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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무대서도 제주 생각 뿐”…4ㆍ3 오페라의 소프라노 강혜명

중앙일보 2020.11.03 14:15
오페라 '순이삼촌'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소프라노 강혜명. 순이삼촌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부르는 노래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오페라 '순이삼촌'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소프라노 강혜명. 순이삼촌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부르는 노래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아…저 이 얘기 하면 우는데… 등장 인물 이름으로 사망자 실제 이름을 일부러 썼어요. 한번이라도 이름이 더 불려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요.”
소프라노 강혜명은 곧 무대에 올릴 오페라 ‘순이 삼촌’에 대해 설명하다 이내 눈물을 흘렸다. ‘순이 삼촌’은 1948년 제주 4ㆍ3 사건을 주제로 한 현기영 작가의 소설 『순이 삼촌』(1979)을 가지고 만든 오페라다. 이달 7일 오후 5시, 8일 오후 4시 제주아트센터에서 공연하고 제주MBC 유튜브 채널에서 실시간 중계한다.
 
강혜명은 이 작품의 연출, 각색을 맡고 순이 삼촌 역으로 출연해 노래한다. “제주에선 친척 관계가 아니어도 여자 어른, 아주머니 전부 삼촌이라 불러요. 그래서 순이 삼촌은 여성이지만 삼촌인 거죠.” 강혜명은 제주 태생으로 제주여고를 졸업한 후 추계예술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이탈리아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과 파리 에콜 노르말 음악원을 졸업했다. 2004년 국립오페라단이 프랑스ㆍ일본과 합작한 ‘카르멘’ 출연으로 데뷔한 후 이탈리아 산카를로 극장 최초의 동양인 비올레타로 ‘라트라비아타’ 무대에 섰고 프랑스 마르세이유, 툴루즈,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스위스 루체른 등 다양한 극장에 캐스팅 됐다.
 
전세계를 무대로 활동하지만, 제주는 그에게 절대적인 곳이다. “지난해에 스위스에서 오페라 ‘나비 부인’을 했는데 공연 사이에 5박 6일이 비었어요. 그 사이 제주에 들어와 4ㆍ3 추념식에서 애국가를 불렀죠.” 제주의 일은 그에게 1순위다. “제가 제일 감사하는 일이 바로 제주에서 태어난 거에요. 외국 오페라 무대에 설 때도 ‘한국 소프라노’라는 소개 앞에 ‘제주’를 넣어달라고 부탁합니다.”  강혜명은 “제주의 자연, 사람들…. 한 가지 이유로 설명하긴 힘들지만 제주만큼 나에게 힘이 되는 것을 찾을 수는 없을 것”이라며 “예술가에게는 에너지가 필요하고, 그 에너지는 고향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그런 그에게 4ㆍ3 사건을 오페라로 만드는 일은 하나의 숙제와도 같았다. 『순이 삼촌』을 30번 읽었다고 했다. “현기영 작가님을 처음 만났을 땐 오페라로 만드는 허락을 못 받았어요. 세 번 찾아갔죠. ‘신중하라’고 하시던 작가님이 그제야 허락해주시더군요.” 공연을 준비하는 지금도 4ㆍ3 당시 사망자가 많았던 제주 북촌에 자주 찾아간다. “북촌의 돌밭에 가면 아이들 무덤이 있어요. 이름도 짓기 전에 죽은 아이들의 무덤을 보면 이 오페라를 꼭 잘 만들고 싶어져요.” 그래서 그는 원작에 나오지 않은 등장인물을 작품에 넣고 그들에게 실제 희생자들의 이름을 찾아서 붙였다. “희생자 예닐곱명의 이름이 무대에서 불려지는 거죠. 그들이 조금이라도 더 기억되도록요.”
 
무대에도 직접 올라 노래한다. 그가 맡은 순이 삼촌은 4ㆍ3 사건에서 가족이 숨지는 것을 눈 앞에서 본 여성이며 가상의 인물이다. 비극을 보고도 꿋꿋이 살다, 자신의 밭에 다시 돌아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강혜명은 인물 표현을 위해 순이 삼촌이 가족들의 죽음을 목격하고 본인도 목숨을 끊는 장소인 옴팡밭에 들어가 봤다고 했다. “바람 많은 제주의 특성상 땅 밑으로 파서 만든 밭인데, 들어가보니 2m가 넘었어요. 비극과 고통이 이해가 됐습니다.”
 
오페라를 준비하는 지난 2년 동안 강혜명의 목표는 4ㆍ3사건을 한쪽의 이념을 해석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념에 의한 한쪽의 희생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 평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평화를 잃었을 때의 대가가 얼마나 큰지, 왜 평화를 지켜야하는지 보여주고 싶어요.” 이런 생각으로 오페라를 서울에서도 공연하려 했으나 지난달 세종문화회관에서 예정됐던 무대는 코로나19로 취소됐다.  
 
제주 공연만 하게 된 이 이야기가 제주 바깥으로 나와 더 많은 사람들에게 평화에 대해 생각할 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 그의 목표다. “4ㆍ3사건을 이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이 오페라를 통해서만큼은 생각이 다른 사람들도 함께 치유받을 수 있었으면 해요. 내년쯤엔 ‘순이 삼촌’을 서울에서도 선보일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음악 또한 현대적이지만 보편성을 간직한다. 강혜명은 “작곡가 최정훈이 만든 노래들은 한번 들으면 이해가 되는 정서를 품고 있다”고 했다. 보통 오페라에서는 노래가 극을 대부분 이끌고 가지만 ‘순이삼촌’은 대화체의 대사도 넣어 청중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소설 『순이 삼촌』을 여러가지로 해석할 수 있지만, 첫 오페라 작품인만큼 희생자들에 대한 진혼곡이 됐으면 합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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