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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바이든 누가 되든, 중국은 지금 '이것' 믿고 버틸 생각

중앙일보 2020.11.03 05:00
[블룸버그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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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조(天朝·청나라)는 땅이 넓고 물산이 풍부해 없는 게 없다. 외이(外夷·외국)에서 물건을 수입할 필요가 없다."

제임스 길레이, ‘베이징 궁전에서의 외교사절단 접견’(1793년).[중앙포토]

제임스 길레이, ‘베이징 궁전에서의 외교사절단 접견’(1793년).[중앙포토]

1793년 청나라 황제 건륭제(乾隆帝)가 했다는 유명한 말이다. 영국 왕 조지 3세의 특사 매카트니가 “동등한 조건으로 영국과 통상하자”는 요구에 대한 답이었다. 건륭제는 오히려 “천조에서 나는 차·도자기·비단 등은 서양 각국과 그대 나라(영국)가 필요로 하는 물건이라 짐이 은혜를 베풀었다”고 했다. 중국 내에 서양과의 교역 창구를 만든 걸 뜻한다. 1757년부터 광둥성 광저우로 일원화했다.
 
건륭제의 생각. 한마디로 이런 거다. 

“중국은 혼자서도 잘 먹고 잘산다. 아쉬울 것 없어. 하도 조르니까 불쌍해서 너네한테 물건 파는 거야.”

청나라 조공국 사신들이 입조한 모습을 그린 만국래조도(萬國來朝圖). [사진 위키피디아]

청나라 조공국 사신들이 입조한 모습을 그린 만국래조도(萬國來朝圖). [사진 위키피디아]

‘지대물박(地大物博)’, ‘응유진유(應有盡有·필요한 것은 모두 갖고 있다)’라고 불리는 건륭제의 자신감 넘치는 발언. 허세가 아니었다. 중국은 당시 세계 국내총생산(GDP) 3분의 1을 차지하는 ‘경제 초강대국’이었다. 몸집(영토·인구=수요)도 크고 생산량(공급)도 많으니 ‘규모의 경제’로 자립이 가능했다.
 
물론 이는 50년 뒤 아편전쟁에서 180도 뒤바뀐다. 근대화의 파고를 맞은 중국 경제는 그때부터 180년간 해외와 밀접한 관련을 맺어왔다. 특히 1978년 개혁개방 이후엔 해외시장에 기대어 경제를 성장시켰다.

중국이 ‘지대물박’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다.

[블룸버그 캡처]

[블룸버그 캡처]

코로나19 여파와 미국의 ‘중국 봉쇄’ 때문이다. 10월 29일 폐막한 중국 공산당 제19기 중앙위원회 제5차 전체 회의(19기 5중전회) 결과를 보자. 당초 전문가 예상을 뒤엎고 11월 3일 열리는 미국 대통령 선거 전에 발표했다. "도널드 트럼프와 조 바이든 누구도 상관없다. 내 길을 가겠다"는 선언이다.
 
5중전회에서 발표된 14차 5개년 계획(14.5 계획·2021~25년)과 2035년까지 장기 경제 목표의 골자는 예상대로 ‘쌍순환(雙循環)’이었다. 쌍순환은 국내 대순환(내수)과 국제 대순환(수출)의 두 축 중 국내 대순환을 중심으로 경제 성장을 이루자는 얘기다.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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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를 드러내는 수출주도형 성장 모델 때문이다. 코로나19 여파로 교역이 위축됐다. 무엇보다 미국의 강력한 ‘기술 제재’에 반도체 등 첨단산업 근간이 휘청인다. 이에 중국은 ‘농성전(籠城戰·문을 굳게 닫고 성을 지키는 전투)’을 택했다. 미국 공격을 버텨내며 재빨리 기술 자립을 이루겠다. 쌍순환의 핵심이다.
 
장기전에 버틸 체력은 내수가 만든다. 국내 시장 진작을 통해 마라톤 싸움에 영양분을 공급할 생각이다. 영양분을 자체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게 중국 지도부 판단이다. 중국은 원래 14억 인구와 넓은 땅으로 세계 최대 단일 시장을 갖고 있다. 아편전쟁 직후 100여년간 구매력과 수준 등에서 세계에 뒤처졌다.
[신화망 캡처]

[신화망 캡처]

하지만 1978년 개혁개방에 시동을 건 뒤 폭발적으로 추격했다. 이젠 질과 규모가 해외에 맞설만하다는 게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생각이다. 중국인이 해외에 쓰는 돈을 국내에서 쓰게 하고, 국내 생산의 부가가치도 더 높아지면, 국내 시장만으로 성장이 가능하다고 보는 거다.
 
다만 불완전하다. 중국산이라도 속은 해외 부품·기술인 물건이 너무 많다. 미국이 제재하면 꼼짝없이 당한다. '중국제조 2025(2025년까지 10대 핵심 산업의 부품 및 소재 국산화율을 70%까지 끌어올리는 것)'가 이뤄져야 한다.

이것까지 가능하면?  

[EPA=연합뉴스]

[EPA=연합뉴스]

건륭제가 말한 ‘지대물박’, ‘응유진유’ 의 재현이다. 물산이 풍부해 미국·일본·독일 등에 굽실거리지 않는다. 도리어 중국 제품과 기술을 찾는 해외 상인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이게 중국의 궁극 목표다. 그러려면 기술 개발이 중요하다. 5중전회 공보(회의자료)에 ‘혁신(촹신·創新)’이 ‘시진핑(9번)’ 보다 많은 15번이나 언급된 이유다.

그런데 고민이다. 

[신화망 캡처]

[신화망 캡처]

기술자립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쉬린(徐林) 전 국가발전개혁위원회 발전계획국장은 “중국은 글로벌 공급망에 편입돼 완전한 ‘국내 대순환’을 실현할 수 없다”고 말했다. 
10월 30일 5중전회 결과 발표 기자회견 모습. [신화=연합뉴스]

10월 30일 5중전회 결과 발표 기자회견 모습. [신화=연합뉴스]

중국이 해외시장을 버린다고 말 못 하는 이유다. 한원시우(韓文秀) 중앙위원회 금융경제위 부국장은 10월 30일 5중전회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중국과 미국 경제가 완전히 분리되는 건 현실적이지 않다”며 “분리보다 협력하고 싶은 분야가 더 많다”고 말했다. 리커창(李克强) 총리도 “쌍순환 정책의 본질이 내수 진작에 있지만, 폐쇄적인 성격은 아니다”고 강조한다.

그럼 미국은 가만히 있나.

[AFP=연합뉴스]

[AFP=연합뉴스]

미국 싱크탱크 신미국안보센터의코비 골드버그 연구원은 미 시사잡지 디플로맷에 “미국 정책 입안자들이 중국의 14.5 계획에 맞서 대응해야 한다”며 “외국인투자위원회(CFIUS) 제도를 미국뿐 아니라 동맹국 전체로 확대하고, 기술 연구개발 분야에서 이들과 공통의 표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CFIUS는 미국 내 외국인 투자가 안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할 경우 투자·거래를 불허하는 제도다. 이를 동맹국 전체로 확대하자는 얘기다. 
2차 아편 전쟁 중 프랑스와 중국 대표단의 외교 회의 장면. [사진 셔터스톡]

2차 아편 전쟁 중 프랑스와 중국 대표단의 외교 회의 장면. [사진 셔터스톡]

‘응유진유’의 청나라는 결국 ‘아편과 포탄’ 이란 영국의 변칙에 무너졌다. 21세기에 다시 자국의 ‘지대물박’ 조건을 이용하려는 중국 지도부다. 그에 맞서 미국의 중국 고사 작전은 더 강화될 것이다. 중국은 예상치 못한 미국의 변칙을 막아낼 수 있을까.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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