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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세 소득 재분배 역할…기울어진 운동장 바로잡아

중앙선데이 2020.10.31 00:28 709호 10면 지면보기

상속세 찬반 지상 토론

일러스트=이정권 gaga@joongang.co.kr

일러스트=이정권 gaga@joongang.co.kr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율로 인해 한국 기업가들의 탈세를 조장하고 저축과 투자의욕을 꺾고 있다는 주장이 있다. 정말 그럴까. 양극화가 극심해진 세상, 그로 인해 개인의 힘만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좋은 기업가가 될 수 없는 현실. 부의 대물림과 경영권의 세습이 굳어진 오늘날에 좌절하는 것이 더 적나라한 현실이다.  
 

상속세 유지론
국세 중 상속세액은 1.03%에 불과
공정경쟁과 경제민주화의 중요 수단
상속세 폐지한 나라에선 소득세 높여

현재의 논란이 근로의욕을 상실시킬 정도로 과도한 상속세 때문인지 혹은 상속세 부과를 통한 최소한의 부의 재분배 정책을 논란으로 과장한 혹세무민인지 따져 볼 일이다.
 
헌법재판소는 조세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재정수요를 충족하거나 경제·사회적 특수정책의 실현을 위해 국민에 대하여 특별한 반대급부 없이 강제적으로 부과 징수하는 과징금이라고 정의했다. 그러한 조세는 정부의 필요한 재원을 충당하는 역할도 하지만 소득 재분배와 경제 안정화란 기능도 있다. 빈부 격차, 소득과 자산의 불공평 등을 시정하는 수단으로 폭넓게 이용돼 부의 쏠림을 방지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이를 위해선 조세 평등주의가 핵심이다. 기업인이든 서민이든 구분 없이 조세 부담은 공평해야 한다는 의미다. 조세의 분류상 인세에 속하는 상속세는 납세의무자의 인적사항을 고려하여 담세능력을 조정해 과세한다. 부양가족 등을 고려한 공제도 있을 수 있고 기업의 최대주주를 이유로 할증도 할 수 있다.
 
오세형 경실련 경제정책국 팀장

오세형 경실련 경제정책국 팀장

상속세가 폐지된 나라들도 있다. 하지만 상속세를 폐지해도 될 만큼의 더 높고 강력한 수준의 소득세가 부과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의 상속세 기본 최고세율은 50%이지만 실효 세율은 30% 전후로 편차가 크다. 상속세를 부과하는 국가들과 비교해도 높지 않은 수준이다. 2019년 상속세(약 3조1000억원)와 증여세(약 5조2000억원)를 합한 금액은 국세 수입(약 284조4000억원) 대비 약 2.8%로 낮은 비중을 차지한다. 상속세로 한정하면 국세 수입 대비 약 1.03%다. 2018년 상속세 과세자는 전체 피상속인 수 35만6109명 가운데 8002명으로 2.25%에 불과하다. 실제 상속세 부담에 시달리는 상속인은 극히 드물다는 뜻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5월 본인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정경유착 및 경제범죄에 대한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에서 “자녀에게는 경영권 승계를 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사실 90년대 중반 삼성그룹 승계 시작의 시점에서부터 이재용 부회장은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여 수조 원 대 주식을 축적하면서 제대로 된 증여세를 낸 바가 없다. 다른 재벌이나 중견기업 등에 비해서도 이번에 언급되고 있는 상속세는 정당하게 납부해야 한다. 이번 상속세 성실납부 과정을 보면 이러한 사과의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준법 경영의 시험대이다.
 
정당하고 성실한 납세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공평한 운동장으로 만드는 중요한 수단이다. 부에 의한 구조적 불평등의 문제를 조금이나마 조정하고 조율할 수 있는 상속세 제도가 원칙적으로 필요한 이유다. 대기업의 경영권 세습 등에 악용될 차등의결권이나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 도입 논의 등에 대한 비판도 중요하지만, 공평 과세의 확립 또한 놓쳐서는 안 되는 기본 원칙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경제위기를 발생시키고 있다. 우리 사회가 극심한 양극화와 되돌릴 수 없는 경제적 불평등의 시대로 추락하게 될 수도 있는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이다. 공정경제와 경제민주화의 기초가 굳건해야 한다. 혁신에 기초한 지속가능한 성장이 담보되는 상생과 포용의 시대로 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부의 쏠림을 막는 상속세가 공평 과세 확립의 마중물이 돼야 한다. 경제구조의 체질을 바꾸고 새로운 시대를 주도하는 개혁정책을 추진하기를 정부와 국회에 바란다.
 
고대 로마 때 군인 퇴직금 주려 5% 상속세 첫 도입
공식적으로 명시된 상속세는 기원전 1세기 고대 로마의 첫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도입했다. 1만㎞에 달하는 국경선을 지켜 로마의 평화(팍스 로마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시민으로 구성된 17만명의 강력한 상비군이 필요했다. 20년의 복무를 마치고 시민으로 돌아가는 이들에게 줄 퇴직금을 마련하기 위해 아우구스투스는 6촌 이내의 가족들이 아닌 사람에게 유산을 상속할 경우 20분의 1을 세금으로 매겼다.
 
중세에는 상속세의 개념이 거의 사라졌다. 전쟁을 통한 약탈을 제외한다면 모든 부는 땅에서 나오고, 원칙적으로 모든 땅은 영주의 소유였기 때문이다. 다만 상속으로 경작권이 넘어갈 때 영주에게 약간의 세금을 바치는 경우가 있었다. 장자 상속을 통해 가문의 부를 몰아주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아시아 지역에서도 상속세를 매기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16세기 조선에서 외거노비가 주인집에 3분의 1 정도를 바치고 재산을 자식들에게 나눠줬다는 기록이 나온다. 노비가 아닌 양반과 상민이 상속세를 냈다는 기록은 없다.
 
근대적인 상속세 제도를 도입한 나라는 영국이다. 1894년 사망 전 증여에 대한 과세까지 통합한 상속세가 등장했다. 극심한 계급 격차로 인해 벌어진 프랑스 대혁명의 참상을 본 영국인들은 부의 세습을 완화하는 수단으로 상속세를 도입한 것이다. 미국에서는 1862년 남북전쟁과 1898년 미국-스페인전쟁 당시 비용 마련을 위해 상속세를 한시적으로 도입했다. 상시로 상속세를 매기기 시작한 것은 1차대전 이후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제강점기인 1934년 ‘조선상속세령’이 공포됐고, 해방 후 1950년 ‘상속세법’으로 이어졌다.
 
오세형 경실련 경제정책국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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