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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무히카에게 배워라

중앙일보 2020.10.29 00:44 종합 34면 지면보기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호세 무히카 전 우루과이 대통령을 오늘 대한민국에 소환한다. 그는 떠날 때 더 박수받았다. 52%의 지지율로 당선됐지만, 퇴임 때 지지율은 65%였다. 하산길 문재인 대통령이 배웠으면 한다. 비결은 크게 여섯 가지다.
 

한국 기업은 세계 1등 하는데
그런 기업 꾸짖는 정치는 왜
1등 정치에서 배우지 못하나

첫째, 국민감정을 읽고 공감했다. 우루과이의 축구 영웅 루이스 수아레스 사건이 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때 국제축구연맹(FIFA)은 수아레스에게 중징계를 내렸다. 벌금 10만 스위스프랑, A매치 9경기 출장 정지, 4개월 선수 자격 정지. 수아레스가 빠진 우루과이는 16강에서 탈락했다. 우루과이 국민은 “주최국 브라질의 결승 진출을 위한 징계”라며 분노했다. 정치나 정치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사안이었지만 무히카 대통령은 국민적 분노의 물결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는 여러 차례 세계를 향해 FIFA의 징계가 왜 부당했는지 알렸다.
 
“이번 일은 축구 역사상 최악의 순간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중략) 우리는 우루과이 국민의 이름으로 그를 마중 나갑시다. 그에게 위로의 포옹을 해줍시다.”( 2014년 6월 26일 라디오 연설)
 
이 연설을 통해 무히카는 깊은 통탄과 집단적 실망감에 휩싸인 우루과이 국민의 감정을 읽어내는 능력을 보여줬다. (『호세 무히카 조용한 혁명』)
 
방탄소년단이 중국 네티즌의 부당한 공격을 받을 때, 서해에서 국민이 북한군에 처형·소각될 때의 국민적 좌절과 실망감 앞에 문 대통령은 침묵했다.
 
둘째, 대통령궁을 흔쾌히 포기했다. 대선 공약도 아니었다. 노숙인들에게 궁을 내주고 무히카는 자신의 농장 주택에서 살았다. 다섯 마리의 개, 두어 명의 경찰 경호원, 1987년형 폭스바겐 비틀…. 그렇게 그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 가장 친근한 대통령이 됐다. 문 대통령은 ‘광화문 대통령’ 공약을 접었다.
 
셋째, 경쟁자·반대자를 포용했다. 대선 경쟁자였던 다니엘 아스토리 경제재정장관을 부통령에 임명했다. 게릴라 시절 자신을 13년간 감옥에 가두고 고문했던 군부에 보복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이전 정부는 물론 50년, 100년 전 적폐까지 찾아내 청산 또 청산 중이다.
 
넷째, 경제는 전문가에게 맡겼다. 아스토리 부통령은 전임 바스케스 대통령 시절부터 경제사령탑이었다. 좌파 경제학자 아스토리는 칠레식 신(新)사회주의를 표방하되 실용주의 경제정책을 우선했다. 거시 경제 안정, 재정 건전성 중시, 미국과의 FTA(자유무역협정)를 주장했다. 남미를 휩쓴 좌파 포퓰리즘에 휘둘리지 않았다. 경제는 4%씩 성장해 1인당 GDP가 남미 최고를 기록했고 빈곤율은 떨어졌다. 문 대통령은 족보에도 없는 ‘소득주도성장’을 밀어붙였고 홍남기 경제부총리에겐 “국가 부채 40%의 근거가 뭐냐”며 재정 건전성을 사실상 포기하도록 몰아붙였다.
 
다섯째, 귀족노조에 할 말은 했다. 좌파 공공 노조는 무히카에겐 친정부 세력이다. 그런데도 그는 공공 노조가 “상상도 할 수 없는 특권을 누리며 군림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루과이 국민 모두 공기업에 취업하기를 원하는데 왜 몇몇 사람만 되나”며 평생 고용 대신 몇 년씩 돌아가며 일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공공 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언했는데, 그 결과 공기업 취업 문은 극도로 좁아졌고 급기야 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를 불렀다. ‘개천절 집회 무관용’ 경고마저 민주노총 집회 앞엔 침묵했다.
 
여섯째, 국민과 늘 소통했다. 기자들의 팔을 잡고 윙크도 했다. 질문의 벽을 치지 않았다. 아내가 요리하고, 직접 마테차를 끓여 나눴다. 문 대통령은 24시간 일정을 공개하고 언론과 활발히 소통한다고 약속했지만 3년간 기자간담회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무히카는 지난 20일 정계를 은퇴했다. 85세. “나는 내 정원에 증오를 키우지 않았습니다”라는 그의 고별사는 또 한번 세계인의 심금을 울렸다. 그 큰 울림이 부디 청와대 담장을 넘어 문 대통령 귀에도 들리기 바란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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