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박정호의 문화난장] 50년 전 전태일이 띄운 편지

중앙일보 2020.10.29 00:28 종합 26면 지면보기
박정호 논설위원

박정호 논설위원

전시장 한구석에 낡은 편지지 두 장이 놓여 있다. 1970년 3월 10일 서울 쌍문동 산1번지에 살던 청년 전태일이 중앙일보에 보낸 편지다. 중앙일보 정기 구독자라고 밝힌 전태일은 그해 2월 24일자 기사를 읽고 자신의 눈 하나를 기증하겠다고 밝혔다. 실명의 고난을 극복하고 음대를 졸업한 두 명에게 “발전해가는 조국 건설의 웅장하고 믿음직한 여러 아름다운 실제들을 보이고 싶다”고 썼다.
 

모범기업 설립비 구하려
“안구 기증하겠다” 밝혀
코로나19로 양극화 가속
노동의 가치 어디서 찾나

중앙일보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했다. 2월 24일자가 아닌 23일자였다. 8면짜리 신문을 발행하던 시절, 그날 7면 사회면 ‘주사위’ 코너에 실린 기사였다. 연세대 음대 작곡과와 성악과를 각각 졸업한 시각장애인 김승연·유진태씨와 그들의 길잡이를 한 선배 이보형씨의 미담을 소개했다.
 
전태일의 안구 기증 의사는 성사되지 않았다. 정확한 연유는 알 수 없지만 편지는 반송됐다. 전씨의 일기장에 보관됐다가 나중에 알려지게 됐다. 고(故) 조영래 변호사가 쓴 『전태일 평전』에 따르면 전씨는 “한쪽 눈을 사회에 봉사해서” 그를 도와줄 독지가를 찾으려고 했다. 그가 추진한 모범기업체 설립에 필요한 3000만원이었다.
 
서울 청계천 전태일기념관 앞에 설치된 ‘코로나와 싸우는 의료노동자’ 조각상. 기념관 외부의 글씨는 전태일이 1969년 근로감독관에게 보낸 진정서다. [중앙포토]

서울 청계천 전태일기념관 앞에 설치된 ‘코로나와 싸우는 의료노동자’ 조각상. 기념관 외부의 글씨는 전태일이 1969년 근로감독관에게 보낸 진정서다. [중앙포토]

지난해 4월 서울 청계천로 105에 문을 연 전태일기념관을 찾아갔다. 전씨가 구상한 모범기업체의 구인광고를 볼 수 있었다. 기업명 태일피복. 종업원 157명 모집에 근로기준법 준수라는 조건을 달았다. 주 6일 하루 8시간 근무에 숙련 미싱사 월급 3만원(타 회사는 1만원), 시다 8000원(타 회사는 1000~1500원), 월 교육비 2000원, 위생비 2000원 지급을 약속했다. ‘태일피복이 바로 당신의 인격을 말해줍니다’라는 문구도 눈에 띈다.
 
전씨의 계획은 물론 실현되지 않았다. 그도 어처구니없는 공상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도 신문사에 편지를 띄울 만큼 있는 방법, 없는 방법을 모색한 것으로 보인다. 대학노트 30쪽의 사업계획서도 작성했다. 높이 1.5m 비좁은 작업장에서 하루 15시간 일하면서도 저임금에 시달린 당시 평화시장 직공들을 위해서다. 그는 정당한 세금을 내고, 근로기준법을 준수하고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 경제인에게 입증시키겠다고 했다.
 
전씨가 내건 조건은 파격이었다. 하루 8시간, 주 40간 근무가 일상화된 현재 기준에서 볼 땐 상식적 제안에 불과하지만 당시로선 쉽게 공언할 사항이 아니었다. 조문만 있지 근로기준법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던 때였다. 그가 근로감독관을 찾아가 평화시장의 열악한 사정을 호소해도 비웃음만 사던 때였다. 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 앞길에서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치르며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던 전씨의 외침은 그런 비인간적 환경에 대한 최후의 저항이었다.
 
예쁜 꽃무늬 마스크를 쓰고 있는 서울 평화시장 앞길의 전태일 동상.

예쁜 꽃무늬 마스크를 쓰고 있는 서울 평화시장 앞길의 전태일 동상.

전태일기념관 외벽에 조각가 이원석씨가 올해 설치한 ‘어느 청년노동자 상’이 있다. 근로기준법을 든 전씨가 붉은 벽돌벽을 뚫고 나오는 형상이다. 그가 지핀, 인간다움을 향한 불씨는 우리 사회의 많은 것을 달라지게 했다. 분신이라는 50년 전의 선택은 아직도 지울 수 없는 비극으로 남아 있지만 지난 반세기 인간과 노동의 가치를 되비추는 거울 역할을 해왔다.
 
전태일 50주기를 맞아 전시·공연 등 각종 문화 행사가 열리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에 묻혀 조용히 진행되고 있지만 그가 남긴 과제는 현재진행형이다. 노사갈등을 넘어 노노분쟁이 불거진 시대, 고용 형태 다양화에 따른 노동 유연성의 시대, 제조업에서 첨단 IT로 산업의 축이 넘어간 시대, 인간과 기계가 일자리를 다투는 시대, 경제 주권을 둘러싼 국제 경쟁이 극한인 시대라지만 인간이 생략된 노동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요즘 뜨거운 이슈인 택배기사 처우 개선 논란도 크게 보면 전태일의 연장선에 서 있다. 지하철에서, 발전소에서, 공사장에서 쓰러져가는 이들에 대한 관심과 대책 마련은 이념·정파를 떠난 문제임이 분명하다.
 
전태일기념관 앞에 코로나19 바이러스를 껴안은 조각상(나규환의 ‘코로나와 싸우는 의료노동자’)이 설치됐다. 50년 전 충격의 현장인 종로5가 전태일다리의 전태일 동상은 꽃무늬 마스크를 쓰고 있다. 코로나19로 사회양극화가 더욱 도드라진 요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월급 격차가 2004년 통계 작성 이래 최대로 벌어졌다는 뉴스도 있다. 곳곳이 아우성이다. 뾰족한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 집에 갈 버스비를 털어 어린 여공들에게 풀빵을 사준 전태일의 따듯한 심장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
 
박정호 논설위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