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Big Questions] 친구의 미래
![레오나르도 다빈치, ‘광야 속의 성 제롬’(1480). [바티칸 박물관]](https://pds.joins.com/news/component/joongang_sunday/202010/31/ba652686-d476-4b53-9aa5-5e571da4aa8e.jpg)
레오나르도 다빈치, ‘광야 속의 성 제롬’(1480). [바티칸 박물관]
지구 정복한 인류 ‘킬러 앱’은 친구
많으면 많을수록 생존율 높여줘
5000년 전 냉동인간 ‘외치’도 비슷
‘확장된 친구’ 통해 외로움 극복
‘외로운 사막’서 참된 친구 알아봐
인류 커진 뇌 덕에 친구를 무기화
수 백만년 전 아프리카 초원에서 탄생한 ‘호모’ 종의 삶은 두려움과 위험으로 가득했다. 맹수들에겐 언제든지 잡아먹기 쉬운 ‘야식’에 불가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동물원에서나 볼 수 있는 맹수들은 이제 아이들의 셀카 모델이 됐다. 왜 가장 나약한 동물 중 하나인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걸까? 누구보다 큰 뇌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뇌가 크다는 사실 그 자체는 아무 의미 없다. 두개골 안에 있는 뇌를 꺼내 무기로 삼을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뇌의 가치는 뇌가 만들어낸 결과물에 있다. 문명, 도시, 핵무기, 인터넷. 분명히 지구를 정복하는 데 공헌했을 것이다. 여기엔 논리적 문제가 하나 있다. 호모 종의 뇌는 이미 수백만 년 전, 호모 에렉투스와 하빌리스 시절부터 커지기 시작해 네안데르탈인은 이미 현대인 크기의 뇌를 가졌다. 커진 뇌의 가장 직접적인 결과물이 어쩌면 문명과 기술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류가 지구를 정복할 수 있었던 원초적 “킬러 애플리케이션”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친구들”일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혼자서는 나약하지만 10명이 모이면 맹수가 두렵지 않고, 100명이 힘을 합치면 매머드 사냥도 가능해진다. 많으면 많을수록 생존 확률을 높여주는 친구들. 그들은 과연 어떤 존재일까? 적어도 신뢰할 수 있고, 서로 동등한 거래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변치 않는 유전적 가치를 가진 식구들과는 달리 기능적 가치가 핵심인 친구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선 과거 거래관계를 정확히 기억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주는 바나나는 언제나 받아먹지만, 나에겐 아무것도 주지 않은 친구와의 관계는 유지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냉동인간 ‘외치’의 모습(기원전 3400~3100). [사진 남 티롤 박물관, 위키피디아]](https://pds.joins.com/news/component/joongang_sunday/202010/31/785e8430-ad37-4c3e-88d9-29c26c889859.jpg)
냉동인간 ‘외치’의 모습(기원전 3400~3100). [사진 남 티롤 박물관, 위키피디아]
하지만 위험한 세상에서 생존하기 위해선 상상의 슈퍼-친구들보다 더 실체가 있는 친구들 역시 필요했다. 우리는 더는 100명의 친구가 아닌, 백만 명, 천만 명의 ‘내 편’과 공동체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알아보고, 기억하고, 직접 대면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의 수는 몇백명에 불가하다. 우리는 어떻게 수천만 명의 새로운 친구를 갖게 된 걸까? 바로 ‘신뢰’를 아웃소싱했기 때문이다. 모두가 신뢰하는 제3의 무언가가 있다면, 그 무언가 또는 누군가를 통해 간접적 신뢰 관계와 간접적 친구 관계를 구성할 수 있다. 같은 언어, 같은 민족, 같은 역사라는 스토리텔링을 통해 우리는 내 편이 될 수 있는 새로운 친구들을 만들기 시작한다. 여전히 정부와 국가를 위해 전쟁터로 향하고, 지지하는 축구팀을 위해 목이 쉬도록 수천 명의 다른 팬들과 함께 응원하는 이유다.
진화 과정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현상 중 하나는 ‘인플레이션’이다. 특정 상황에 도움이 되었던 기능이나 구조가 필요 이상으로 증폭하고 부풀려지는 현상이다. 공작의 꼬리는 너무 커져 나는 기능을 방해하고, 등껍질이 너무 무거워진 거북이는 스스로 드러눕지 못한다. 인간도 비슷하다. 내 편이 될 수 있는 친구를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한 진화적 인플레이션이 시작된다.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슈퍼-친구, 그리고 부족과 민족을 넘어 인류는 물건과 장소 역시 친구로 삼으려 한다.
1991년 이탈리아 알프스 산맥에서 발견된 냉동인간 외치(Ötzi). 냉동 상태로 잘 보존된 그의 시체는 5000년 전 고대 인류의 삶과 죽음에 대한 많은 정보를 가르쳐 주었다. 특히 그가 가지고 있던 물건들은 우리에게 새롭지 않다. 칼과 화살과 돌과 가방. 여행을 떠나는 우리가 수많은 물건을 가지고 나서듯, 외치 역시 장비를 수집하고 가지고 다녔다. 장소 역시 비슷하다. 농사가 잘되고 살찐 동물들로 가득한 초원, 천둥·번개가 치면 숨을 수 있는 거대한 바위, 미래 사냥의 성공을 빌기 위해 그려 놓은 벽화로 가득한 깊은 동굴… 모두 생존에 도움되는 새로운 친구들이었다.
외로움은 우리의 영원한 동반자

고어 비달(1925~2012)
위험한 세상에서 인류는 언제나 외로웠다. 외로움은 홀로 남은 이 세상에서 느끼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기 때문이다. 확장된 친구 개념을 통해 존재적 외로움을 극복하려던 인간. 세상을 정복하고 이제 지구의 주인이 됐지만 우리는 아직도 외롭다. 존재적 외로움을 여전히 느끼기에 오늘도 인터넷을 뒤지며 새로운 친구를 찾고, 미래 로봇과 인공지능이 또 다른 새로운 친구가 돼 주길 기대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친구 역시 인류의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1600년 전 고대 로마 여인 에우스토키움은 아마 생각했을 것이다. 외로움에서 벗어나려 인간은 친구를 찾지만, 마치 그림자같이 외로움은 우리의 영원한 동반자라고. 시끄럽고 번화한 대도시 로마에서의 외로움은 가짜 친구를 찾게 하지만, 사막에서 느끼는 진정한 외로움은 드디어 참된 친구를 알아보게 한다고.

독일 막스-플랑크 뇌과학연구소에서 박사학위를 땄다. 미국 MIT와 일본 이화학연구소에서 각각 박사후 과정과 연구원을 거쳤다. 미국 미네소타대 조교수, 보스턴대 부교수를 지냈다. 2013~2015년 중앙SUNDAY에 ‘김대식의 Big Questions’를 연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