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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만 왜 이래?"…규제로 꽉 막힌 의료·법률·금융 스타트업의 호소

중앙일보 2020.11.05 17:40
"20년째 시범사업만 하는 분야가 바로 원격의료에요." (모바일 닥터 오남수 대표)

"다들 정보기술 융합을 하는데 유일하게 안 되는 데가 법률 분야에요."(임영익 인텔리콘연구소 대표)

"누가 더 무거운 족쇄를 차고 있는지 겨루는 걸까요."(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

 
5일 오전 온라인으로 열린 '2020 스타트업 코리아' 정책 제안 발표회에서 불만이 쏟아졌다. 비대면 진료·리걸 테크·인공지능 등 4차 산업의 핵심 분야가 국내 규제 정책으로 성장이 뒤처지고 있다는 호소였다. 이날 발표된 '2020 스타트업 코리아' 정책 보고서는 "각종 규제와 데이터 활용, 인력 확보 등에서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발표회는 아산나눔재단·스타트업얼라이언스·코리아스타트업포럼·아마존웹서비스가 공동 주최했다.
 
패널토론에서 참석자들이 한국 스타트업 성장과 발전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 모바일닥터 오남수 대표, 인텔리콘연구소 임영익 대표, 테스트웍스 윤석원 대표, 우아한형제들 이현재 이사, 비바리퍼블리카 신용석 CISO. 아산나눔재단 제공

패널토론에서 참석자들이 한국 스타트업 성장과 발전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 모바일닥터 오남수 대표, 인텔리콘연구소 임영익 대표, 테스트웍스 윤석원 대표, 우아한형제들 이현재 이사, 비바리퍼블리카 신용석 CISO. 아산나눔재단 제공

 

코로나로 뜬 '비대면 진료', 한국만 금지

비대면 진료는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적으로 급격히 확대되고 있다. 미국은 일반 메신저 진료를 허용하고, 원격진료의 국영건강보험(메디케어) 적용 범위를 넓혔다. 일본도 비대면 처방약의 범위를 확대하고 의약품 배송을 허용했다.
 
한국도 코로나 이후 한시적으로 1차 문진과 화상 진료를 허용해 '메디히어', '굿닥' 같은 업체들이 서비스를 시작했다. 하지만 토론에선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현행 의료법상(33조 1항) 원격 진료가 금지되어 있고, 의사들이 대형병원 쏠림·오진 위험 등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어서다. 정책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계 국내총생산(GDP) 상위 15개 국가 중 원격 진료를 법으로 금지하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GDP 상위 15개국가 중 비대면 진료를 법적으로 금지하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2020 스타트업코리아 보고서 발췌

GDP 상위 15개국가 중 비대면 진료를 법적으로 금지하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2020 스타트업코리아 보고서 발췌

 
보고서는 또 "한국은 전국 의료데이터 전산망(EMR)을 구축하고 의료의 질적 수준도 높지만, 비대면 진료는 20년간 시범사업만 반복하고 있다"며 "세부 가이드라인을 수차례 개정하며 의료진의 반발을 극복한 일본·영국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남수 모바일닥터 대표는 "정부·의료기관·시민·원격의료 기업이 참여하는 상설 협의체를 통해 신뢰를 쌓아야 한다"고 말했다.
 

판결문 없는 리걸테크, 기름 없는 자동차

4차 산업혁명의 원유로 불리는 '데이터' 활용을 규제가 가로막는다는 불만도 컸다. 법률 서비스에 IT를 접목한 리걸테크 분야가 대표적이다. 판례분석·법률문서 자동 작성 등 리걸테크 서비스를 위해선 판결문 데이터가 필수다. 그러나 대부분의 판결문이 일반에 공개되지 않아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을 고도화하기 어렵다.
글로벌 리걸테크 투자규모와 지역별 유니콘 현황. 스타트업코리아 2020 보고서 발췌

글로벌 리걸테크 투자규모와 지역별 유니콘 현황. 스타트업코리아 2020 보고서 발췌

 
임영익 인텔리콘연구소 대표는 "대법원 판결문도 공개된 건 2~3%에 불과하고, 하급심 데이터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라며 "법원은 개인정보 유출 위험을 우려하는데, 개인정보를 가리는 인공지능 기술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국내 리걸테크 시장은 변호사 검색(로톡), 법령·판례 검색(인텔리콘 연구소)로 제한돼 있다. 북미에서 20곳 이상, 일본에서 3곳의 리걸테크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 기업)이 성장한 것과 대조된다. 
 

핀테크 망분리 규제, 시설투자·운영비용 2배 들어

 
핀테크 분야에선 금융권 망분리에 대한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한국은 2013년부터 금융감독원의 전자금융감독규정에 의해 모든 금융기관과 핀테크 기업의 망 분리를 의무화 하고 있다. 기업은 데이터 저장·활용 공간을 따로 만들어야 해 비용 부담이 크다. 해킹 우려 때문이라지만 스타트업의 도전을 가로막는 원인으로 수차례 지적됐다. 
해외 망분리 규제 현황. 2020 코리아스타트업 보고서 발췌.

해외 망분리 규제 현황. 2020 코리아스타트업 보고서 발췌.

비바리퍼블리카 신용석 최고정보보호책임자(CISO)는 "정보보호 분야에만 100개 이상의 규제가 있고, 특히 망분리는 해외 어떤 국가에도 없는 과잉 규제"라며 "망 분리 대신 정보유출 사고시 기업의 책임을 강조하는 방향(사후 규제)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온라인 플랫폼법, 3개월만에 가능해?

 
한국·유럽·일본의 플랫폼법 '정보공개 요구항목' 비교. 2020 스타트업 코리아 보고서.

한국·유럽·일본의 플랫폼법 '정보공개 요구항목' 비교. 2020 스타트업 코리아 보고서.

 
공정거래위원회가 추진 중인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 관련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유럽과 일본의 법이 각각 5~6개 항목의 정보공개를 요구하는 반면 국내 온라인 플랫폼법은 수수료 부과기준, 손해 발생시 분담 기준 등 13개 항목에 정보 공개를 요구해 규제가 과하단 주장이다. 유럽 등은 수년간 의견수렴을 거친 데 비해 한국은 그 기간이 3개월에 그쳤다. 정책 보고서는 "빠르게 변화하는 플랫폼 산업의 특성을 고려해 세부적 규제보다 투명성과 소비자 보호 등 큰 틀의 원칙을 제시하는 법안이 되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원엽 기자 jung.wonyeo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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