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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 따라 서울 한 바퀴, 어제로 떠나는 가을 여행

중앙일보 2020.10.30 00:03 종합 22면 지면보기
한양도성 순성길은 성곽을 따라 도심과 산을 누비는 매력적인 걷기 길이다. 인왕산 구간은 제법 산행의 기분을 느낄 수 있고 전망도 빼어나 많은 사람이 찾는다. 정상에서 돈의문 터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이 단풍으로 물들었다. 멀리 남산이 보인다.

한양도성 순성길은 성곽을 따라 도심과 산을 누비는 매력적인 걷기 길이다. 인왕산 구간은 제법 산행의 기분을 느낄 수 있고 전망도 빼어나 많은 사람이 찾는다. 정상에서 돈의문 터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이 단풍으로 물들었다. 멀리 남산이 보인다.

한양도성 순성길. 조선 왕조 수도 한성(옛 서울)의 성곽을 따라 이은 18.6㎞ 길이다. 예부터 ‘순성(巡城) 놀이’란 게 있었다. 말 그대로 성곽을 따라 걷는 놀이다. 순성 놀이는 가을에 즐기기 딱 좋다. 도심과 단풍 물든 산을 넘나들며 ‘메가시티’ 서울의 매력을 오롯이 느낄 수 있어서다. 6개 구간 중 성곽이 잘 남아 있는 4개 구간을 소개한다. 가볍게 산책하듯 걷고 싶다면 낙산 구간이나 남산 구간, 산행의 맛을 느끼고 싶다면 백악산·인왕산 구간을 추천한다.
  

한양도성 순성길 걷기
서울 4개 산 잇는 18.6㎞ 옛길
남산 구간 단풍, 낙산은 야경
내달 1일 김신조 루트 개방

산책 삼아 걷는다면

도심과 가까운 낙산 구간은 어스름한 시간이 매력적이다.

도심과 가까운 낙산 구간은 어스름한 시간이 매력적이다.

2.1㎞ 길이의 낙산(126m) 구간은 호젓한 분위기를 느끼며 산책하기 좋다. 1·4호선 동대문역을 출발해 흥인지문(동대문)을 구경하고 북쪽 낙산공원 방향으로 걸으면 된다. 길 초입, 돌 쌓은 사람의 이름을 새긴 ‘각자성석(刻字城石)’이 많다. 성이 훼손되면 돌에 새겨진 담당자를 불러 보수하도록 했단다. ‘공사 실명제’였던 셈이다.
 
낙산 구간은 성 안팎을 넘나드는 재미가 있다. 성안은 대학로로 이어지는 충신동과 이화동이고, 성 바깥은 창신동이다. 한국전쟁 피난민이 창신동 성곽 주변에서 판자촌을 이루고 살았다. 1975년 무허가 판잣집 상당수를 철거했는데 여전히 피난민이 많이 산다. 60세 이상 노인 인구 비중이 큰 ‘장수마을’이 그 흔적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
 
이왕이면 어스름한 시간에 걷는 게 좋다. 낙산공원에서 보는 일몰도 근사하고, 오후 6시 성벽을 비추는 조명이 들어오고 가가호호 불이 켜지면 낭만적인 분위기가 흐른다. 서울관광재단이 낙산공원을 서울 대표 야경 명소로 꼽은 이유를 알 만하다.
 
남산 구간은 3호선 동대입구역에서 시작하는 걸 추천한다. 장충체육관, 신라면세점 뒤로 데크 로드가 깔려 있어 걷기 편하다. 2012년부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준비하면서 대대적으로 길을 정비했다.
 
백범광장에서 남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 제법 단풍이 들었다.

백범광장에서 남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 제법 단풍이 들었다.

신라호텔과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을 지나 국립극장 쪽으로 방향을 틀면 깊은 숲에 들어선다. 계단 650개로 이뤄진 ‘나무계단길’이 하이라이트다. 조선 태조 때 축조했다는 낡은 성벽과 붉은 단풍이 어우러져 그윽한 풍경을 연출한다. 김도경(61) 서울문화관광해설사는 “성곽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 길을 꼭 걸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22일 남산 정상(270m) 주변은 구절초가 만개했다. 전망대에서 서울 시내를 조망한 뒤 팔각정 오른편 숭례문 방향으로 내려간다. 갑자기 성곽이 끊기는 지점은 일제의 조선 신궁 터다. 일제 강점기 신궁 면적이 무려 43만㎡에 달했다. 백범광장을 지나 밀레니엄 힐튼 호텔 앞까지 새로 세운 깨끗한 성벽이 서 있고, 길섶엔 수크령이 반짝인다.
  

산행 기분 내려면

백악산 동쪽 들머리의 북정마을. 만해 한용운이 살던 동네다.

백악산 동쪽 들머리의 북정마을. 만해 한용운이 살던 동네다.

경복궁과 청와대 뒤쪽에 버티고 선 백악산(북악산, 342m) 구간은 다른 순성길 코스처럼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다. 창의문·숙정문·말바위 안내소에서 출입증을 받아야 한다. 군 시설이 많고 청와대가 가까워서다. 출입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다 순성길 6개 구간 중 가장 길어(4.7㎞) 걷는 사람이 가장 적다.
 
동쪽 혜화동·성북동에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걸어야 경사가 완만하다. 와룡공원을 지나 1시간쯤 더 걸으면 말바위 안내소, 숙정문이 차례로 나타난다. 숙정문에서 10분 거리에 정상 ‘백악마루’가 있다. 남쪽으로 경복궁과 세종대로가 훤히 보인다.
 
백악마루에서 조금 내려가면 총탄 자국 선명한 소나무 한 그루가 나온다. 1968년 1월 21일, 남파 간첩 김신조 일행이 우리 군·경과 총격전을 벌인 현장이다. 이 사건 이후 백악산은 40년간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됐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성곽길 탐방로 일부를 개방했다. 다음달 1일부터는 북악스카이웨이에서 정상부로 이어지는 신설 탐방로도 공개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2022년 백악산 탐방로 전 구간을 완전 개방하겠다고 밝혔다.
 
보물 1881호 창의문. 한양도성 사소문 중 하나다.

보물 1881호 창의문. 한양도성 사소문 중 하나다.

인왕산(339m) 구간도 시계 반대 방향으로 걷는 게 편하다. 본격적으로 걷기에 앞서 보물 1881호 창의문, 수많은 건축상을 거머쥔 윤동주문학관을 관람하길 권한다. 인왕산은 2018년 군 초소를 철거하고 등산로를 완전히 개방한 뒤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탐방객 대부분이 중장년층인 백악산과 달리 인왕산에선 젊은 기운이 느껴진다. 레깅스 차림의 20대 여성이 특히 많다.
 
제법 땀을 흘리며 오르막을 걷다 보면 정상 가까이에서 동쪽으로 시야가 탁 트인다. 서울 시내뿐 아니라 경복궁과 청와대까지 세세히 보이는 전망은 인왕산 정상부에서만 볼 수 있다. 정상에 서면 사방으로 막힘 없는 360도 풍광이 장쾌하다. 남쪽으로 이어진 내리막길은 바위투성이다. 경사가 급한 데다 바위가 미끄러워 설치된 밧줄을 붙들어야 하는 구간도 있다.
 
30분쯤 내려오면 주민이 반려견과 함께 산책하는 일상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성벽 주변에 만개한 코스모스 앞에서 사진을 찍는 관광객도 많다. 인왕산 구간 종착지는 돈의문 터다. ‘돈의문 박물관 마을’을 지나면 하늘이 꽉 막힌 빌딩 세상이 펼쳐진다. 다시 익숙한 서울이다.
 
글·사진=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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