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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부패=무공천' 文의 약속, 당원 앞세워 뒤집으려는 이낙연

중앙일보 2020.11.01 17:41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와 관련해 지난당 29일 ″후보자를 내지 않는 것만이 책임 있는 선택은 아니다“라며 공천을 기정 사실화했다. 사진은 지난달 30일 광주 현장최고위. 연합뉴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와 관련해 지난당 29일 ″후보자를 내지 않는 것만이 책임 있는 선택은 아니다“라며 공천을 기정 사실화했다. 사진은 지난달 30일 광주 현장최고위. 연합뉴스

 
서울·부산시장 후보를 내기 위한 더불어민주당의 전당원투표가 1일 마무리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대표 시절 만든 ‘부정부패=무공천’ 당헌에 예외 조항을 둬 무력화하려는 투표다. 당헌 개정·후보 공천 의견이 우세한 가운데 이낙연 대표가 이끄는 민주당 지도부는 투표 종료 16시간 뒤 결과를 공개하겠다고 발표했다. 
 

‘룰 전쟁’마다 “전당원투표”

전날 오전 10시 시작된 투표는 32시간만인 이날 오후 6시에 끝났다. 지난 8·29 전당대회 참여 대의원(1만6270명)·권리당원(79만6886명)에 투표권을 줬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의원은 “이 대표가 두 달 전 ‘이낙연 체제’를 세운 당원들에게 자신의 재임 중 최대 임무인 서울·부산 공천 결정을 위임한 모양새”라고 분석했다. 신영대 민주당 대변인은 통화에서 “일단 결과를 밀봉했다가 내일(2일) 오전 최고위에 보고 후 발표할 것”이라고 알렸다.
 
민주당은 이해찬 대표가 있던 지난 3월에도 비례위성정당 참여 여부를 놓고 전당원투표를 실시했다. 그때는 24시간 투표(3월 12일~13일) 후 3시간만인 오전 9시에 결과를 공개했다. 당시 투표율은 30.6%, 찬성률은 74.1%였다. “초심 잃은 민주당이 개혁을 후퇴시킨다”(심상정 전 정의당 대표)는 비판을 뒤로하고 더불어시민당을 창당, 소수당 몫을 가져간 명분과 근거가 전당원투표였다.
 
7개월 만에 다시 등장한 전당원투표는 또 한 번 야당의 거센 비난에 휩싸였다. 정의당은 이날 “책임 정치라는 약속어음을 발행하고는 상환기일이 돌아오자 부도내는 행태”라며 “어음발행 당사자는 뒤로 쏙 빠지고, 어음에 보증을 선 당원들에게 책임을 미루는 모습은 민망하다”고 꼬집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민주당 손바닥 뒤집기 몰염치 공천 규탄 긴급 기자간담회’에서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공천 자체가 피해자에 대한 3차 가해다. 민주당 지도부가 비겁하게 당원 뒤에 숨어 양심을 버리는 것은 국민이 거여(巨與)에 바라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손바닥 뒤집기' 몰염치 공천 규탄 긴급기자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뒤쪽 벽을 민주당 상징색인 파란색으로 바꾸고, '그때는 맞고 지금을 틀리다'는 글귀를 적었다. 뉴스1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손바닥 뒤집기' 몰염치 공천 규탄 긴급기자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뒤쪽 벽을 민주당 상징색인 파란색으로 바꾸고, '그때는 맞고 지금을 틀리다'는 글귀를 적었다. 뉴스1

 

‘내로남불’ 왜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등 중대한 잘못으로 직위를 상실해 재보궐 선거를 하는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는 조항은 2015년 문 대통령이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였을 때 만들었다. 이 대표는 기존 문장을 유지하면서 ‘전당원투표로 달리 정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다는 우회로를 택했다. “문재인 대표 시절 만든 당헌을 굳이 바꿔야 하나”는 내부 이견이 있었다고 한다.
 
앞서 문 대통령은 당대표 시절(2015년 10월 11일) 군수 재선거가 치러지는 경남 고성을 찾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은 재선거의 원인 제공자이기에 후보를 내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추미애 법무부장관도 당대표였던 2017년 4·12 재보선을 앞두고 “경북 상주·군위·의성·청송은 자유한국당 의원 부인의 금품 살포 등으로 의원직을 박탈당한 곳”이라며 “자유한국당에서는 후보를 내지 않아야 마땅하다. 참으로 후안무치한 행태”라고 비난했다.
 
2017년 4.12 재보궐선거 공천장 수여식에 참석한 추미애 당시 민주당 대표가 김영태(상주-군위-의성-청송) 국회의원 후보에게 공천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추 대표는 "유감스럽게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은 애초의 무공천 방침을 바꿔서 다시 공천하기로 어제 결정했다"고 비난했다. 오종택 기자

2017년 4.12 재보궐선거 공천장 수여식에 참석한 추미애 당시 민주당 대표가 김영태(상주-군위-의성-청송) 국회의원 후보에게 공천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추 대표는 "유감스럽게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은 애초의 무공천 방침을 바꿔서 다시 공천하기로 어제 결정했다"고 비난했다. 오종택 기자

 
이처럼 과거 발언과 180도 다른 행태를 보이자 “민주당의 새 당헌 제1조는 내로남불”(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올 4월 23일 자진 사퇴한 오거돈 전 부산시장은 지난 8월 강제추행 혐의로 검찰에 송치돼 수사를 받고 있다. 7월 10일 숨진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미투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됐지만, 피해를 방조하고 가해에 가담한 서울시 공무원들에 대한 수사·재판이 진행 중이다. 
 
서울·부산 모두 사건이 마무리되지 않았는데도 당원 투표 분위기는 후보를 내자는 쪽에 쏠렸다. 친문 지지층인 권리당원들이 문재인표 당헌을 갈아엎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날 친여성향 온라인 게시판 등에는 찬성 투표 인증샷이 여러 건 올라왔다. 지난달 29일 이 대표가 전당원투표 방침을 밝히자마자 민주당 권리당원 게시판에는 “이낙연 대표에 박수를 보낸다”, “시장 후보는 당연히 내야 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심새롬·김홍범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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