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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때 패닉 장세서 대박…30년 만에 헤지펀드 제왕 군림

중앙선데이 2020.10.31 00:02 709호 21면 지면보기

[월스트리트 리더십] ‘시타델’ 설립자 케네스 그리핀

금융회사 ‘시타델’의 설립자 케네스 그리핀은 인재 발굴과 채용, 기업 문화 조성과 유지에 공을 많이 들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금융회사 ‘시타델’의 설립자 케네스 그리핀은 인재 발굴과 채용, 기업 문화 조성과 유지에 공을 많이 들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금융회사 ‘시타델’의 설립자 케네스 그리핀은 그야말로 혜성처럼 투자 업계에 등장했다. 하버드대 2학년이던 1987년 ‘블랙 먼데이’로 불리는 주식 대폭락 장세에서 대박을 터뜨리면서다. 당시 그는 일가친척들로부터 투자받은 자금을 운용하고 있었고, 주요 투자전략으로 삼았던 ‘전환사채(CB) 차익거래’를 위해 주식 공매도를 늘린 것이 주효했다. 웬만한 전문 투자가들도 속수무책이던 패닉장에서 어린 학생이 거둔 큰 수익은 뉴스거리가 되기에 충분했다.
 

멀티전략으로 수익률 부동의 1위
단타 매매 기술 축적, 증권사 세워
미 전체 주식 거래량의 22% 차지

“인재 발굴·채용이 사업 성공 열쇠”
공들여 뽑고 최적 열정·성과 요구
승자독식 투자세계 안이함 경계

블랙 먼데이 성공 투자의 비결은 투자에 대한 남다른 접근법에 있었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주식 거래에 빠져든 그리핀은 수학과 컴퓨터를 통해 투자의 차별화를 모색했다. 어린 시절부터 수학 천재로 불릴 만큼 숫자에 뛰어났던 데다, IBM이 최초로 개인용 컴퓨터(PC)를 개발·제조했던 플로리다의 보카러톤에서 성장한 덕에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일찍 눈을 떴기 때문이었다. 정교하고 빠른 거래가 생명인 차익거래를 위해 그리핀은 기숙사에 만반의 준비를 해놓고 거래에 몰입했다. 전화·팩스는 물론이고 당시로선 흔치 않던 IBM PC까지 갖췄다. 거기에다 주가를 실시간으로 파악하려고 기숙사 지붕에 위성 안테나를 설치할 정도였다.
  
기숙사에 위성 안테나 달고 주식 투자
 
대학을 졸업한 그리핀의 진로 선택은 두말할 것 없이 펀드 운용이었다. 대학 졸업 후 1990년에 헤지펀드 운용사 시타델을 세우고 본격적으로 투자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그리핀이 내세운 시타델의 사업 방향은 경쟁사들과 크게 달랐다.
 
초기부터 ‘멀티전략’ 펀드를 도입한 게 대표적이다. 하나의 투자전략에 집중하는 일반적인 펀드와 달리, 하나의 펀드에서 다수의 투자전략을 구현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이에 따라 시타델의 대표 펀드인 ‘웰링턴’과 ‘켄싱턴’은 주식, 채권·매크로, 퀀트, 크레딧, 원자재의 다섯 가지 투자전략을 아울러 운용했다. 이제 다수의 유명 헤지펀드들도 뛰어들어 경쟁이 치열해진 이 분야에서 시타델의 성과는 여전히 압도적이다. 2019년엔 19.4%의 수익률로 경쟁사들을 여유 있게 따돌렸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혼란스러운 올해도 7월까지 16%의 성과를 기록하며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케네스 그리핀(Kenneth Griffin)
시타델 CEO 겸 공동 CIO
출생연도 1968년(52세)
최종 학력 하버드대학 경제학과(1989년 졸업)
개인 자산 150억 달러(2020년 10월 기준, 포브스),
미국 34위·세계 100위
그리핀은 기술에 대한 투자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차익거래를 선호하는 그리핀의 투자 성향상 기술의 힘을 빌리는 건 필수였다. 게다가 주요 투자전략의 하나인 퀀트 투자에서도 기술력이 곧 경쟁력인 까닭에서였다. 결정적으로 시타델이 파산 직전까지 내몰렸던 2008년의 유동성 위기는 그리핀이 리스크 관리를 위한 기술 투자에도 박차를 가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헤지펀드로 투자 사업의 기초를 닦은 그리핀은 2002년 ‘시타델 증권’을 설립하며 사업 다각화에 나섰다. 처음부터 시타델 증권은 자동화된 ‘고빈도 거래(HFT)’로 방향을 설정했다. 컴퓨터 알고리즘을 활용해 대량으로 빠르고 빈번하게 거래를 체결하며 수익을 올리는 고빈도 거래는 그리핀이 강조하는 기술 기반 투자와 맥이 닿아 있었다.
 
고빈도 거래의 노하우를 축적한 시타델 증권은 ‘시장 조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뉴욕증권거래소(NYSE)·시카고상품거래소(CME) 등에서 주식·옵션·채권 등의 사자-팔자 호가를 꾸준히 제시함으로써 투자자들이 원활하게 거래를 체결하도록 지원하는 역할이었다. 그런데 시장 조성을 위해선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기술력이 필요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안정적으로 호가를 제시하려면 그만큼 가격 예측력이 뛰어난 알고리즘이 필요했고, 더 나아가 매끄러운 거래 체결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선 아마존과 구글 못지않은 플랫폼이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 같은 기술적 필요에 대해 공격적 투자로 대응한 결과, 시타델 증권의 시장점유율은 빠르게 상승했다. 현재 시타델 증권의 미국 상장 주식 거래 규모는 시장 전체 거래량의 22%를 차지한다.
  
20년간 1만 명 직접 인터뷰한 뒤 채용
 
이런 그리핀이 성공 스토리를 일궈내기까지 큰 시련도 있었다. 앞서 언급한 2008년의 유동성 위기였다. 예상치 못한 리먼브라더스의 침몰이 초래한 자금시장 경색은 헤지펀드 시타델에 직격탄을 날렸다. 시타델의 과도한 레버리지, 즉 차입이 위기의 단초를 제공했다. 월가의 많은 금융회사가 빠진 레버리지 투자의 함정에 시타델도 걸려든 것이었다. 당시 하루에 수억 달러씩 손실이 불어나는 상황이 계속되자, 금융 전문 방송 CNBC의 중계차가 시타델의 파산 소식을 긴급 뉴스로 내보내려고 시타델 본사 앞에 며칠 동안 진을 치고 있을 정도였다.
 
그리핀은 매일같이 살얼음 위를 걷는 심정으로 위기에 대응했다. 무엇보다 투자금 환매 중단이라는 가장 힘든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이때 투자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약속한 것이 리스크 관리의 개선이었다. 포트폴리오의 분산 투자를 크게 확대하고 매도가 쉬운 자산을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시타델 증권의 사업 구조 조정을 결정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2006년부터 추진했던 투자은행을 향한 야심 찬 계획을 접고 시장 조성에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결국, 55%라는 막대한 손실로 2008년을 마감한 시타델이 원금을 회복하고 이전의 위상을 되찾은 건 그로부터 3년이라는 긴 시간이 흐른 후였다.
 
시타델(Citadel LLC)
설립연도 1990년
설립자 케네스 그리핀
업종 헤지펀드·금융서비스업
운용자산규모 350억 달러(2020년 9월 기준)
직원 수 1400명

헤지펀드 운용사 시타델, 그리고 시장 조성자 시타델 증권이라는 양대 축을 완성한 그리핀이 경영자로서 가장 역점을 두는 분야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인재 발굴과 채용이다. 그리핀은 사업 성공의 근간으로 주저 없이 인재를 꼽는다. 그의 업무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건 투자가 아닌 인터뷰라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사람에 대한 욕심으로 유명한 그리핀은 지난 20년 동안 약 1만 명을 인터뷰했을 정도로 채용에 공을 들인다. 각 사업부의 리더들에게 회사 경영의 많은 부분을 위임한 지금도 직원 채용에서만큼은 자신의 최종 인터뷰를 통한 거부권 행사 권한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둘째는 기업 문화를 조성하고 지키는 일이다. 그리핀은 시타델에 최적의 성과주의 문화를 심고자 노력한다. 힘들게 채용한 최고의 인재가 역량을 맘껏 발휘하고 인정받아 성공 사다리를 오를 수 있도록 하려는 목적에서다. 이에 그리핀은 자신이 생각하는 시타델의 성공 DNA를 에이브러햄 링컨 전 미국 대통령의 말을 빌려 표현한다. “그저 기다리는 자에게도 좋은 일은 일어날 수 있지만, 그 좋은 일이라는 것도 적극적으로 도전한 자가 이미 성취하고 나서 남겨놓은 것에 불과하다.” 결국 ‘승자독식’이 만연한 투자의 세계에서 안이함을 경계하고 열정을 다해 투자에 몰입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헤지펀드 매니저 연봉 3대 천왕…2700억원 짜리 펜트하우스 구입도
케네스 그리핀은 전 세계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돈을 많이 버는 헤지펀드 매니저 세 사람 중 한 명이다. 거의 매년 브리지워터의 레이 달리오, 그리고 르네상스테크놀로지의 제임스 사이먼스와 순위 다툼을 벌인다. 2018년에 14억 달러, 2019년엔 8억7000만 달러라는 천문학적 수입을 기록했다. 수입의 대부분은 헤지펀드 시타델의 뛰어난 투자 성과 덕이다. 헤지펀드 매니저는 자신의 펀드에 개인적으로도 상당한 자금을 투자하기 때문에 펀드의 운용 성과가 개인적 부와 직결되는 것이다.
 
그리핀은 막대한 수입 못지않게 통 큰 씀씀이로도 유명하다. 특히 초고가 부동산과 예술작품 거래로 언론에 종종 이름을 올린다. 그런 그가 2019년에 제대로 지갑을 열었다. 역대 최고가 주택을 사들이면서다. 뉴욕 맨해튼에 있는 펜트하우스를 2억3800만 달러에 매수하며 기존 최고 주택거래가를 1억 달러 이상 차이로 따돌렸다. 이 호화 주택을 포함해 미국·영국 등에 소재한 그리핀의 부동산은 총 10억 달러에 달한다고 알려졌다. 그리핀은 예술 작품 수집에도 일가견이 있어 그가 소유한 작품들의 가치는 무려 10억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지난 6월에는 요즘 뜨거운 인기를 누리는 장 미셸 바스키아의 작품을 1억 달러가 넘는 가격에 구입하기도 했다.
 
최정혁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 jung-hyuck.choy@sejong.ac.kr
골드만삭스은행 서울 대표, 유비에스, 크레디트 스위스, 씨티그룹 FICC(Fixed Income, Currencies and Commodities, 채권·외환·상품) 트레이더로 일했다. 세종대 경영학부에서 국제금융과 금융리스크를 강의하며 금융서비스산업의 국제화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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