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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필의 인공지능 개척시대] 반려 인공지능 로봇

중앙일보 2020.11.02 00:12 종합 25면 지면보기
김병필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

김병필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

얼마 전 초등학생들과 인공지능에 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인공지능도 사람처럼 생각하나요? 인공지능도 감옥에 가나요? 인공지능과 결혼할 수 있나요? 궁금한 것이 많았다. 언뜻 영화 속 이야기 같아 보이지만, 미래 세대에게는 현실적인 문제가 될 수 있는 주제들이다. 결국 인공지능을 인간과 마찬가지로 여겨야 할 것인지가 쟁점이다. 일례로 2017년 유럽 의회에는 인공지능 로봇을 ‘전자 인간’으로 인정하고 그에 걸맞은 법적 권리와 책임을 부여하자는 결의안이 통과되기도 했다. 인공지능 로봇은 높은 수준의 자율성이 있는 만큼, 인공지능을 단순한 도구로만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선언이다.
 

인공지능(AI) 로봇과 동반 시대
반려동물 같이 AI와 유대감 생겨
AI ‘전자 인간’ 취급은 시기상조
AI에 적절한 법적지위 부여 필요

하지만 내가 만나 본 인공지능 연구자들은 인간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공지능이 실현되려면 무척이나 멀었다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언제쯤 실현될 수 있을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고 한다. 앞으로 수백, 수천 개의 산을 넘어야 할 텐데, 이제 고작 몇 개의 산을 넘은 단계이다. 게다가 인공지능을 인간과 마찬가지로 취급하는 것은 제도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우려도 있다. 인공지능이 직접 책임을 지도록 하면 오히려 인간이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을 법적으로 인간처럼 취급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하면, 인공지능에 동물과 비슷한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어떨까? 동물권을 어느 범위까지 인정할지 논란이 있지만, 동물을 그저 여느 물건처럼 아무런 권리도 없는 것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점차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동물권을 인정하는 근거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우선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동물이 부당하게 학대당하는 것을 보면 대부분 마음이 아프다고 느낀다. 인간이 갖는 ‘인지상정’의 감정은 동물에까지 확장된다. 즉, 동물을 보호하는 것은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동물권의 두 번째 근거는 동물 자체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많은 동물이 어느 정도 지각 능력이 있고 고통을 느낀다. 비록 인간과 동등하지는 않더라도, 동물 스스로가 고유의 가치를 갖는다.
 
인공지능 개척시대

인공지능 개척시대

현재의 인공지능 로봇은 여러모로 동물과 비슷한 점이 많다. 그래서 인공지능을 법적으로 동물과 같이 고려하자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예컨대 앞으로 많은 사람이 인공지능 로봇에 대해 반려동물과 마찬가지로 깊은 애착을 갖게 될 수 있다. 저명한 과학소설 작가인 테드 창은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라는 소설에서 인공지능과 사람 간의 관계에 관해 다루었다. 소설 속 사람들은 인공지능 로봇에게 언어와 행동을 가르치면서 상호 유대감을 쌓는다. 그 결과 인공지능 로봇은 단순한 물건이나 컴퓨터 프로그램의 차원을 넘어서는 소중한 존재가 되어 간다. 이러한 이야기는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몇 달 전 미국에서 ‘스팟’이라는 개 모양의 인공지능 로봇이 시판되었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등 복잡한 지형지물 속에서도 문제없이 돌아다닌다. 프로그램을 입력하여 원하는 작업을 하게 시킬 수 있다. 이미 유튜브에는 이렇게 훈련시킨 ‘스팟’ 로봇을 자랑하는 영상이 여럿 올라와 있다.
 
인공지능을 동물과 같이 고려하는 것은 그 책임 소재를 가리는 데도 도움이 된다. 만약 인공지능 로봇이 오동작하여 사람이 다치거나 재산상 손해가 발생하면 누가 책임져야 할까? 우리 민법은 동물을 점유하고 있는 사람은 동물의 종류와 성질에 따라 적절한 보관상 주의를 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 동물이 타인에게 가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한다. 인공지능 로봇을 그릇되게 학습시켜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면 이러한 민법 조항에 따라 책임을 져야 할 수 있다. 또한 민법을 유추하면 인공지능의 종류와 성질에 따라서 기울여야 할 주의 의무의 수준이 달라진다. 맹견을 키우는 사람들은 더 큰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처럼, 위험한 작업을 대신하는 인공지능을 학습시킬 때는 더욱 주의해야 한다.
 
먼 훗날 인간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공지능이 실현된다면 인공지능을 ‘전자 인간’으로 인정하고 권리와 의무를 부여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 그러한 기술은 도래하지 않았다. 현재 단계에서는 인공지능에 어떠한 법적 지위를 부여해야 할까? 인공지능에 동물과 같은 지위를 부여하고, 인공지능이 야기한 사고에 관해 동물 점유자 책임을 유추 적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인공지능과의 동반 시대를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할 때다.
 
김병필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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