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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의 평양 오디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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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lee.youngjong@joongang.co.kr

‘확진자=0’ 북한 미스터리…코로나 남북협력 가능할까

중앙일보 2020.10.29 00:32 종합 25면 지면보기

‘코로나 전쟁 승리’ 선언한 김정은의 속사정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1일 평양 5월1일경기장에서 열린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집단체조·예술공연 ‘위대한 향도’를 보기 위해 관람석에 등장해 간부와 주민의 박수갈채에 답하고 있다. [노동신문=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1일 평양 5월1일경기장에서 열린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집단체조·예술공연 ‘위대한 향도’를 보기 위해 관람석에 등장해 간부와 주민의 박수갈채에 답하고 있다. [노동신문=연합뉴스]

코로나는 정치가 됐다. 최고지도자의 말 한마디에 지역이 봉쇄되는 계엄 수준의 비상조치가 내려지고, ‘의학적 감시대상자’는 봉건시대 역병 환자처럼 격리된다. 정확한 실태는 베일에 싸여있다. 관영 선전 매체는 ‘확진자=0’을 되풀이한다. 말 그대로라면 지구 위의 극히 예외적인 청정국이다. 바로 김정은 체제의 북한이다. 그곳에선 정치적 목적에 따라 방역이 춤춘다.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나라를 말아먹는 파렴치한 죄인’이 되는데도 체제 차원의 노동당 창건 기념행사(10월 10일)에는 수 만명 군중이 ‘노 마스크’로 운집한다. 미스터리 같은 북한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세계 속으로 들어가 본다.
  

“북, 코로나 감옥 속에서 형벌”
핵 올인하다 감염병 취약해져
북 거부로 대북지원 모두 무산
“톱다운 방식의 해법 나와야”

“코로나 감옥 속에 살고 있다. 지구 상에서 가장 혹독한 봉쇄 조치다. 고립이라는 ‘형벌’을 받고 있는 것이다.”
 
북한 코로나 사태와 남북협력을 논의한 통일보건의료학회 세미나에서 정진택 고려대 총장(오른쪽)이 축사를 했다. 앞줄 왼쪽부터 김영훈 고려대 의무부총장, 신희영 대한적십자사 회장, 전우택 연세대 의대 교수,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장. [사진 통일보건의료학회]

북한 코로나 사태와 남북협력을 논의한 통일보건의료학회 세미나에서 정진택 고려대 총장(오른쪽)이 축사를 했다. 앞줄 왼쪽부터 김영훈 고려대 의무부총장, 신희영 대한적십자사 회장, 전우택 연세대 의대 교수,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장. [사진 통일보건의료학회]

김영훈 고려대 의무 부총장 겸 의료원장은 북한의 코로나19 사태에 대해 이렇게 진단했다. 핵 개발에 체제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은 결과 사회적 불평등을 초래했고, 코로나에 가장 취약한 구조가 돼버린 북한은 치명적인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이다. 김 부총장은 통일보건의료학회(이사장 김신곤)가 지난 8일 주최한 세미나 기조연설에서 “바이러스는 사회적 지위를 가리지는 않지만, 모두에게 평등하지는 않다”면서 기저 질환자 외에도 불평등한 사회나 가난한 사람이 더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북한의 열악한 코로나 방역 여건을 지적하며 남북공동질병관리본부 설립과 감염병 핫라인 구축, DMZ(비무장지대) 접경 지역 평화병원 설립 등 남북협력 방안을 제안했다.
 
‘북한 COVID19 확산 실태와 창의적 남북 보건·의료 협력’이란 주제로 열린 이날 세미나에서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장은 텍스트 마이닝(text mining) 기법을 활용해 노동신문의 코로나 관련 기사를 분석한 발제를 해 눈길을 끌었다. 이에 따르면 최초 보도인 1월 22일 이후 9월 30일까지 8개월 10일간에 걸쳐 노동신문은 모두 1585건의 기사를 실었다. 남 원장은 “단기간 어느 한 이슈에 대해 노동신문이 이렇게 빈번하고 상세하게 보도한 것은 유례를 찾기 힘들다”면서 “코로나에 대한 북한의 관심과 고민을 엿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어휘 빈도는 방역사업, 정치사업, 소독, 위생선전의 순이었다. ‘황해남도’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 데 대해 “이 지역에 환자가 발생했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다”고 남 원장은 덧붙였다.
 
북한의 미온적 태도로 인해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코로나 관련 대북지원이나 남북 협력 방안에 대한 논의도 이날 세미나에서 제기됐다. 전우택 연세대 의과대학 교수(전 연세의료원 통일보건의료센터장)는 “북한은 돕기가 너무 힘든 매우 특별한 존재”라면서 “일반적으로 도움을 받는 입장에 놓인 존재가 보이거나, 보이기 기대되는 모습을 북한은 전혀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 교수는 그러면서도 “북한에 대한 지원은 모순을 끌어안는 것이고, 모순을 견뎌내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눈앞의 현상에 일희일비 말고 훨씬 더 큰 그림인 ‘한반도 평화와 공동체’를 보는 게 필요하다는 의미다. 김신곤 통일보건의료학회 이사장은 북한군의 해수부 공무원 피격 사망 사건으로 우리 국민의 대북 인식이 차가워졌다는 점을 지적하면서도 “비극적 참사를 인도적 교류로 타개한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1983년 북한의 아웅산 테러로 우리 관료와 국민 21명이 사망했지만, 전두환 당시 대통령은 1년 뒤 홍수 피해에 대한 북한의 대남 물자지원 제안을 전격 수용해 이산가족 고향 방문 등 남북관계 개선의 물꼬를 텄다는 것이다.
 
토론을 맡은 신희영 대한적십자사 회장은 “지금 상황은 정말 북한을 도울 방도가 없다”며 “톱-다운 방식의 협의에서 ‘보건·의료 협력을 진행하자’는 말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의기투합이나 결단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신 회장은 북한 의료 실태에 대해 “갈라파고스처럼 고립된 섬”이라며 “헬스 시큐리티(health security, 보건·의료 안보) 차원에서라도 북한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코로나19와 관련한 대북지원과 남북 보건·의료 협력에 대한 목소리가 당국은 물론 의료계와 민간 차원에서도 높아지고 있지만, 돌파구는 열리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완강한 입장을 보이는 여파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군사퍼레이드 연설에서 “단 한 명의 악성비루스 피해자도 없이 모두가 건강하니 이것이 얼마나 고맙고 힘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라며 북한이 코로나 청정지역임을 주장했다. 자신과 고위 당 간부는 물론 수 만명 주민까지 마스크를 모두 벗은 채였다. 정부 당국자는 “코로나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최고지도자가 선포하는 자리인데 마스크를 쓸 수 없었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코로나 방역과 관련한 엄정 대처를 지시하면서 “어떤 지원도 허용 말라”고 강조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북한 대남라인과 방역 당국은 우리 민간단체 등에서 제안한 대북지원 물자를 챙길 엄두를 못 냈다고 한다. 지난달 12일 문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도 김정은은 “최근에도 귀측 지역에서 끊이지 않고 계속되는 악성비루스 확산” 운운하며 남측 코로나를 거론했지만, 남북 협력에 대해선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도 친서에서  “서로 돕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안타깝지만…” 이라며 남북 협력의 가능성이 사실상 차단된 형국임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상황은 코로나 관련 남측의 대북지원 사례가 전무하다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통일부는 올해 들어 3월 말부터 8월 12일까지 모두 6차례에 걸쳐 코로나 관련 대북 방역물자 반출을 승인했지만, 실제 북한이 수용한 사례는 없다고 밝혔다. 소독제나 마스크·방호복·진단키트 등 17억6000만원어치를 사실상 거부한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중국·러시아 등이 이미 지원을 하는 데다, 남측으로부터의 코로나 유입을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정이 이런데도 통일부와 일부 단체, 전문가 그룹에서는 현실과 동떨어진 묻지마식 대북지원 주장을 펼치고 있다.
 
북한은 당 창건 75주 행사 이후 ‘80일 전투’에 돌입한 상태다. 내년 1월 8차 노동당 대회까지 경제·산업 전반에서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노력동원 운동을 벌이겠다는 심산이다. 외부와의 차단벽을 더욱 높이겠다는 뜻도 드러냈다. 노동신문은 27일자 보도에서 “국경과 공중, 해상을 완전히 봉쇄한 지금이야말로 자립경제의 토대를 다질 호기”라고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을 했다. 핵과 미사일 도발로 자초한 대북제재에 설상가상으로 코로나와 태풍 피해까지 닥친 2020년을 김정은 위원장은 “끔찍한 해”(9·12 문 대통령에 보낸 친서)라고 표현했다. 감염병과 재해 극복을 위해 꼭 필요한 남북협력과 국제공조를 외면하는 독불장군식 리더십에 북한 주민은 그 어느 해보다 불안하고 고단한 겨울나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
 
북 관영매체 연일 코로나 상황에 촉각
조선중앙TV는 지난 27일 '죽음의 폭풍-악성전염병의 2차 파동'이라는 특집 프로그램을 통해 코로나19 확산 상황을 전하며 주민들의 방역에 경각심을 장조했다.

조선중앙TV는 지난 27일 '죽음의 폭풍-악성전염병의 2차 파동'이라는 특집 프로그램을 통해 코로나19 확산 상황을 전하며 주민들의 방역에 경각심을 장조했다.

28일자 노동신문에는 코로나19 관련 기사가 9건 실렸다. 근래들어 부쩍 기사 건수를 늘린 것이다.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행사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코로나 전쟁 승리’를 선언했지만 여전히 바짝 긴장한다는 방증이다. 외부 소식 알리는데 둔감하던 북한 매체들은 코로나 관련 뉴스는 거의 실시간으로 전한다. 조선중앙TV는 27일 ‘죽음의 폭풍-악성 전염병의 2차 파동’(사진)이라는 특집 프로그램에서 “세계는 악성 전염병의 2차 파동이라는 거대한 폭풍에 휘말려 들었다”고 강조했다. 영국·이탈리아·스페인 등 서유럽 국가의 코로나 재유행 상황을 전했다. 특히 “프랑스 감염자 수가 22일 4만1600여명으로 유럽에서 가장 많았다”며 경각심을 갖자고 촉구했다.
 
이런 움직임은 체제 차원의 노력동원인 ‘80일 전투’를 내년 1월 8차 당 대회까지 벌이겠다고 선언한 데 따른 조치로 보인다. 김정은 정권 들어 2016년 7차 당 대회 전후 진행한 70일 전투·200일 전투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대북제재와 감염병, 태풍 피해로 인한 부진을 만회하겠다는 계획인데, 코로나가 관건일 수 있다. 북한은 비상 방역사업을 “80일 전투의 선차적 과업”으로 규정했다. 정유석 한국수출입은행 북한·동북아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최근 비상방역법을 제정하면서 북한의 방역정책이 완벽한 봉쇄에서 관리를 통한 확산 방지로 전환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정영교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원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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