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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놀이권을 보장하라

중앙일보 2020.11.02 00:22 종합 28면 지면보기
천인성 사회기획팀장

천인성 사회기획팀장

“재미? ‘일(1)’도 없었어. 마스크도 못 벗고, 친구랑 얘기도 못 하고, 쉬는 시간에도 못 놀고!” 모처럼 등교수업 다녀온 날, 소감을 물은 기자에게 초등학생 딸은 불만을 쏟기 시작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란 ‘계엄령’ 때문에 “학교가 학교가 아니었다”는 거다.
 
“집도 똑같잖아!” 아차, 불똥이 아빠에게 튀었다. “맨날 집에만 있으라 하고, 온라인 수업 보고 학습지 풀란 얘기만 하잖아. 난 갑갑하다고! 놀고 싶다고!”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한 아빠는 ‘지난 주말 자전거 함께 타지 않았냐’ 달래려다, 아이의 두 눈에 고인 눈물을 보곤 그냥 입 다물었다.
 
맞긴 맞는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학교 쉬는 시간, 체육 수업, 태권도·줄넘기 학원 빼곤 몸으로 놀 시간이 없었는데, 코로나19로 그마저 줄었다. 내 딸 얘기만은 아니다. 지난 4월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조사 결과 팬데믹 이후 초등학생 셋 중 둘(65.4%)은 하루 30분 이상 집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노트북을 열며

노트북을 열며

그래도 어른들의 관심은 공부, 입시를 넘지 못한다. 언론도 그렇다. 돌봄 공백, 원격수업과 학력 격차, 대입 혼란에 관련된 뉴스는 쏟아졌지만, 놀이와 친구를 빼앗긴 아이들을 조명한 기사는 눈에 띄지 않았다.
 
지난달 30일 서울시의회에선 ‘서울시 아동의 놀이권 보장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UN아동권리협약 등에 명시된 아동의 쉴 권리, 놀 권리를 지키는 조례를 제정하자는 취지다. 토론회엔 청소년이 직접 나와 안전하면서 맘껏 놀 수 있는 공간, 쉴 수 있는 시간을 요구했다. “5학년 땐 추워지면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놀았다. 화장실 없는 놀이터가 많아 경비원 화장실을 눈치 보며 썼다”(이의령·문창초 6년), “초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놀이도 졸업을 강요당했다. 청소년의 숨 쉴 구멍을 뺏는 일”(김은하수·중화중 3년)등의 발언이 나왔다.
 
어른보다 많은 활동력을 가진 아동을 온종일 집 안에, 책상 앞에 붙잡아 두는 감염병 대응도 도마 위에 올랐다. 전문가들은 “거리두기와 위생수칙 준수를 전제로 최소 하루 한 번 실외 활동을 하게 하라”는 UN아동권리위원회의 권고(코로나19와 아동권리 성명서)를 언급했다. 무조건 실내에 가두는 대신 “친구와의 만남도 차단된 상황을 아동이 얼마나 견딜 수 있을지, 다른 대안은 없는지 좀 더 적극적으로 고민하자”(양신영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선임연구원)는 거다.
 
좀처럼 출구가 나타나지 않는 팬데믹이란 터널에 갇힌 아이들. 아이들의 고통을 덜려면 학습·입시만큼 놀이도 소중하다는 어른들의 깨달음이 필요하다. 아이들에겐 ‘놀이가 밥이다’.
 
천인성 사회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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