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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만나지 않는 배우들, 관객은 한 명…코로나 시대 공연이 바뀐다

중앙일보 2020.11.02 11:19
'자가격리 뮤지컬'가 부제인 웹 뮤지컬 '킬러파티'. 배우들끼리 만나지 않고 촬영했다. [사진 EMK엔터테인먼트]

'자가격리 뮤지컬'가 부제인 웹 뮤지컬 '킬러파티'. 배우들끼리 만나지 않고 촬영했다. [사진 EMK엔터테인먼트]

파티가 열리던 한 저택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범인은 아마도 살아남은 9명 중 한 명일 것이다. 현장에 도착한 수사관은 이들을 각각 다른 방에 넣고 심문을 시작한다. 9명에게는 각각 알리바이가 있다. 이 내용을 뮤지컬로 만든다면, 기존의 공연과 대비되는 가장 큰 변화가 무엇일까. 바로 ‘출연 배우들이 만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배우들이 각기 다른 방에 있는 설정이기 때문이다.
 
이달 20~22일 케이블TV 샌드박스에서 공개한 후 네이버 등에서의 온라인 상영을 계획하고 있는 뮤지컬 ‘킬러파티’의 줄거리다. EMK엔터테인먼트가 제작하는 공연으로, ‘자가 격리 뮤지컬’이라는 부제를 붙였다. 배우들이 만나지 않고도 연습·공연을 할 수 있도록 스토리를 고안해 낸 것이다. ‘킬러파티’에 출연하는 배우 양준모ㆍ신영숙ㆍ함연지 등은 각자의 집에서 연습과 촬영을 마쳤다. 촬영 인력은 최소화했고, 영상 편집을 거쳐 모자이크 화면으로 완성된다.
 
코로나19의 팬데믹이 길어지면서 생긴 전에 없던 풍경이다. 올 2월 코로나19 확산 이후 공연장이 휴관과 재개관을 반복하면서 공연계는 공연 재개 여부의 불확실성을 실감하게 됐다. 이에 따라 코로나 시대의 공연 아이디어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현재는 실험단계이지만, 미래의 공연을 상상해볼 수 있는 시도들이다. 방역과 관객 만족을 동시에 노리는 코로나 공연 아이디어를 소개한다.
 

#한 사람을 위한 노래

한 사람을 위해 자장가를 불러줬던 한옥. [사진 보이스씨어터 몸MOM소리]

한 사람을 위해 자장가를 불러줬던 한옥. [사진 보이스씨어터 몸MOM소리]

지난달엔 한 사람에게만 노래를 불러주는 공연이 열렸다. 목소리로 공연을 하는 단체인 '보이스씨어터 몸MOM소리'가 서울 체부동의 한옥에서 연 ‘한 사람을 위한 자장가’다. 사전 예약을 받아 관객을 한 명씩 받고, 그를 위해 출연자 4명이 40분동안 자장가를 불렀다. 3일동안 예약한 관객 총 15명은 각각 해먹에 눕거나 편하게 혼자 앉아 감상했다. '거리두기의 필요성'과 '휴식의 음악'이 만난 공연이었다. 공연을 기획한 임현진PD는 “원래는 관객 25명을 대상으로 한 기획이었는데 거리두기가 격상되면서 한 사람의 관객으로 변형했다. 관객 반응이 좋아 비슷한 형식을 또 할 계획"이라고 했다.
가수와 관객 각각 커다란 풍선 안에 들어갔던 콘서트. 유튜브 캡처

가수와 관객 각각 커다란 풍선 안에 들어갔던 콘서트. 유튜브 캡처

좀 더 역동적으로는 대중음악 콘서트에서 시도된 ‘풍선 속에 들어가 음악 듣기’를 예로 들 수 있다. 지난달 18일 CNN은 미국 오클라호마에서 인디 밴드 플레이밍 립스가 거대한 풍선 공 속에서 연 공연에 대해 보도했다. 밴드 멤버 4명과 관객 100명 모두 각각 풍선에 들어가 노래를 부르고 들었으며 환호와 떼창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줌으로 공연하기

세계 각국의 연극 배우들이 셰익스피어를 낭독하고 있는 '더 쇼 머스트 고 온라인'. 유튜브 캡처

세계 각국의 연극 배우들이 셰익스피어를 낭독하고 있는 '더 쇼 머스트 고 온라인'. 유튜브 캡처

올 4월 영국의 극단 크리에이션 시어터(creation theater)는 셰익스피어 ‘템페스트’를 원격 화상회의 시스템인 줌(zoom)으로 공연했다. 화면에는 배우들 뿐 아니라 관객도 참여했다. 관객들은 자신의 소리를 제거한 채 입장해야 했지만 지시에 따라 다시 켜기도 했다. 이렇게 하면서 관객 참여형 공연이 줌으로도 가능해졌다. 배우들은 관객의 반응을 들어 극 중의 행동을 선택하기도 했고, 박수를 유도하거나 특정한 소리를 내줄 것을 유도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극 중에서 밀라노 공작인 프로스페로는 이 극에서 감시자로 나왔는데, 나중에는 극에 참여한 관객들을 감시한다는 컨셉으로 이들에게 말을 건넸다. “애완 동물을 카메라에 비춰보라”는 주문에 관객들의 강아지ㆍ고양이가 일제히 참여하기도 했다. 영국 가디언지는 "자가 격리 시대에 가능한 최고의 예술과 엔터테인먼트였다"고 평했다. 
 

#장르를 뛰어넘기

뮤지컬 ‘킬러파티’는 뮤지컬 영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각자 떨어진 곳에서 촬영한 영상을 편집하는 것은 영화에 가깝지 않을까. EMK엔터테인먼트의 김지원 대표는 ‘킬러파티’에 대해 “장르 구분에 신경쓰지 않는다. 공연의 변화가 빨라지면서 앞으로 더욱 그럴 것”이라고 했다. EMK는 자가격리 뮤지컬 시즌2도 준비 중이다.
이렇게 기존에 공연이라 보지 않았거나, 일정한 장르에 넣을 수 없는 콘텐트가 늘어나고 있다. 팬데믹의 거리두기 시대에 공연의 범주가 변화하고 있는 현상이다. 올 3월 영국의 배우이자 연출가인 로버트 마일스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37편을 모두 낭독하는 프로젝트 ‘더 쇼 머스트 고 온라인(The show must go online)’을 시작했다. 극장 폐쇄로 직업을 잃은 배우 20여명이 각기 다른 대륙에서 셰익스피어 희곡의 역할을 나눠 맡아 낭독했다. 무대 장치, 연기, 의상이 없었지만 유튜브로 공개된 이 영상은 화제를 모아 ‘새로운 아이디어’로 가디언과 BBC에 소개됐다. 이밖에도 짧은 음악을 각자의 집에서 연주하고 모자이크로 붙인 것, 무용수가 자신의 집에서 무용 동작을 알려주는 동영상 등 기존엔 공연으로 분류되지 않던 것들이 공연으로 인식되고 있다. EMK의 김지원 대표는 "물리적으로 사람들을 떨어뜨려야 하는 요구, 영상 플랫폼의 다양화, 글로벌한 관객의 출연 등으로 공연의 패러다임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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