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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음지교, '예술가' 큰스님과 '한국 미술사 대가'의 만남

중앙일보 2020.11.09 13:04
정양모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회장(왼쪽)과 통도사 방장 성파스님. [사진 나마갤러]

정양모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회장(왼쪽)과 통도사 방장 성파스님. [사진 나마갤러]

경남 양산 통도사에 수행하며 예술혼을 불태우고 있는 큰 스님 한 분이 있다. 영축총림 통도사 방장인 성파(81)스님이다. 옻나무에서 추출한 옻액과 오방색의 채색염료로 그림을 그려온 스님은 2014년 서울 인사동 한국미술관, 2017년 경남도립미술관에서 대규모 전시를 연 바 있다. 스님 나이 올해 만 여든 하나. 그동안 작업을 쉬지 않고 해온 스님은 지난 여름 통도사 성보박물관에서 큰 전시를 열어 사람들을 다시 한 번 놀라게했다. 100점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풀어놓은 '옻칠민화 특별전'이었다.
 

나마갤러리 특별기획전 11일 개막
정양모 전 박물관장,통도사 성파스님
정 전 관장 도화 29점, 스님 칠화 17점
두 '거장'이 풀어놓은 우리 문화 아름다움

지난 8월 초 통도사를 찾았던 소헌(笑軒) 정양모 (86·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회장)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이 전시장에 가장 오래 머물렀던 관람객 중 한 사람이다. 작품을 보고 또 들여다보며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던 정 전 관장은 그날 지난 10년간 종종 만나왔던 성파스님의 두 손을 꼭 잡고 이렇게 말했다. "스님, 제가 가을에 서울서 전시를 엽니다. 스님 작품을 함께 보여주면 좋겠습니다." 성파스님은 그 자리에서 "관장님께서 그리 말씀하시면 같이 하겠습니다"하고 흔쾌히 대답했다.
 
서울 돈화문로 나마갤러리에서 정 회장과 성파스님이 함께 참여하는 특별기획전 '지음지교 (知音之交)'가 11일 개막한다. 평생 다른 길을 걸어온 80대 두 거장의 각각 성격이 다른 작품을 한자리에서 보여주는 독특한 전시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산 역사''한국미술의 산 증인'라 불리는 정 전 관장은 도자기 위에 붓으로 그린 그림 29점을 선보이고, 성파스님은 칠화 17점을 선보인다. 성파스님의 출품작은 정 회장이 직접 골랐다. 정 회장은 "성파스님의 많은 작품 중에서도 특히 상상력과 독창성이 두드러지는 작품으로 골랐다"고 말했다. 
 

문화재에 숨은 이야기  

정진원 도자기, 정양모 그림, 가로 9cm, 세로 11cm, 높이 6.5cm. [사진 나마갤러리]

정진원 도자기, 정양모 그림, 가로 9cm, 세로 11cm, 높이 6.5cm. [사진 나마갤러리]

조선 도자의 가마터가 있던 분원리를 그린 그림. 17.5x9.5x (높이)6.5cm. 도자기 정진원[사진 나마갤러리]

조선 도자의 가마터가 있던 분원리를 그린 그림. 17.5x9.5x (높이)6.5cm. 도자기 정진원[사진 나마갤러리]

17.5cm x9.5x(높이) 5.5cm .도자기 정진원, 그림 정양모. [사진 나마갤러리]

17.5cm x9.5x(높이) 5.5cm .도자기 정진원, 그림 정양모. [사진 나마갤러리]

[사진 나마갤러리]

[사진 나마갤러리]

정 전 관장은 한국 도자기 연구의 최고 권위자인 미술사학자다. 국립경주박물관장을 두 번 역임하고 국립중앙박물관장(1993.3~1999.12)을 지내는 등 1962년부터 99년까지 박물관에서만 38년을 근무했다. 이번 전시는 2015년 그의 팔순 잔치를 겸해 제자들이 기획했던 희묵전(戱墨展)에 이은 두 번째 전시다. "저는 작가도 아니고, 제 것은 작품이랄 것도 없다"고 말한 정 전 관장은 "평생 도자기를 비롯해 우리 문화재를 가까이서 접하며 보고 기억에 남은 것들을 끄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도예가인 아들 정진원 국민대 교수가 만든 도판과 도자합 위에 정 관장은 그림과 글로 우리 문화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흥미로운 것은 그의 그림 29점 중 부귀영화를 상징한다는 '모란' 그림이 6점이란 점이다. 이에 대해 정 전 관장은 "한국의 문양 중 모란이야말로 으뜸"이라며 "가장 많이 그려졌고, 놀라울 정도로 다양하게 표현됐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선조들은 디자인에 천재적인 소질이 있었다. 꽃잎을 탐스럽게 묘사한 것부터 추상적인 표현까지 풍부하게 넘나들었다"고 말했다. 
 
15세기 분청사기에 그려진 견공. 30.5x30.5cm, 도자기 정진원, 그림 정양모. [사진 나마갤러리]

15세기 분청사기에 그려진 견공. 30.5x30.5cm, 도자기 정진원, 그림 정양모. [사진 나마갤러리]

'15세기 분청사기에 그려진 견공'은 수십 년 전 모 유명 인사가 감정을 의뢰해 보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린 작품이다. 그는 "수만 개의 도자기를 보았지만 당시 견공 그림을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도자기의 견공 그림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고 말했다. 또 조선시대 최고급 백자를 생산했던 경기도 광주 분원리 마을 그림엔 "우리 민족의 자존심인 분원리 가마터를 우리가 보존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사방탁자 등 문방 그림엔  "공간 구성과 면 분할에서 탁월한 조형미를 보여주는 목기"에 대한 자부심을 표현했다. 정 전 관장은 "우리에겐 중국·일본과는 확연히 다른 미감이 있다. 자연스럽고 담담한 데서 우러나오는 아름다움과 품격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토록 현대적인 칠화 

성파스님, 옻판에 옻칠, 80.2x80.2cm. [사진 나마갤리]

성파스님, 옻판에 옻칠, 80.2x80.2cm. [사진 나마갤리]

성파스님. 옻판에 옻칠, 120x100cm. [사진 나마갤러리]

성파스님. 옻판에 옻칠, 120x100cm. [사진 나마갤러리]

성파스님, 옻판에 옻칠, 40.5x40.5cm. [사진 나마갤리]

성파스님, 옻판에 옻칠, 40.5x40.5cm. [사진 나마갤리]

정 전 관장 작품이 그림으로 들려주는 이야기라면, 성파스님의 칠화는 수행으로 다다른 예술의 경지를 보여준다. 40대 중반에 통도사 주지를 마친 성파스님은 2000년대 초 중국에서 3년간 산수화를 배우고 2005년 북경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 이후 문하생을 양성하며 칠화 작업을 해왔다. 지금까지 완성한 스님 작품이 서예 5000점, 산수화 300점, 칠화 500점에 이른다. 
 
성파스님의 칠화 작업은 민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을 포함해 그 소재와 표현이 자유롭고 풍부한 것이 특징이다. 정 전 관장이 스님의 칠화에 대해 "민화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성파스님만의 작품"이라고 소개하는 이유다.  
 
성파스님은 "옛 속담에 '꿈에서 스님만 봐도 옻오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옻칠은 사찰문화와 밀접했던 전통공예기법"이라며 "그러나 이게 사찰에서도 사라지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고 오히려 그 색이 더 살아나는 칠 문화의 소중한 맥을 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고 말했다. 작품에 대해선 "처음엔 민화의 틀 안에서 그렸지만, 나중엔 상상력을 보태며 마음 가는 대로 그린 것"이라고 소개했다. 스님의 여러 작품 중 정 회장이 '걸작'으로 꼽는 것은 '미륵존'이다. 그는  "큰 스님이 생각하는 미륵보살이 이 그림에 다 표현돼 있다. 볼수록 참 좋은 그림"이라고 말했다.
 
성파스님, 미륵존, 옻판에 옻칠, 80x68cm. [사진 나마갤러리]

성파스님, 미륵존, 옻판에 옻칠, 80x68cm. [사진 나마갤러리]

성파스님, 옻판에 옻칠, 60.5x60.5cm. [나마갤러리]

성파스님, 옻판에 옻칠, 60.5x60.5cm. [나마갤러리]

성파스님의 칠화 작업을 지켜봐 온 정종효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실장은 "스님의 칠화 작업은 전통의 흐름을 이으면서도 한국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는 여정"이라며 "스님의 칠화는 기존 민화에서 볼 수 없었던 화려하면서도 중후한 색감, 스님만의 감각으로 자유자재로 풀어놓은 조형성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박주열 나마갤러리 대표는 "정 전 관장님께서 17점을 고른 뒤 스님께 더 보탤 작품이 없는지 여쭸더니 중국 진나라 거문고의 달인 백아와 그의 거문고 소리를 알아주던 종자기의 지음지교를 말씀하시며 티끌 하나도 더할 게 없다고 하셨다"면서 "성파스님 작품은 판매하지 않지만,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차분하게 전하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3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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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양산=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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