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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이념에 휘둘린 근현대 천재 작가들

중앙선데이 2020.10.31 00:20 709호 19면 지면보기
우리 근대의 루저들

우리 근대의 루저들

우리 근대의 루저들
김병길 지음
글누림
 
20세기 한국 주요 소설가의 삶과 작품을 통해 우리의 근현대사를 되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가난과 식민지, 친일과 민족, 전향과 변절이라는 용어가 그 시대를 관통한다. 숙명여대에서 한국 근현대 소설을 가르치는 저자가 이 책에서 새롭게 소환한 작가는 14명이다. 최서해·홍명희·한설야·심훈·백석·이기영·김기진·김정한·현덕·채만식·허준·김동리·정비석·황순원 등이 저자의 ‘해설 도마’에 올랐다.
 
책 제목을 보면 이 쟁쟁한 작가들에게 ‘루저(loser)’라는 딱지를 붙인 셈인데, 그들이 생전에 이런 소리를 들었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궁금하다. 좀 서운했을지도 모르겠다. 루저는 패배자·실패자를 뜻하는데, 저자는 ‘잉여 인간’의 의미로 풀이했다.
 
루저들의 이야기를 저자가 다시 환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의 글쓰기가 생존을 위한 각혈과 각골의 기록이요, 정신의 고투이자 노동이었다는 사실을 목격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설명했다.
 
자칭 타칭 천재요 지식인이었던 이 작가들은 글쓰기를 주업으로 살아가며 지독한 가난 속에서 허덕여야 했다. 빈궁 못지않게 그들을 괴롭힌 것은 이념이었다. 사회주의 세례를 받았던 이들 상당수는 전향과 변절을 넘어 친일의 길로 들어섰다. 해방된 후에는 좌우익으로 갈리며 펜으로 서로의 목줄을 겨누기도 했다. 그러다 결국 경계인으로 내쳐진 문인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데, 그들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그런 안타까운 일들이 단지 그때뿐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저자가 최서해의 작품집을 읽다가 우연히 마주쳤다는 구절이 눈길을 끈다. 가난과 질병, 사회주의와 전향의 온갖 풍파를 겪었던 최서해는 ‘혈흔(血痕)’이란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양심이 마비된 사람과 우상을 사람 이상으로 숭배하는 사람과는 사리를 의논할 수 없다.” 지금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라 해도 될 것 같다.
 
배영대 학술전문기자 balanc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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