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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플래티넘 플랜’ 신기루

중앙일보 2020.11.10 00:15 종합 30면 지면보기
임종주 워싱턴총국장

임종주 워싱턴총국장

늦가을 오후 맬컴 엑스 공원은 을씨년스러웠다. 격렬한 시위가 언제 있기라도 했냐는 듯 적막감 마저 감돌았다. 웨스트 필리로 불리는 필라델피아 서부의 블랙 오크 공원은 1993년 흑인 인권 운동가 맬컴 엑스를 기리기 위해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시위는 10월의 마지막 월요일에 불붙었다. 인근 흑인 거주 지역에서 27살 흑인 월터 월리스가 백인 경찰의 총에 숨지면서부터다.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던 월리스는 집 앞에서 칼을 들고 경찰과 대치했고, 총을 쏘지 말라는 모친의 호소에도 경찰관 2명의 총구에서 10여 발이 발사됐다.
 
시위대가 맬컴 엑스 공원에 모여 경찰의 야만성을 규탄했다. 밤이 깊어지면서 일부가 폭도로 변했다. 약탈과 방화가 이어졌다. 옷 가게가 채 1분도 안 돼 통째로 털리는 CCTV 화면은 아연실색할 정도다. 200명 넘게 체포되고 경찰관 60명이 부상했다. 웨스트 필리 사태는 일주일 남은 대선의 막판 변수로 떠올랐다.
 
글로벌 아이 11/10

글로벌 아이 11/10

바이든 후보는 주저하지 않았다. 사전투표를 하고 나오다 취재진의 질문을 받자 “약탈과 폭력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며 폭력과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같은 민주당 소속의 톰 울프 펜실베이니아 주지사는 방위군 배치를 요청했고, 짐 케니 필라델피아 시장은 야간통행 금지령을 내렸다. 분노로 끓어오르던 맬컴 엑스 공원은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흑인의 투표 행렬은 날이 갈수록 불어났다. 서부 캘리포니아에서 동부 메릴랜드에 이르기까지 사전투표 참여자가 4년 전보다 두세 배에서 최고 열 배까지 늘었다. 흑인의 87%가 바이든 후보에게 몰표를 줬다(워싱턴포스트 분석). 인종차별에 대한 응축된 분노가 극적으로 표출된 데 대해 바이든 후보는 승리 연설에서 특별한 감사를 표했다.
 
이상 기류를 느낀 트럼프 대통령은 첫 TV토론을 앞두고 부랴부랴 흑인에게 선물 보따리를 풀었다. 일자리 3백 만개 창출과 사법제도 개혁, 그리고 노예해방기념일을 국경일로 만들어주겠다는 약속까지. 우리나라 한 해 예산과 맞먹는 5천억 달러(한화 약 560조원) 규모의 지원책에는 ‘플래티넘 플랜’이라는 거창한 이름이 붙었다.
 
그 어젠다를 제시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 후보를 헐뜯는 데 열중했다. 왜 그를 찍어서는 안 되는지 20번이나 거론했다고 한다. 흑인 사회는 알아차렸을 것이다. 본질은 네거티브 전략이었다는 것을. 진정성 없는 신기루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을. 대선을 백인만의 지지로 이길 수 있는 시대는 오래전에 지나갔다. 트럼프 대통령만 그걸 몰랐을까, 아니면 애써 외면했을까? 역사로 남을 또 하나의 반면교사다.
 
임종주 워싱턴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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