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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호두 세 알을 평수로 치면 몇 평일까?

중앙일보 2020.11.08 07:00

[더,오래] 김명희의 내가 본 희망과 절망(43) 

나는 인천에 남고, 그는 무작정 시골로 내려가 빈집 하나를 빌리고 기뻐했다. [사진 pxhere]

나는 인천에 남고, 그는 무작정 시골로 내려가 빈집 하나를 빌리고 기뻐했다. [사진 pxhere]

 
그 사람은 그것이 소원이라 했다. 십 대에 상경해 각박한 도시에서 버려지듯 던져지듯 시작한 인생살이. 아무런 배경도 밑천도 없이 평생 천둥벌거숭이처럼 헤쳐 왔으니 그 고됨이야 오죽했으랴. 곁에서 바라보니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 듯했다. 거기에 그의 건강은 점점 ‘이대로 가다가는 큰일 난다고’ 붉은 경고장을 계속 날렸다. 더 늦기 전에 궁여지책으로 시골살이를 택한 그의 속내를 나도 알고 있었다. 나는 울며 겨자 먹듯, 그럼 내려가라고 승낙했다, 그때가 올봄이었다.
 
나는 인천에 남고, 그는 무작정 시골로 내려가 빈집 하나를 빌리고 기뻐했다. 시골살이라는 게 어디 만만한 일인가. 첩첩산중에서 나고 자란 나만 같아도 걱정이 없겠다. 그러나 그는 농사의 ‘ㄴ’자도 모르는 문외한이다. 그런 그가 지방으로 내려간 지도 벌써 반년이 넘었다. 농사가 뭔지 전혀 모르던 사람이 들로 산으로 뛰어다니는 동안 봄과 여름이 갔고 어느새 가을이 왔다. 계획에 없던 두 집 살림이 시작됐다. 김치며 밑반찬 만들어 내려보내며 나도 은근히 일이 늘었다. 그는 지금 섬진강 상류 어느 시골에서 세 번째 계절과 동거 중이다. 여기에서 ‘그’는 바로 내 남편이다.
 
며칠 전 나는 인천 집에서 정신없이 원고 심사를 하고 있었다. 그때 그에게서 카톡이 왔다. 잠시 한숨 돌리며 휴대폰을 열어보았다.
 
“방금 딴 호두야. 동네 사람한테 얻었어. 먹고 싶은 걸 꾹 참고 당신 주려고 말리는 중이야. 당신 이런 거 무척 좋아하잖아.”
 
’방금 딴 호두야. 동네 사람한테 얻었어. 먹고 싶은 걸 꾹 참고 당신 주려고 말리는 중이야." [사진 김명희]

’방금 딴 호두야. 동네 사람한테 얻었어. 먹고 싶은 걸 꾹 참고 당신 주려고 말리는 중이야." [사진 김명희]

 
손바닥에 커다란 호두 세알이 담긴 사진도 같이 보냈다. 그러고 보니 나무에서 딴 햇호두를 본 게 얼마 만인가. 청설모, 다람쥐와 경쟁하듯 쪼르르 잣나무에 올라가 탐스러운 잣을 따던 추억도 벌써 수십 년 전 일이다.
 
사진 속 거칠어진 남편 손바닥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손에 담긴 큼직한 호두 세알을 보니 무척 실했다. 고맙기도 하고 짠하기도 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던가. 그가 시골로 내려가기 전에는 삶이 팍팍해 자주 다투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마저도 추억이 됐고 갈수록 빈자리가 참 크다. 이따금 집을 다녀갈 때면 그는 환하게 웃다 가지만 가는 뒷모습을 보는 나는 며칠간 휑하다.
 
‘저 호두가 뭐라고, 그냥 자기나 먹지 먼데 있는 나를 준다고 할까…….’
 
그 호두가 임실에서 인천까지 수백 ㎞를 옮겨와 지금 내 책상 위에 있다. 밤낮으로 글 쓰느라 하루 중 가장 오래 머무는 내 책상. 그런데 저 호두가 내게로 온 후,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내 귀에 가끔 어느 숲의 청량한 바람과 새소리가 들린다. 어떤 날은 육중한 매머드와 거대한 초식공룡이 가까이 지나가듯 지축이 흔들린다. 최근에는 저 단단한 호두알 안쪽이 훤히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이것들은 다 내 상상 속에서 보이는 것이다. 저 단단한 호두 알 세 개. 딱딱한 캡슐 속에서 흰 뿌리들이 실핏줄처럼 성장하고 뻗어 나가는 것이 보인다. “찌직, 찌직-.” 실금이 가는 소리도 훤히 들린다. 마치 노랑 병아리가 알 속에서 움찔거리듯, 호두알 속에서 무수한 실뿌리들이 꼼지락대는 것이 투시경처럼 보이고 귀에 들린다. 그러고 보면, 그는 내게 호두 세알만 준 것이 아니었다.
 
세상 남편들이 명품 가방, 명품 옷으로 아내를 기쁘게 해주는 동안 그는 내게 숲을 주고 새소리를 가져다준 셈이다. 밀림과 정글이 살아있는 소우주를 준 셈이다. 간밤 문밖에는 차디찬 가을비가 소나기처럼 다녀갔다. 그러더니 오늘 아침에는 ‘내일 서울 첫 영하권, 강원 산간은 눈이 오는 곳도’라는 뉴스가 눈에 띄었다. 그래서인지 지금 밖에는 얼음장 같은 강풍이 분다. 그러나 내 책상 위에서는 세 알의 푸른 숲이 여전히 태아처럼 꼼지락대고 있다.
 
이따금 내 꿈속 장지문 밖에서는 바람에 잘 익은 호두알이 후두두 후두두 뒤란으로 고소하게 떨어질 것만 같은. 이 판타지 세계는 앞으로 한동안 내 안에서 계속 상영될 예정이다. 밖에 함박눈이 내려도. 또는 올겨울 수십 년 만의 한파가 찾아온다 해도. 남편이 가져다준 호둣속 세상은 춥지 않다. 나는 지상낙원을 갖고 있다. 그것도 세 개씩이나.
 
시인·소설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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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희 김명희 시인·소설가 필진

[김명희의 내가 본 희망과 절망] 희망과 절망은 한 몸이고, 동전의 양면이다. 누구는 절망의 조건이 많아도 끝까지 희망을 바라보고, 누구는 희망의 조건이 많아도 절망에 빠져 세상을 산다. 그대 마음은 지금 어느 쪽을 향해 있는가? 우리는 매 순간 무의식 속에 희망과 절망을 선택하며 살아간다. 그 선택은 눈금 하나 차이지만, 뒤따라오는 삶의 결과는 엄청나게 다르다. 희망도 습관이다. 절망을 극복하게 만드는 희망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최대 원동력이다. 그동안 길 위에서 본 무수한 절망과 희망을 들려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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