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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옷 안에 비밀을 숨겨놓는 디자이너…폴 스미스의 '사과' 탄생 전말

중앙일보 2020.11.08 11:00
영국이 자랑하는 패션 디자이너 폴 스미스. 70대의 노장이지만 실제로 만나보면 장난꾸러기 소년처럼 유쾌하고 친절하다.

영국이 자랑하는 패션 디자이너 폴 스미스. 70대의 노장이지만 실제로 만나보면 장난꾸러기 소년처럼 유쾌하고 친절하다.

“매일 매일 나는 웃음이 터져 나오는 뭔가를 목격한다.” 
올해로 브랜드 창립 50주년을 맞은 패션 디자이너 폴 스미스(74)의 디자인 철학은 ‘위트 있는 클래식’이다. 영국식 정통 수트 안에 옷을 입은 사람만이 인식할 수 있는 재미난 포인트를 숨겨 둔다. 차분한 수트의 안감, 셔츠 깃 뒤, 단추 구멍에서 깜짝 놀랄 만한 강렬한 컬러와 무늬를 발견할 때마다 빙그레 웃음이 퍼진다. 브랜드를 대표하는 무지개 스트라이프 역시 볼 때마다 기분 좋은 에너지를 선물하는 요소다. 코로나19로 요즘같이 우울한 시대에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옷은 이런 모습이 아닐까.  

창립 50주년 맞은 패션 디자이너
폴 스미스 단독 서면 인터뷰

사실 폴 스미스의 삶 전체가 우리에게 힘을 주는 스토리다. 가장 영국적인 패션 디자이너로 영국 여왕에게 기사 작위를 받고, 지금은 전 세계에 매장을 갖고 있는 폴 스미스지만 그의 시작은 불가능으로 가득했다. 15세에 학교를 그만둔 지독한 난독증의 소년은 작은 원단가게에서 일을 시작했다. 자전거 선수가 꿈이었지만 큰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꿈을 접어야 했다. 런던왕립학교에서 패션을 전공한 아내 폴린의 도움으로 남성·여성복 만들기를 독학으로 익힌 그는 1970년 런던 노팅험에 3㎡의 작은 가게를 열고 비로소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를 시작할 수 있었다.  
영국이 자랑하는 패션 디자이너 폴 스미스가 브랜드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그는 '위트 있는 클래식'이라는 디자인 철학으로 전 세계 매니어들을 사로잡고 있다.

영국이 자랑하는 패션 디자이너 폴 스미스가 브랜드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그는 '위트 있는 클래식'이라는 디자인 철학으로 전 세계 매니어들을 사로잡고 있다.

“영감은 당신의 온 주위에 있다.”  
폴 스미스는 글을 읽지 못하는 대신 눈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관찰하고 카메라로 세상을 기록해왔다. 그의 주머니에는 언제나 작은 카메라가 있다. 폴 스미스가 원단에 사진을 프린트하는 기법의 선구자가 된 이유다. 지난 10월 출시된 50주년 기념 캡슐 컬렉션 중 ‘스파게티’ 프린트도 그가 81년 일본에 갔을 때 찍은 사진이 기반이 됐다.            
‘록 스타만큼이나 쓰레기 청소부와도 잘 지내는’ 멋쟁이 패션 디자이너와 국내 언론으로는 단독으로 중앙일보가 창립 50주년 기념 서면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비서를 옆에 세워두고 꽤나 오랫동안 진지하게 답을 고민했다고 한다.          
 
패션 브랜드 '폴스미스' 창립 50주년 광고 캠페인 사진. 디자이너 폴 스미스의 젊은 시절 모습이 담겨 있다.

패션 브랜드 '폴스미스' 창립 50주년 광고 캠페인 사진. 디자이너 폴 스미스의 젊은 시절 모습이 담겨 있다.

폴스미스가 추구하는 ‘영국식 정통 테일러링’이란.  
핏과 실루엣이 가장 중요하다. 수트는 너무 몸에 붙거나 헐렁한 오버사이즈보다는 몸을 알맞게 감싸줘야 한다.
 
브랜드 시그니처 ‘무지개 스트라이프’가 상징하는 것은.  
창의적인 색의 활용. 이것이 내가 브랜드를 처음 시작할 때 다른 패션 브랜드들과의 차별법이다. 무지개 스트라이프도 클래식한 스트라이프에 나만의 개성을 더해 탄생했다.
폴 스미스 1990년대 아카이브 중 '애플' 프린트(오른쪽). 올해 브랜드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출시된 캡슐 컬렉션 중 애플 프린트의 가방.(왼쪽)

폴 스미스 1990년대 아카이브 중 '애플' 프린트(오른쪽). 올해 브랜드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출시된 캡슐 컬렉션 중 애플 프린트의 가방.(왼쪽)

 
50주년 캡슐 컬렉션의 대표 이미지가 ‘애플(사과)’이다. 주제 역시 ‘적은 것이 좋다’이다. 어떤 유명한 애플이 떠오른다(실제로 폴 스미스는 미국 애플 본사에서 디자인 강의를 한 적이 있다).    
나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서 영감을 받는다. 특히 ‘단순함’의 미학에 매료됐을 때 애플 프린트가 탄생했다. 어느 날 스튜디오 책상 위 사과를 보고 ‘프린트로 만들면 멋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스티브 잡스의 애플과는 연관성이 없는 걸로~.
 
브랜드 창립 50주년을 맞은 소감은.  
이런(코로나) 시국에 브랜드 50주년을 기념할 수 있어 매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모두 힘들고 어려울 때 내 옷을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굉장히 기쁘다. 올해 10월 폴 스미스 재단을 설립해서 한동안 바쁠 것 같다. 창의적인 젊은이들이 영감을 받을 수 있는 플랫폼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패션 브랜드 '폴스미스'의 창립 50주년 광고 캠페인 사진. 디자이너 폴 스미스의 젊은 시절 사진을 이용했다.

패션 브랜드 '폴스미스'의 창립 50주년 광고 캠페인 사진. 디자이너 폴 스미스의 젊은 시절 사진을 이용했다.

패션 명가들이 거대기업에 흡수되는 상황에서 폴스미스의 독립적인 행보는 대단하다.  
우리는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걸어왔다. 열심히 일한만큼 벌고, 번 돈을 다시 브랜드에 투자해 독립적으로 성장했다. 첫 런던 매장을 코벤트 가든에 열 당시, 이곳은 번화한 곳이 아니었지만 우리가 금전적으로 매장을 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고, 운 좋게도 지금은 쇼핑 명소로 자리 잡았다.
 
자동차 미니, 카메라 라이카 등 여러 브랜드와 협업했다.  
무언가에 나만의 특징을 더하는 게 좋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대상과 같이 일한다는 것은 늘 신나는 일이다.
2020 FW 패션쇼를 마치고 무대에 올라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는 폴 스미스. 역시나 그가 매일 즐겨 입는다는 수트 차림이다.

2020 FW 패션쇼를 마치고 무대에 올라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는 폴 스미스. 역시나 그가 매일 즐겨 입는다는 수트 차림이다.

 
평소 어떤 옷을 즐겨 입나.  
코로나로 인한 영국 봉쇄령 중에도 혼자 사무실에 수트를 입고 출근할 만큼 수트를 사랑하고 매일 즐겨 입는다. 어깨 패드와 라이닝이 없는 경량 재킷이 가장 편하다.
 
창립 50주년은 아내 폴린에게도 중요한 의미다.  
아내 폴린은 훌륭한 사람이다. 나는 그녀 없이는 아무것도 이뤄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내게 패턴 박음질부터 시작해 모든 것을 가르쳐준 스승이자 멋진 파트너다.  
 
사무실에 전 세계 수집품을 쌓아놓는다던데 아내 폴린의 반응은 어떤가.
우리는 수집에 대한 열정까지 공유하진 않다. 폴린은 매우 깔끔해서 내가 수집품들을 집에 갖다놓는걸 좋아하진 않는다. 집 안에 수집품을 놓을 수 있는 내 방은 딱 하나뿐이다. 하지만 운 좋게도 내가 주인인 스튜디오(사무실)가 있어서 그 공간에 모든 것을 가져다 놓는다.
폴 스미스 2020FW 컬렉션.

폴 스미스 2020FW 컬렉션.

폴 스미스 2020FW 컬렉션.

폴 스미스 2020FW 컬렉션.

 
‘옷 안에 비밀을 숨겨 놓는다’는 디자인 철학이 멋지다.
정식으로 디자인을 배운 적이 없기 때문에 내 디자인이 매력적이려면 작은 디테일을 활용해 차별화를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폴스미스 제품을 구매할 이유를 줘야 했다. 시작은 단추 구멍에 수트와는 대조되는 색을 넣거나, 재킷 라이닝에 예상치 못한 무늬를 더하는 방식이었다. 이런 숨겨진 디테일과 반전을 사람들이 좋아해줬고 죽 발전해왔다.
 
지난해 서울을 다녀갔다. 어떤 이미지를 받았나.  
서울은 멋진 도시다. 작년 DDP에서 있었던 ‘헬로우 코리아~2019’ 전시회 오프닝에 참석했다. 딱 하루만 머물러서 많은 곳을 자세히 둘러보진 못한 게 아쉽다. 꼭 다시 방문할 수 있기를 바란다.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우울한 때, 이 상황을 잘 넘길 수 있도록 조언한다면.  
계속 웃으며 자신이 즐거운 일을 해라!!!
글=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사진=폴스미스
* 표기 : 디자이너 PAUL SMITH = 폴 스미스, 브랜드 PAUL SMITH = 폴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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