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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할 때만 입 다문다"···'文의 선택적 침묵' 꼬집은 야당

중앙일보 2020.11.06 02:00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운영위원회의 청와대 대통령비서실·국가안보실·대통령경호처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운영위원회의 청와대 대통령비서실·국가안보실·대통령경호처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서울시장, 그리고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민주당이 후보를 내는 것이 맞는다고 보십니까?”(김정재 국민의힘 의원)

“대통령께서는 정당 내부의 활동과 결정에 대해서 특히, 선거와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입장을 밝힌 적이 없습니다.”(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

 
4일 대통령비서실 등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에서 오간 질문과 답변이다. 문 대통령이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현 민주당) 대표 때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등 중대한 잘못으로 직위를 잃으면 당은 재·보궐선거에 공천하지 않는다’는 당헌을 만들었기 때문에 나온 질문이었다. 민주당은 문 대통령이 만든 원칙을 깨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행 의혹으로 공석이 된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에 공천하기로 결정했다. 
 
국감장에서 민주당 의원들은 “실장이 답변할 일이 아니다”라고 반박했고, 노 실장은 “여야 간에 정치적 쟁점과 정쟁화된 부분들에서는 가급적이면 입장을 밝히지 않으려 한다”고 선을 그었다.
 
지난 7월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故 박원순 서울시장 빈소로 문재인 대통령의 근조화환이 들어가고 있다. [뉴스1]

지난 7월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故 박원순 서울시장 빈소로 문재인 대통령의 근조화환이 들어가고 있다. [뉴스1]

문 대통령이나 청와대는 그간 민감한 정치권 이슈와 다소 거리를 뒀다. 윤미향 민주당 의원의 정의기억연대 후원금 유용 의혹이 불거졌을 때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청와대가 입장을 밝히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윤 의원이 기소된 이후에도 청와대는 입장을 내지 않았다. 앞서 문 대통령은 ‘피해자 기림의 날’에 참석하는 등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왔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성추행 의혹을 받아 자살한 뒤에도 청와대는 “차분히 조사 결과를 지켜볼 때”라고만 했다. 문 대통령은 노영민 실장을 통해 “사법연수원 시절부터 참 오랜 인연을 쌓아온 분인데 너무 충격적”이라는 입장을 전한 게 다였다. 진상 규명을 위한 철저한 수사를 지시하진 않았다. 문 대통령은 그간 ‘페미니스트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문 대통령이 2015년 공천 관련 당헌을 만들면서 혁신안이라고 했는데, 민주당이 지금에 와서 그걸 없애도 아무 말을 안 한다는 것은 5년 전 말한 혁신이 거짓말이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는 “박원순 전 시장 사망 이후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에서 보듯이 문 대통령의 침묵은 우리 사회의 가치관 붕괴를 용인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앞줄 오른쪽)과 주호영 원내대표가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손바닥 뒤집기' 몰염치 공천 규탄 긴급기자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배경에 적힌 '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2015년 문재인 대통령이 만든 당헌을 민주당이 깬 것을 비판한 것이다. [뉴스1]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앞줄 오른쪽)과 주호영 원내대표가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손바닥 뒤집기' 몰염치 공천 규탄 긴급기자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배경에 적힌 '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2015년 문재인 대통령이 만든 당헌을 민주당이 깬 것을 비판한 것이다. [뉴스1]

민주당 당헌 수정뿐 아니라 일부 이슈에서 문 대통령의 침묵이 “불리한 이슈에만 입을 다무는, 선택적 침묵”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해 3월 문 대통령은 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 등으로부터 보고를 받고는 직접 장자연‧김학의‧버닝썬 사건을 거론하며 “공소시효가 끝난 일은 그대로 사실 여부를 가리고, 공소시효가 남은 범죄 행위가 있다면 반드시 엄정한 사법 처리를 해 주기 바란다”고 했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어떤 사안은 과도할 정도로 세세히 지시하고, 또 다른 사안은 침묵으로 일관한다”며 “도대체 정치적 유불리 이외 대통령 발언의 기준이 있긴 한지 궁금할 따름”이라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과 청와대는 최근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갈등할 때에도 말을 아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지난달 27일 ‘대통령이 추 장관과 윤 총장의 갈등 중재를 해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 “지금 쟁점이 되고 있는 현안들이 다 수사 아니면 감찰 사안”이라며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김정재 의원은 4일 국감에서 “(문 대통령이) 선택적 침묵과 선택적 발언을 하는 것이 많은 국민에게 실망을 주고 2차 가해를 가하다고 있다”고 했다. 앞서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페이스북에 “대통령 지지자들이 집단으로 뭉쳐 (박원순 전 시장)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하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기다란 침묵이 이들에게 그릇된 시그널(신호)을 주고 있다”며 “2차 가해를 해도 된다고 대중을 고무하는 상황”이라고 썼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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