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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열의 미래를 묻다] ‘쓰레기 유전자’에 치매 해결의 열쇠가 있었다

중앙일보 2020.11.02 00:37 종합 24면 지면보기

4차 산업혁명, 치매에 도전하다 

주재열 한국뇌연구원 선임연구원

주재열 한국뇌연구원 선임연구원

조금 싸늘해졌지만 아직은 기분 좋은 계절이다. 바람을 타고 국화꽃 향기가 코를 간지럽힌다. 후각이 기억과 강한 관련을 갖고 있어서일까. 지난해 이맘때 여행에서 만난 반가운 얼굴, 맛있는 음식이 문득 떠오른다. 가을 사색에 젖어 있을 때 우리의 뇌는 무수히 많은 결정과 행동을 우리 몸에 지시한다. 단단한 두개골이 안전하게 보호하는 뇌는 무게 1400g 정도의 기관이다.
  

쓸모 없어 보이던 이상한 RNA
치매 환자의 뇌에서 다량 발견
올해 노벨상 ‘유전자 편집’ 기술
영장류 치매 치료 실험에서 효과

2000년 전 페루에서 뇌 수술
 
뇌는 과거나 지금이나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두개골 골절상을 입은 환자의 뇌 상태와 증상, 그리고 예후를 파피루스 종이에 기록으로 남겼다. 남미 페루에서는 2000년 전 두개골에 구멍을 뚫는 수술을 했던 유골이 다수 발견됐다. 두개골 구멍이 아문 것으로 보아 외과적 수술을 했음이 거의 분명하다. 이처럼 인간은 먼 옛날에도 나름대로 고도의 기술로 뇌를 탐구했다.
 
현재도 뇌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임상 의사와 뇌 연구자들이 노력하고 있다. 풀어내야 하는 건 수수께끼뿐이 아니다. 어쩌면 질병이 먼저다. 뇌와 관련한 질병 중에 가장 관심을 끄는 건 아마 치매일 것이다. 급속한 고령화로 인해 이제는 익숙해지기까지 한 뇌 질환이다. 전 세계적으로 65세 이상 연령층의 5~10%가 치매를 앓는다는 통계가 있다. 환자 본인뿐 아니라 가족 전체의 삶에 영향을 주는 질환이어서, ‘전 국민의 관심’을 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치매에 대해 많은 연구가 이뤄졌지만, 아직 뾰족한 예방과 치료법은 나오지 않았다. 현재 처방하는 것은 인지기능 개선제와 같이 기억력 저하에 따른 증상을 완화할 수 있는 약물, 그리고 인지 장애와 함께 나타나는 초조·불안, 공격적인 행동 등을 완화해주는 항우울증·항불안제 정도다. 그러나 이는 예방이라기에도, 치료라기에도 많이 모자란다. 그저 더 심해지는 것을 늦추는 정도다.
 
그래픽=최종윤

그래픽=최종윤

예방과 치료법을 찾기 위해 치매의 원인을 파악하는 연구가 많이 진행되고 있다. 이를 통해 이름조차 복잡한 물질이 여럿 치매에 관련됐음이 밝혀졌다. ‘아포 지단백’과 ‘타우 단백질’이란 것들이 엉키면서 치매를 일으킨다는 보고가 있다. ‘베타아밀로이드’란 단백질도 문제다. 뇌 신경세포 안의 베타아밀로이드가 쪼개져 밖으로 배출돼야 하는데, 이러지 못하고 쌓이는 게 치매의 원인 가운데 하나다.
 
일단 단백질이 문제란 것은 어느 정도 밝혀졌다. 그런데 여기엔 배후 세력이 있다. 유전자다. 단백질을 만드는 건 바로 우리 몸속의 유전자, 즉 DNA와 RNA다. 이들은 단백질을 만드는 데 관련됐을 뿐 아니라, 때론 단백질을 만드는 다른 유전자의 활동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결국 치매 예방과 조기 진단, 치료의 열쇠는 유전자 속에 있는 것이다. 사실 이건 다른 질병도 마찬가지다. 할리우드의 유명 여배우 앤젤리나 졸리는 유전자 검사 결과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알고서 과감하게 절제술을 받아들이지 않았던가.
 
인간은 약 4만여 개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 유전자의 비밀스러운 정보는 ‘아데닌(A)·티민(T)·구아닌(G)·시토신(C)’이라는 4개 염기의 은밀한 조합으로 이뤄졌다. 이 조합이 아미노산을 만들고, 단백질을 이뤄 우리 몸의 정상적인 활동을 유지하게 한다. 그런데 유전 정보가 잘못 입력되면 엉뚱한 명령이 전달돼 여러 질병을 일으킨다. 치매도 마찬가지다. 뇌 속 유전자 정보에 뭔가 이상이 생긴 게 원인이다. 그렇다면 예방은? 유전자 정보가 잘못되지 않도록 하는 거다. 치료는? 잘못된 유전자 정보를 바로잡는 거다. 물론 치료에는 그릇된 정보로 인해 생겨난 치매 관련 물질을 없애주는 과정도 필요할 것이다.
 
어찌 됐든 치매 예방과 치료의 첫 단추는 분명해졌다. 관련된 유전자를 찾아내야 한다. 이른바 ‘뇌 유전자 정보 지도’의 작성이다. 그러려면 치매 환자들의 뇌 유전자 정보 빅데이터를 구축해 정상인과 비교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치매와 관련된 특정 유전자들을 구분해 낼 수 있다. 그렇게 찾아낸 관련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하거나 활발하게 함으로써 치매를 예방하고 치료한다.
 
말은 쉽지만, 얼마 전만 해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뇌는 다른 장기처럼 조직을 떼어 검사할 수 없다. 관련 유전자와 단백질의 파편을 혈액 등에서 찾아내야 한다. 망망대해에서 바늘 찾기다. 그러나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NGS)’이라는 기술이 이를 가능케 했다. 예전의 유전자 분석이 뒷산에 올라 어쭙잖은 망원경으로 정찰하는 것이라면, NGS는 초정밀 렌즈를 장착한 인공위성에 비길만하다. 그만큼 탐색과 분석 범위가 넓고 정밀하다.
 
이를 통해 뇌 질환 관련 유전자 지도를 더욱 세밀하게 그릴 수 있게 됐다. 직접 단백질을 만들지 않아 ‘쓰레기 유전자’라고도 불리던 ‘비번역 RNA’란 것이 치매 환자의 뇌에서 비정상적으로 많이 나타나는 것도 확인했다. 이 ‘쓰레기 RNA’를 치매 치료에 활용하는 방법도 나왔다. 쓰레기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참견을 많이 하는 유전자였다. 다른 유전자가 단백질을 만들지 못하게 하는 훼방꾼이 바로 이 RNA다. 이걸 잘 이용해 치매를 일으키는 단백질을 만들지 못하게 함으로써 기존보다 향상된 치료 효과를 보였다는 ‘RNA 간섭법’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올해 노벨 화학상을 받은 ‘유전자 편집’ 기술도 치매 치료에 응용되고 있다. 치매를 일으키는 이상 유전자를 바로잡는 기술이다. 영국과 중국에서는 벌써 영장류에서 유전자 편집기술을 이용한 치료 실험을 허가했으며, 효과를 나타냈다. 그러나 윤리 문제로 아직 인간에게는 적용하지 못하고 있다.
  
치매 정복엔 빅데이터·바이오 융합 필요
 
뇌 속에서는 약 1000억 개의 신경세포(뉴런)가 서로 소통하고, 기억을 담당하는 유전자의 스위치를 켜고 끄면서 기억을 관리하고 있다. 아름다운 추억을 소중한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것은 작지만 큰 행복이다. 그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방해하는 게 치매다. 아직 치매를 치료하는 완벽한 방법은 없다. 그러나 뇌 유전자 지도에서 얻은 빅데이터와 의료·생명과학기술이 융합하며 다각적이고 정밀한 치매 진단·예방·치료법이 제시되고 있다. ‘빅데이터’와 ‘융합’을 키워드로 하는 4차 산업혁명은 곧 치매를 정복하는 데도 이바지할 것이다.
 
소변·콧물로 치매를 진단한다
컴퓨터 과학은 전자·항공·우주 등 첨단 산업의 눈부신 발전에 공헌했다. 초정밀 반도체 회로의 설계나 우주선 궤도의 계산은 컴퓨터 없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에 비해 의학 분야에는 컴퓨터가 비교적 늦게 접목됐다. 그러나 질환의 치료·진단에서의 중요성은 폭발적으로 커지고 있다. 환자에게서 얻은 다양한 유전정보의 해석과 처리를 위해 고성능 컴퓨터는 필수가 됐다. 아예 바이오와 정보기술(IT)을 융합한, ‘생명정보학’이란 학문 분야가 생겼다. 생명정보학은 유전자의 행동 확률(발현 분포)을 분석해 더욱 정확하고 다양한 각종 질병 진단·예방·치료 기술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치매도 생명정보학이 활약하는 분야다. 뇌의 일부를 떼어 치매 진단 검사를 받고자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혈액이나 소변, 콧물을 활용해 치매를 진단한다. 과거와 비교하면 치매 관련 유전자도 많이 규명됐다. 더 많은 유전자를 검사해 더 정확히 치매를 진단할 수도 있다. 이때 걸림돌은 시간과 비용이었다. 많은 종류의 유전자를 검사하려면 돈도, 시간도 많이 든다는 게 과거의 상식이었다. 그러나 ‘유전자 다중 증폭’이라는 기술이 이런 문제를 극복했다. 동시에 다양한 유전자의 변이를 찾아내는 기술이다. 이젠 인공지능(AI)도 치매 예측과 진단에서 활약할 태세다. 인공지능이 바둑 기보를 스스로 익혀 인간 최고수를 꺾었듯, 정상인과 치매 환자의 유전 정보를 학습해 치매 등의 발병을 예측하는 것이다. 지난해 세계 최고 권위의 바이오 학술지인 『셀』에 이렇게 인공지능을 활용해 희귀 질환이나 뇌 질환의 발병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1980년대만 해도 화상 통화나 자율주행 자동차는 공상과학 속의 얘기였다. 치매를 완벽히 치료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오지 않을 것 같았던 과거의 상상들이 현실이 되고, 생활이 됐다. 치매 예방과 치료 역시 먼 미래의 일은 아닐 것이다.
◆주재열 선임연구원
한국뇌연구원에서 치매 등을 연구하는 ‘퇴행성 뇌질환 연구그룹 RNA-유전체 신경생물학 연구실’의 연구 책임자다. 한국통합생물학회 이사이며 국제학술지 『바이올로지』의 편집을 맡고 있다.

 
주재열 한국뇌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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