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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식재료로도, 약초로도…버릴 게 없는 질경이

중앙일보 2020.11.02 07:00

[더,오래] 박용환의 면역보감(87)

아스팔트로 덮히기 전 흙길일 때, 쉽게 볼 수 있는 풀이 있었다. 시금치처럼 생긴 넓은 잎사귀들 중간에 가늘고 기다란 꽃과 씨앗이 쑥 올라와 있는 이 풀은 차가 지나다니는 길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 생명력이 질기다 해서 질경이라 불렸다. 질경이는 태양이 내리쬐는 길바닥의 거친 환경에서도 잘 자라난다. 뜨거운 햇볕을 이겨내는 질경이의 성질이 차갑다는 의미에서 질경이의 약효를 가늠해 ‘차천초’라는 이름을 붙였다. 차전초의 풀도 좋지만, 여기서 나오는 씨앗이 약효가 좋아 따로 받아 치료용으로 많이 쓴다. 이 씨앗이 유명한 차전자다. 풀은 부드러울 때 식용으로 쓰고, 약초로는 씨앗인 차전자를 훨씬 더 많이 활용하고 있다.
 
차전초의 풀도 좋지만, 여기서 나오는 씨앗이 약효 성질이 훨씬 좋아서 따로 받아 치료용으로 많이 쓴다. 이 씨앗이 유명한 차전자다. [사진 농촌진흥청, 한국생약자원생태도감]

차전초의 풀도 좋지만, 여기서 나오는 씨앗이 약효 성질이 훨씬 좋아서 따로 받아 치료용으로 많이 쓴다. 이 씨앗이 유명한 차전자다. [사진 농촌진흥청, 한국생약자원생태도감]

 

변비·설사 해결해 주는 이중성격  

차전자는 변비를 해결하는 부분에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약초다. 그 이유는 풍부한 식이섬유 덕분이다. 차전자의 껍질에 있는 식이섬유는 수분을 머금는 능력이 굉장히 탁월하다. 차전자피를 그릇에 담고 물을 부으면 몇 배나 부풀어 버린다. 수용성 식이섬유는 장 속의 찌꺼기를 흡착하고 대변의 점도를 높여주며, 불용성 식이섬유는 대변의 부피를 늘리고 대장을 빨리 잘 통과하도록 만들어 준다. 또 수용성은 혈액 속에 녹아 피를 맑게 해 주기도 한다. 차전자피에는 수용성과 불용성 식이섬유가 동시에 풍부해 배변 활동을 원활하게 해 주고, 콜레스테롤도 개선해 주는 건강기능식품의 원료로 많이 쓰인다. 

 
변비가 있으면 식이섬유를 복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시중 식이섬유의 상당수가 차전자피를 함유하고 있다. 그만큼 차전자피 식이섬유의 능력은 탁월하다. 하지만 장에서 그득하게 부풀어 오르기 때문에 속이 답답해질 수가 있다. 변비가 있어 안 그래도 답답한데 차전자피를 복용해 변을 보기 전까지 굉장히 그득해진다. 이렇게 부풀리기 위해  충분한 물이 필요하다. 차전자피를 먹을 때 물을 적게 마시면 도리어 변을 못 보게 되어 고생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많은 식이섬유 제품 속의 차전자피는 외국 종이라서 조금 다르긴 하지만 국산 차전자피로도 아주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 

 
변비뿐만 아니라 설사에서도 쓸 수 있어 식이섬유는 이중적인 성격이다. 식이섬유를 먹을 때 물의 양을 잘 조절하면 변비에도 도움이 되고, 설사에도 도움이 된다.

 
변을 편하게 해 주고, 피를 맑게 하며, 간에 몰린 열을 줄이고, 방광과 신장기능을 높여주는 작용은 현대인에게 매우 필요한 것이다. [중앙포토]

변을 편하게 해 주고, 피를 맑게 하며, 간에 몰린 열을 줄이고, 방광과 신장기능을 높여주는 작용은 현대인에게 매우 필요한 것이다. [중앙포토]

 

간염과 황달에 약효

차전자에 관한 일화가 있다. 중국 한나라의 ‘마무’라는 장수가 원정길에 올랐는데 뜨거운 남쪽 사막 지역을 지나게 되었다. 이런 기후에 익숙하지 않은 병사들이 습열병에 걸리게 되어 오줌에 피가 나오는 증상이 생겼다. 한의학에서 임증이라고 하는 병인데, 사람도 말도 피오줌을 누면서 쓰러져 갔다. 그런데 어떤 말이 수레바퀴 앞에 난 풀들을 열심히 뜯고 있었고, 이 말은 맑은 오줌을 누는 것이 관찰됐다. 이 풀을 달여 먹었더니 임증이 말끔히 나아서 병사들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마차의 수레바퀴 앞에서 발견했다고 해서 이풀을 차전초라고 부르게 됐다고 한다.

 
이 일화에서 보듯 방광에 몰린 열을 조절하고, 이런 열 조절은 간 기능을 회복하는데도 쓰인다. 동의보감에서도 간·신 계통의 열을 조절하는 기능으로 안내하고 있고, 약리학적으로 분석한 결과 우르솔산(Ursolic acid), 아우쿠빈(Aucubin), 플란타기닌(Plantaginin) 등이 있어 간염, 황달에 좋은 작용을 한다는 것이 알려지게 된다.
 
한의학에서 정력, 즉 활력과 관련이 있는 간과 신 두 장부의 기능이 좋아야 한다. 간장과 신장뿐만 아니라 간과 신에 연관되어 있는 기능적인 시스템이 다 좋아져야 하복부 단전의 에너지가 좋아지고, 남성은 정력, 여성은 자궁의 기능이 좋아지는 것이다. 이런 간·신의 에너지를 좋게 해 주는 대표적인 씨앗 다섯 가지를 모아서 약으로 만든 것을 오자원이라고 한다. 오자원을 구성하는 씨앗은 구기자, 오미자, 사상자, 토사자, 구자, 복분자, 익지인, 회향, 그리고 차전자가 있다. 이런 씨앗이 다섯 가지 이상인 것은 전해 오는 책마다 조합이 조금씩 달라서인데, 이것들을 다섯 가지씩 조합해서 오자원이라 전한다. 이런 오자원의 조합에 차전자는 꼭 들어가는 편이며, 혈액을 맑게 하고 간과 방광 기능을 튼튼하게 해 주는 역할 때문에 하복부 단전의 에너지에도 도움이 되는 것이다. 
 
변을 편하게 해 주고, 피를 맑게 하며, 간에 몰린 열을 줄이고, 방광과 신장기능을 높여주는 작용은 현대인에게 매우 필요한 것이다. 하루 3~8g 내외를 먹도록 지도하고 있는데, 장의 상태에 따라서 다르다. 맹장염이나 장 출혈 같은 복부질환을 가지고 있거나 장폐색, 위장관 협착증이 있으면 금기다. 복용할 때는 물을 충분히 마셔야 한다. 먹으면서 구토나 복통이 심해지면 한의사와 상의를 해야 한다.

 
하랑한의원 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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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환 박용환 하랑한의원 원장 필진

[박용환의 면역보감] 동의보감을 연구하는 한의사다. 한국 최고의 의학서로 손꼽히는 동의보감에서 허준이 제시하는 노년의 질환에 대비하는 방안을 질환별로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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