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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 외국인 선수 말고....○○ 선수로 기억해 주세요

중앙일보 2020.11.04 12:06
1998년에 프로야구에 외국인 선수 제도가 도입된 이후, 올해까지 23년 동안 수많은 외국인 선수가 그라운드를 누볐다. 1년 동안 활약하는 '용병' 개념이 강했지만, 최근에는 3~4년 이상 뛰는 선수들이 많아지면서 '우리 선수'로 대접받는 분위기다. 아예 '장수 외국인 선수 말고 오랫동안 함께 한 특정 팀의 선수로 기억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지난 2017년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1차전 두산 베어스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에서 두산 선발투수 니퍼트가 역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17년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1차전 두산 베어스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에서 두산 선발투수 니퍼트가 역투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중 대표적인 선수는 우완 투수 더스틴 니퍼트(39)다. 미국 출신인 니퍼트는 지난 2011년 두산 유니폼을 입고 KBO리그에 데뷔했다. 2017년까지 두산에서 뛰었고, 2018년 KT 위즈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KBO리그에서만 8시즌을 던지면서 214경기에서 102승 51패, 평균자책점 3.59를 기록했다. 외국인 투수 가운데 100승 이상을 올린건 니퍼트가 유일하다. 2016년에는 최소 경기·최고령 20승 신기록과 함께 정규시즌을 22승 3패로 마무리하며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KBO리그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니퍼트는 종종 "KBO리그 팬들이 나를 외국인 투수가 아닌 두산 선수로 기억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한국에서 야구 인생이 만개했기 때문이다. 니퍼트는 한국에서 새로운 인생을 꾸리기도 했다. 한국 여성과 결혼해 두 아들을 낳고 한국에 정착했다. 그래서 '니서방'이란 별명도 얻었다. 은퇴 후에는 경기도 용인시에 야구교실도 열었다. 
 
한국에 대한 애정이 깊은 니퍼트를 보면서 두산 팬들도 그를 '우리 선수'로 생각했다. 2017년 말 두산과 재계약이 무산되자, 일부 팬들은 서울 잠실구장 앞에서 니퍼트 복귀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렇게 두산의 상징적인 선수가 된 니퍼트는 4일 두산과 LG 트윈스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시구한다.  
 
지난 2014년 한국시리즈 4차전 삼성 라이온즈-넥센 히어로즈 경기에서 넥센 선발 밴헤켄이 힘차게 공을 던지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 2014년 한국시리즈 4차전 삼성 라이온즈-넥센 히어로즈 경기에서 넥센 선발 밴헤켄이 힘차게 공을 던지고 있다. [중앙포토]

키움 히어로즈에서 2012년부터 17년까지 6시즌을 보낸 좌완 투수 앤디 밴 헤켄(41·미국)은 지난해 키움이 한국시리즈에 오르자 서울 고척스카이돔을 찾았다. 아쉽게도 시구 행사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관중석에서 열렬히 키움을 응원했다. 그는 KBO리그 통산 156경기에서 73승 42패, 평균자책점 3.56을 기록했다. 강속구나 화려한 변화구는 없지만 선발 로테이션을 꾸준히 지켜 '밴무원(밴헤켄+공무원)'으로 불렸다. 그는 "히어로즈는 나에겐 가족이다. 언젠가 (코치, 프런트 등으로) 다시 히어로즈의 일원이 되고 싶다"고 했다. 
 
다음 시즌 KBO리그에서 뛰는 최장수 외국인 선수는 SK 와이번스 내야수 제이미 로맥(35·캐나다)이다. 올해 9위로 처진 SK는 지난달 31일 정규시즌이 끝나자마자 로맥과 재계약 소식을 알렸다. 로맥은 총액 115만 달러(연봉 90만 달러, 옵션 25만 달러)에 사인했다. 2017년부터 5년 연속 SK 유니폼을 입으면서 역대 SK 최장수 외국인 선수가 됐다. 전반기에 부진했지만, 지난 8월부터 점점 타격감을 회복해 타율 0.282, 32홈런, 91타점을 기록했다. 한국어도 곧잘 하는 로맥은 "SK에서 처음으로 외국인 선수가 주장이 되고 싶다"고 할 정도 팀에 대한 애정이 깊다. SK에서 은퇴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SK 내야수 로맥은 2021년에도 SK에서 뛰게 됐다. [연합뉴스]

SK 내야수 로맥은 2021년에도 SK에서 뛰게 됐다. [연합뉴스]

그러나 외국인 선수들이 KBO리그에서 은퇴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나이가 들어 경기력이 떨어지면 재계약이 어렵기 때문이다. 니퍼트도 지난해 KBO리그에서 더 던지고 싶었지만 불러주는 팀이 없어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이에 니퍼트는 장수 외국인 선수를 위한 제도 개선을 부탁했다. 그는 "일본은 외국인 선수가 8번의 정규시즌을 소화하면 FA(자유계약) 권리와 함께 내국인 선수 자격을 부여한다. KBO리그에도 비슷한 제도가 생기면 좋겠다. 내가 아니라도 앞으로 KBO리그에 오는 외국인 선수에게 좋은 제도가 될 것"이라고 했다.
 
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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