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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총수 19년 만에 노조 만났다…정의선 “우린 식구, 미래차 합심하자”

중앙일보 2020.11.04 00:04 경제 1면 지면보기
지난달 30일 현대차 울산공장 영빈관에서 오찬 을 마친 현대자동차 경영진과 노조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공영운 전략기획담당 사장, 알버트 비어만 연구개발본부장, 이상수 금속노조 현대차 지부장, 정의선 회장, 하언태 생산담당 사장, 이원희 재경·경영기획담당 사장, 송호성 기아자동차 사장. [사진 현대자동차]

지난달 30일 현대차 울산공장 영빈관에서 오찬 을 마친 현대자동차 경영진과 노조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공영운 전략기획담당 사장, 알버트 비어만 연구개발본부장, 이상수 금속노조 현대차 지부장, 정의선 회장, 하언태 생산담당 사장, 이원희 재경·경영기획담당 사장, 송호성 기아자동차 사장. [사진 현대자동차]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취임 이후 처음으로 현대차 노조 지도부와 만나 생산성 향상과 품질 제고, 고용 안정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아버지 정몽구 명예회장이 2001년 울산공장을 방문해 노조와 면담한 적이 있지만, 공식적인 회동을 가진 전례가 없었던 점을 고려하면 파격적 행보로 풀이된다.
 

차산업 격변 속 손잡은 현대차 노사
노조 회동 제안에 정 회장 화답
정 “직원·회사발전 함께 방법 찾자”
품질·고용·경쟁력 확보 의견 나눠
“노조 33년 역사에 획기적 사건”

현대차 노사는 “지난달 30일 정 회장과 현대차 경영진이 이상수 금속노조 현대차 지부장과 오찬을 함께 하며 면담했다”고 3일 밝혔다. 이번 회동은 이 지부장의 공식 제안으로 시작됐다. 이 지부장은 지난달 정 회장 취임 직후 “정 회장, 현대차 대표(경영진)와 노조 간 3자 회동을 갖자”고 제안했고 정 회장 측도 긍정적인 입장을 전달했다. 모처럼 실리주의 성향의 노조 지도부가 들어섰고, 2년 연속 무분규 임금협상 타결을 지은 만큼 화답하는 것이 상생하는 길이라고 판단했다는 전언이다.
 
이후 회동 시기를 조율하다가, 지난달 30일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친환경 미래 차 울산공장 현장 방문’에서 만나 자연스럽게 오찬으로 이어지게 됐다. 이 자리에는 이원희·하언태 사장 등 경영진이 대거 함께했다. 현대차 고위 관계자는 “정 회장과 이 지부장이 기념사진을 함께 찍고 스스럼없이 얘기를 나누면서 자연스레 식사 자리로 이어지게 됐다”며 “(정 회장은) 같은 식구끼리 격식이나 절차를 따질 게 뭐가 있느냐는 반응이었다”고 귀띔했다.
 
1시간 반가량 이어진 오찬 자리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이 자리에서 정 회장은 “노사관계 안정이 회사 미래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전기차 등 신산업 시대 격변을 노사가 함께 헤쳐나가야 한다”며 “변화에 앞서나갈 수 있도록 합심하자”고 말했다. 또 “조합원 고용불안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사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며 “직원 만족이 회사 발전과 일치될 수 있도록 함께 방법을 찾아가자”고 강조했다.
 
이 지부장도 “조합원들이 신임 회장에 대한 기대가 크다. 고용불안에 노출되지 않아야 생산에 전념해 품질 좋은 명차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품질 문제와 미래 경쟁력 확보에 합심하자는 의견도 나눴다. 이 지부장은 “품질 문제에 노사가 따로 있을 수 없다”며 “4차 산업과 모빌리티사업에 편성되는 신사업을 울산에 집중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미래 차 변혁에 동참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번 회동은 이른바 ‘카마겟돈(자동차와 종말을 뜻하는 아마겟돈의 합성어)’ 시대에 함께 대응하지 않고서는 생존이 어렵다는데 노사가 뜻을 함께했다는 의미가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국내외 여건이 악화한 상황에서 노사 양측이 내부의 갈등보다 미래의 생존에 방점을 찍었다는 것이다.
 
이 지부장은 이날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회동을 제안했지만, 회장께서 화답해줄 것이란 기대는 크지 않았는데 놀랍다”며 “현대차 노조 33년 역사에서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 지부장은 “퇴직자의 증가로 노사가 방도를 찾으면 인위적인 구조조정 없이도 미래 차 변혁에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며 “내부의 반발도 적지 않지만 잘 설득해 미래 생존에 대비하겠다”고 말했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정 회장이 노조에 화답한 만큼 미래 차 변혁에 노사가 합심하는 기조는 계속될 것”이라면서도 “내부의 강경파를 설득하고 과거와 달리 투명한 대화를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실 그룹 총수가 노조 지도부와 회동하는 것은 현대차그룹뿐 아니라 국내 기업 문화에서도 이례적인 일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1·2세대 경영인의 별세나 일선 후퇴로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는 재계에도 신선한 자극제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 5대 그룹 부사장급 인사는 “아버지 세대가 국가와 기업을 성장시켜야 한다는 의무를 졌다면, 3·4세대 총수들은 경직된 노사관계를 풀고 고용안정·동반성장을 이뤄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며 “정 부회장의 행보가 일종의 벤치마킹 대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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