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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장관의 사표

중앙일보 2020.11.05 00:22 종합 33면 지면보기
한애란 금융기획팀장

한애란 금융기획팀장

장관이 자기 마음대로 자리에서 물러나는 일은 드물다. 고위공직자의 퇴진이란 대개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잘리는 것이다. 일이 뜻대로 안 된다고 사표를 던지는 건 무책임하기 때문에, 또는 인사권자에 대한 ‘항명’으로 비칠까 두려워서 보통은 잘릴 때까지 간다.
 
소신껏 일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사표를 내서 주목받은 장관들도 있다. 1965년 11월 홍승희 재무장관은 돌연 사표를 내고 병원에 입원해버렸다. ‘건강상 이유’라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장기영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과의 갈등이 원인이었다. 홍 장관이 해외출장 중이던 그해 9월 장 부총리는 전격적으로 ‘금리 현실화 조치’를 시행했다. 금융재원을 조달하려는 목적으로 은행이자를 사채이자 수준으로 끌어올리고(정기예금 연 15→30%) 대출금리가 예금금리보다 낮은 유례없는 ‘역금리 체제’를 만들었다. ‘패싱’ 당한 재무장관으로서는 ‘울화병’이 날 만한 상황이었다. 그의 사표는 제출 다음날 수리됐다.
 
노태우 정부 때인 1990년 2월엔 조순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이 당시 청와대·여당과 갈등을 빚다가 사표를 냈다. 경제정책기조를 두고 성장 우선이냐(민주자유당), 안정 우선이냐(조순 부총리)의 갈등이었다. 1980년대 3저 호황이 지나가고 성장률이 하향하던 시점이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조 부총리는 강영훈 국무총리에게 사표를 제출하면서 “안정을 위주로 한 경제정책 기조가 지속되지 않으면 우리 경제가 저성장 고물가의 남미형 경제로 추락할 것”이라고 쓴소리했다. 그는 한 달여 뒤 내각이 일괄 사퇴할 때 다른 장관과 함께 물러났다.
 
노무현 정부의 이헌재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재임 기간에 청와대 386세력과의 갈등으로 여러 차례 사의 표명설이 불거졌다. 그는 “요즘은 한국이 진짜 시장경제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는 작심 발언으로 여권 핵심세력을 곤혹스럽게 했다. 2004년 12월 31일 예산안이 통과된 직후 그는 청와대에 사표를 냈다. 하지만 실제 물러난 건 석 달 뒤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3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회에서 사표 제출 사실을 직접 밝혔다. 사표 제출과 반려 자체는 있을 법한 일인데, 공개 방식이 상당히 특이하다. 정책도 ‘유튜브 직강’으로 홍보하는 ‘홍남기식 사표 소동’이다.
 
한애란 금융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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