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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라드 칼럼] 중국의 ‘항미원조’ 강조가 의미하는 것

중앙일보 2020.11.06 00:22 종합 33면 지면보기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중국인 친구가 “중국에서는 미래만큼이나 과거도 예측 불가”라고 말한 적이 있다. 중국의 한국전쟁 참전에 대한 해석을 보면 이 농담이 쉽게 이해된다.
 

한국전 참전 명분을 ‘반미’로 수정
미·중 대립은 ‘통일 한국’ 장애물

한국전쟁 이후 오랫동안 중국은 단순한 입장을 고수했다. 중국 정부의 성명, 베이징 중국 인민혁명 군사박물관, 단둥 항미원조(抗美援朝)기념관 모두 중공군의 한국전 개입은 북한에 대한 형제애에서 비롯됐으며, 야만적인 미국에 학살당하는 북한 인민들을 돕기 위한 것이었다고 했다. 수년 뒤 북한의 핵 개발에 분노한 중국은 해석을 바꿨다. 단둥 항미원조기념관은 김일성이 마오쩌둥에게 다급하게 군사 원조를 요청한 친서를 전시하며 중국과 북한이 동등한 위치의 동맹이 아니었던 것처럼 묘사했고, 미국이 전쟁을 일으켰다는 기존 주장을 빼고 ‘한국전쟁이 발발했다’고만 적었다. 2014년 시진핑 주석이 서울을 방문했을 때 단둥 기념관은 베이징 군사박물관의 한국전쟁 전시실과 마찬가지로 공사를 이유로 문을 닫았다.
 
한국전쟁 참전에 대한 중국의 주장은 최근에 또 바뀌었다. 9월 19일 재개관한 단둥 항미원조기념관은 기존 기념관의 4배로 확장됐고, 중국의 한국전 참전을 설명하는 데 전시실 하나를 통째로 할애했다. 시 주석은 10월 19일 단둥 기념관을 방문했고 23일에는 한국전 참전 70주년을 기념하는 연설을 했다. 중국 관점에서 집필된 2000쪽 분량의 『한국전쟁사』가 영어로 번역 출간되기도 했다.
 
새로운 메시지는 명확하다. 중국은 70년 전과 마찬가지로 지금도 미국과 대치하고 있고, 한국전쟁에서 중공군은 우세한 적군에 대항해 용맹하게 싸운 게 오늘날 중국에 귀감이 되며, 중공군 한국전쟁 개입의 주된 이유가 중국의 지정학적 이익 보호라는 것이다. 시 주석은 23일 연설에서 참전 이유를 “제국주의 침략이 확장되는 것을 막고, 신중국의 안전을 지키고, 중국 인민의 평화로운 생활을 보위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중국 최고지도자가 한국전쟁 참전 기념행사에서 직접 연설을 한 것은 20년 만에 있는 일이다.  
 
미국은 한국전쟁 당시에도 중국을 침략할 의사가 없음을 명확하게 밝혔다. 트루먼 당시 미국 대통령은 “한국전쟁이 전면전으로 확장되기를 원치 않는다. 공산주의자들이 다른 군대와 정부를 개입시키지 않는 한 한국전은 전면전으로 발전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미국의 한국전쟁 개입에 관한 많은 문서가 공개됐고, 이 문서들에 따르면 트루먼의 주장은 사실이었다. 중국이 이런 증거에도 불구하고 존재하지도 않았던 미국의 위협을 근거로 한국전 개입을 설명한다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행보다.
 
과거 중국의 역사 해석은 최소한 비장한 필연성이라도 존재했다. 1950년대 초 중국 공산당은 국민당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혁명의 깃발을 휘날리고 있었다. 그런 중국이 사면초가에 놓인 이웃 공산 정권을 돕고자 전쟁에 개입했다면 비록 참담한 비극을 불러왔다 해도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현재 중국이 표명하는 한국전쟁 개입에 대한 해석은 씁쓸하기 그지없다. 단지 중국이 미국의 의도를 오해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많은 사람이 희생됐다는 말인가.
 
중국이 국가 안보를 이유로 한국전쟁 참전을 정당화하고 있다는 사실은 앞으로의 정책 방향을 암시한다. 최근 중국 정부의 성명과 언론 기사에는 반미(反美) 기조가 농후하다. 미국과 동맹인 ‘통일 한국’은 중국의 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할 것이라는 과거의 관점이 되살아나기도 했다. 장쩌민·후진타오 전 주석이 집권하던 때만 해도 중국의 이익을 존중하는 신중한 협상을 통한 한반도 평화 통일에 합의할 여지를 보였다. 시진핑 주석이 있는 지금, 그 가능성은 현저히 작아졌다. 따라서 한국 통일의 전망도 그만큼 어두워졌다.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 대사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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