찰총장’(법무장관+검찰총장)이란 별칭이 붙었다. 눈엣가시 같은 윤석열 총장에게 건건이 시비 걸어 수사지휘권을 박탈해놓고 검찰총장 업무까지 만기친람하고 있다는 비아냥이다. 정치가 검찰을 덮었다는 아우성도 나왔다. 정치가 검찰만 덮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정치에 덮여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마저 질식 직전이다.
 
서소문 포럼 11/10

서소문 포럼 11/10

멀쩡하게 작동하던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수단이 갑자기 공중분해 된 것도 미스터리다. 권력형 비리, 정경유착 냄새가 진동하는 라임펀드와 옵티머스 펀드의 환매중단 사건 수사가 한동안 헤맨 이유다. 마치 누군가 “합수단만 없애도 한 시름 놓을 수 있다”고 조언이라도 한 듯했다.
 
‘너무나 혼탁한 정계’ 출신 장관은 이전에도 있었다. 노무현 정부 때 천정배 장관은 한차례 수사지휘권을 발동했지만 법대로 구체적 사건을 지휘했지 수사지휘권 박탈이나 남발은 하지 않았다. 추 장관 지시의 맹점은 논리와 근거가 박약하다는 점이다. 법조문에 없어도 편리한 대로 해석하고, 해석한 대로 멋대로 밀어붙인다. 오죽하면 검찰총장이 국정감사장에서 “(수사지휘권 박탈이) 위법하다고 생각하지만 법무·검찰에 혼돈이 올까 봐 소송은 참는다”고 했겠나. 검찰 특수활동비 사용 내역을 조사하라고 대검 감찰부에 직접 지시했다가 위법 역풍에 휩싸였다. 법이 복잡하지도 않아 위법임을 알고도 무시했을 가능성이 짙다. 윤 총장을 ‘정치인 총장’이라고 비난한 건 궤변에 가깝다. 정치인 언행과 행보가 나온 배경이 장관의 집요한 찍어내기 시도 때문인데 남 얘기하듯 한다.
 
법 의식 면에서 보면 법무장관 자격이 의심스럽다. 조국 가족 비리는 권력형이 아니라서 큰 문제 아니고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도 별것 아닌데 괜히 호들갑 떤다고 한다. 그런 수사들이 “정부 공격, 정권 흔들기”란다. 전과자·재소자의 주장에 터 잡은 채널A 사건 수사, 라임 사건 관련 수사지휘권 발동에선 음습한 음모의 냄새도 난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법 규범들을 공개적으로 멸시한다”(야스차 뭉크 『위험한 민주주의』)고 한 진단이 연상된다.
 
장관의 총장 찍어내기 계획이 노골화하고 엉뚱한 발언이 계속되자 검사들이 봉기하고 있다. 대전지검의 원전 수사도 “우리 여기 살아있다”는 외침으로 들린다.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장관 독재’의 방식으로 강제해온 모순의 귀결점이다. 이렇게 해서 검찰이 민주화(?)되고 궁극적으로 수사의 정치적 중립성을 쟁취하게 된다면 일등공신은 단연 추 장관일 것이다.
 
조강수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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