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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외교안보정책 전반을 재검토할 때다

중앙선데이 2020.10.31 00:21 709호 30면 지면보기
북한의 적반하장이 한두번이 아니라해도 어제 나온 북한의 입장문에는 새삼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은 “남측에 우선적 책임이 있다”고 못을 박았다. 공무원 이씨가 북한 해역으로 표류해 간 것은 ‘불법 침입’이고, 북한 군의 총격 행위는 ‘정상 근무 수행’이자 ‘자위적 조치’였다는 게 북한의 논리다.
 

북, 공무원 피살은 남측 책임이라 주장
잘못된 대북정책이 적반하장 자초한 셈
대중 경사 계속되면 코리아패싱 부른다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 비무장 상태의 민간인, 그것도 바다 위에서 표류하는 사람을 무참히 사살한 것은 무슨 이유로도 용납이 되지 않는 반인륜적 행위다. 북한은 이런 자명한 사실조차 부정하고 있다. 들끓는 국민 여론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냉정함을 유지하며 북한의 성의있는 대응을 촉구한 결과가 이렇게 돌아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나서 남북 공동조사를 제안한 게 얼마나 순진한 기대였는지 드러나고 말았다.
 
도를 넘은 북한의 적반하장은 우리가 자초한 측면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문 대통령은 28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피살’이나 ‘총살’과 같은 표현 대신 ‘국민 사망’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그러면서 “평화체제의 절실함을 다시금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북한이 무슨 일을 저지르든 무한 관용을 발휘하면서 오로지 ‘평화’에만 집착한 게 북한의 안하무인적 태도를 키웠다.
 
차제에 청와대와 정부는 왜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는지 대북 정책과 외교안보 전략 전반에 걸쳐 깊이 되돌아 볼 것을 촉구한다. 남북 관계에만 올인하는 우리의 대외전략이 국제사회의 인식과 동떨어져 있지는 않은지, 북핵 위협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는 우리가 오히려 국제 사회의 대북 제재 전선을 흩뜨리며 북한만 이롭게 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근본적 성찰이 필요하다.
 
북한과 중국에 대한 배려가 두드러진 나머지 국제 사회, 특히 동맹인 미국과 불협화음을 빚는 빈도가 최근들어 부쩍 잦아지고 있다. 이달 중순 열린 한미안보협의회의(SCM)가 전시작전통제권 등에서 사사건건 이견을 드러낸 끝에 양국 국방장관이 공동 기자회견마저 취소한 것은 SCM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일본과 동남아를 방문하면서 방한 계획을 취소한 것도 심각한 사안이다. 우리만 딴 길을 고집하다보니 ‘코리아 패싱’이 기우가 아닌 현실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사이에서 균형을 지키겠다며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는 데에는 커다란 위험이 따른다. 대중(對中) 경사로 비쳐져 우리의 입지를 더욱 위축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강경화 외교장관이 “쿼드 플러스는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다”고 미국의 요청을 일축한 것이나 이수혁 주미 대사가 “(지난 70년처럼) 앞으로도 미국을 선택하는 것은 아니다”고 한 발언은 모두 외교적 자충수다. 엊그제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가 미국의 대중 전략에 대해 “정당성과 합리성 측면에서 상당히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중국이 들으면 좋아할 말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지만, 정작 중국으로부터 돌아온 것은 “항미원조는 정의의 승리였다”는 역사왜곡이다.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선거의 판세는 우리 외교력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주었다. 강제징용으로 갈등을 빚고 있는 일본은 물론, 현 정부가 지극히 공을 들여온 중국 조차도 유명희 후보 대신 나이지리아 후보를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이웃 나라의 지지를 못받는 게 현실인데 국제무대에서 얼마나 대한민국의 발언권을 높일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미·중 패권 경쟁의 파고가 높아지고 있는 국제 정세를 엄중하게 인식해야 한다. 자칫 판단을 그르치면 나라의 장래는 물론 당장 오늘의 생존 기반조차 위협받게 된다. 남북관계에만 올인해 온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전략 전체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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