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규모의 숍에서나 가능할 줄 알았던 리필 숍을 이제 대형마트와 복합 쇼핑몰에서도 만날 수 있게 됐다. 지난 9월 27일 문을 연 이마트 ‘에코 리필 스테이션’, 10월 20일부터 손님을 맞고 있는 아모레퍼시픽 ‘리필 스테이션’ 두 곳이다.

비닐 포장이나 플라스틱 용기 없이 내용물만 구매할 수 있는 '리필' 숍이 하나씩 문을 열고 있다. 사진은 아모레퍼시픽이 운영하고 있는 '리필 스테이션.' 사진 아모레퍼시픽
지난 4일 이마트 성수점의 에코 리필 스테이션에 들렀다. 2층 매장에서 3층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옆에 단출하게 자리한 리필 스테이션은 매장이라기보다 자판기에 가까웠다. 세제 업체 ‘슈가버블’의 액체 세탁 세제와 섬유유연제 두 가지를 판매한다. 첫 방문이라면 전용 용기를 구매해야 한다. 가격은 500원. 세제가 나오는 노즐에 용기를 끼워 넣고 화면을 터치하면 내용물이 담기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이마트 성수점의 '슈가 버블' 리필 스테이션. 세탁 세제와 섬유 유연제를 리필할 수 있다. 유지연 기자
아쉬운 점은 첫 구매에서 플라스틱 용기를 한 번은 구매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마트 관계자에 따르면 ‘용기 적합성’ 때문이다. 담기는 내용물이 변질되거나 내용물로 인해 용기가 부식되지 않도록 세제·화장품 등 생활용품은 모두 용기 적합성에 맞게 제작된다. 소비자들이 임의로 가져오는 용기는 적합성이 떨어져서 전용 용기를 따로 마련했다는 설명이다.

전용 용기를 개당 500원에 판매하고 있다. 계속 해서 재사용할 수 있는 용기다. 유지연 기자
용량에 대한 아쉬움도 있다. 현재는 일괄 3L로 전용 용기 하나를 가득 채우는 양만 단일하게 판매된다. 대형마트는 가족 단위 손님이 많아 4인 가족을 기준으로 가장 많이 팔리는 제품의 양을 적용했다는 설명이다. 1~2인 가구의 경우 3L 리필은 다소 많게 느껴진다. 이마트 측에서도 양을 조금 더 다양하게 설정할 수 있도록 논의 중이다. 에코 리필 스테이션을 늘리는 계획도 갖고 있다. 이마트 왕십리‧은평‧영등포‧죽전점과 트레이더스 월계‧하남점에 추가 설치할 예정이다.
미래의 화장품 숍 같네, 아모레의 실험

각 제품을 시향해 볼 수 있도록 유리병에 제품을 넣어놨다. 원하는 만큼 소분해 갈 수 있다. 유지연 기자
이곳 역시 첫 방문이라면 전용 용기를 구매해야 한다. 용기 적합성 시험에 통과한 용기를 한쪽에서 판매하고 있다. 가격은 다소 높은 편이다. 350mL가 들어가는 ‘이니스프리 리스테이 리-스펜서’ 용기는 6000원이다. 단, 아모레퍼시픽 뷰티 포인트 회원에 한해선 무료다. 해당 용기는 화장품 브랜드 이니스프리가 출시한 리필 상품용으로 개발됐다. 언뜻 플라스틱처럼 보이지만 코코넛 껍질과 무기질 포뮬러를 섞어 일반 용기보다 플라스틱을 약 30% 적게 사용했다. 리필에 최적화된 용기로, 3단 분리가 가능하고 입구 쪽이 넓어 세척이 편하다. 쉽게 질리지 않는 무난한 디자인도 눈에 띈다.

이곳 역시 전용 용기를 사용한다. 제품 소분 후 무게를 다는 모습. 유지연 기자
향이 중요한 보디 워시, 샴푸가 주력 상품이라 시향이 가능하도록 유리 용기에 각 제품을 소량씩 전시해 놓은 게 특징이다. 원하는 제품을 고르면 매장 점원이 해당 제품을 용기에 채워준다. 가득 채워도 되고 필요한 만큼만 채워도 된다. 10mL 기준으로 가격이 책정된다. 소분이 끝나면 용기 무게를 뺀 내용물 무게를 측정해 가격 스티커를 붙여준다.

제품 선택 후 원하는 양만큼 담는 모습. 가격은 본품의 절반 정도라고 한다. 유지연 기자

리필 스테이션 한쪽에 위치한 살균 공간. 재사용 용기를 세척해 가져오면 살균할 수 있다. 유지연 기자
아모레퍼시픽 리필 스테이션을 이용해 한 번 리필하면 생수병 3개 만큼의 플라스틱을, 600mL의 물을, 전구를 25시간 켤 수 있는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고 한다. 지금은 전용 용기를 사용해야 한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이런 리필 스테이션이 활성화된다면 미래에는 텀블러에 커피를 담아가듯 세제와 화장품을 리필할 수 있는 숍도 가능하지 않을까.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