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애란 금융기획팀장
소신껏 일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사표를 내서 주목받은 장관들도 있다. 1965년 11월 홍승희 재무장관은 돌연 사표를 내고 병원에 입원해버렸다. ‘건강상 이유’라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장기영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과의 갈등이 원인이었다. 홍 장관이 해외출장 중이던 그해 9월 장 부총리는 전격적으로 ‘금리 현실화 조치’를 시행했다. 금융재원을 조달하려는 목적으로 은행이자를 사채이자 수준으로 끌어올리고(정기예금 연 15→30%) 대출금리가 예금금리보다 낮은 유례없는 ‘역금리 체제’를 만들었다. ‘패싱’ 당한 재무장관으로서는 ‘울화병’이 날 만한 상황이었다. 그의 사표는 제출 다음날 수리됐다.
노태우 정부 때인 1990년 2월엔 조순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이 당시 청와대·여당과 갈등을 빚다가 사표를 냈다. 경제정책기조를 두고 성장 우선이냐(민주자유당), 안정 우선이냐(조순 부총리)의 갈등이었다. 1980년대 3저 호황이 지나가고 성장률이 하향하던 시점이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조 부총리는 강영훈 국무총리에게 사표를 제출하면서 “안정을 위주로 한 경제정책 기조가 지속되지 않으면 우리 경제가 저성장 고물가의 남미형 경제로 추락할 것”이라고 쓴소리했다. 그는 한 달여 뒤 내각이 일괄 사퇴할 때 다른 장관과 함께 물러났다.
노무현 정부의 이헌재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재임 기간에 청와대 386세력과의 갈등으로 여러 차례 사의 표명설이 불거졌다. 그는 “요즘은 한국이 진짜 시장경제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는 작심 발언으로 여권 핵심세력을 곤혹스럽게 했다. 2004년 12월 31일 예산안이 통과된 직후 그는 청와대에 사표를 냈다. 하지만 실제 물러난 건 석 달 뒤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3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회에서 사표 제출 사실을 직접 밝혔다. 사표 제출과 반려 자체는 있을 법한 일인데, 공개 방식이 상당히 특이하다. 정책도 ‘유튜브 직강’으로 홍보하는 ‘홍남기식 사표 소동’이다.
한애란 금융기획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