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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별세] 삼성뿐 아니라 한국사회를 바꿨다…르네상스형 인간 이건희 회장

중앙일보 2020.10.28 17:14
2011년 7월 6일 남아공 더반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 참석한 이건희 삼성회장이 평창 유치위 프리젠테이션이 끝난 뒤 자크로게 IOC위원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1년 7월 6일 남아공 더반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 참석한 이건희 삼성회장이 평창 유치위 프리젠테이션이 끝난 뒤 자크로게 IOC위원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故) 이건희 회장은 ‘전인적 르네상스인’으로 평가받는다. 기업인으로서 삼성을 세계일류 기업으로 올려놓은 것뿐 아니라 문화와 예술·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 큰 관심을 가졌다. 이런 관심이 실제 투자와 육성으로 이어졌고 한국 사회 전반의 변화를 이끌었다는 평가다. 
 

스포츠 외교관으로 활동…비인기 종목도 투자

이 회장은 탁월한 '스포츠 외교관'이기도 했다. 그는 1996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 선임되면 국제 스포츠계에서 활동했다.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를 위해서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부터 2011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 IOC 총회까지의 기간에 170일 해외출장 일정을 소화하기도 했다. 평창은 세 차례 도전 끝에 2018년 올림픽을 유치했는데, 이 회장의 공로가 큰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건희 삼성그룹회장이 한국레슬링 협회장 자격으로 서울올림픽 레슬링 금메달리스트 김영남선수에게 시상하고 있다. (1988년) 중앙포토

이건희 삼성그룹회장이 한국레슬링 협회장 자격으로 서울올림픽 레슬링 금메달리스트 김영남선수에게 시상하고 있다. (1988년) 중앙포토

 
비인기 종목에 대한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삼성은 야구ㆍ축구ㆍ농구ㆍ배구 등 4대 프로 스포츠팀뿐 아니라 탁구ㆍ레슬링ㆍ배드민턴ㆍ육상ㆍ태권도팀을 운영 중이다. 고교때 선수로 활동했던 레슬링에 대한 애정도 커 대한레슬링협회장(1982~1997년)도 역임했다. 이 기간 한국 레슬링은 올림픽에서만 7개의 금메달을 따내며 황금기를 누렸다. 스포츠 발전에 힘쓴 공로로 1984년 대한민국 체육훈장 맹호장, 1986년 대한민국 체육훈장 청룡장, 1991년 IOC 올림픽훈장을 받았고, 2017년에는 명예 IOC위원으로 선출됐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지난 26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이 회장에 대해 “삼성을 혁신한 기업인인 만큼 IOC의 혁신에 대해서도 많은 지원을 해줬다”며 “IOC는 고인을 깊이 추모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유승민 대한탁구협회장(IOC위원)은 “이건희 회장님은 다양한 종목의 스포츠단을 창단하고 많은 지원을 한 것은 물론 IOC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국격을 높이신 진정한 스포츠 영웅”이라면서 “제가 IOC 위원으로 활동할 수 있었던 배경도 이 회장님이 한국 스포츠에 남기신 유산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 위원은 “올림픽 때마다 선수촌에 직접 오셔서 격려해주셨던 기억이 난다”면서 “아테네 금메달 이후에는 ‘중국을 꺾고 금메달을 딴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냐’며 칭찬해주시기도 했다”고 말했다.  
 

백남준 등 예술계 전폭적 후원…“거장이셨다”  

이 회장은 소문난 고미술 애호가이면서 예술계의 든든한 후원자였다. 실제로 삼성문화재단은 다량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으며 수집한 문화유산은 용인의 호암미술관 등을 통해 선보이고 있다. 2004년 서울 한남동에는 리움미술관을 개관하기도 했다. 부인 홍라희 전 관장이 이끈 리움은 대형 전시와 작가 지원으로 미술계에 큰 공헌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작가 중에는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고 백남준도 있다. 1987년 이건희 회장을 만나기 전까지 일본의 소니제품을 사용했던 백남준은 이후 삼성전자 제품으로 작품활동을 이어갔다.  
 
백건우 피아니스트가 27일 오후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백건우 피아니스트가 27일 오후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예술계 인사들은 장례기간 빈소를 찾아 고인을 추모했다. 국내 클래식계를 대표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인 백건우 등이 27일에 빈소를 찾았다. 두 사람은 각각 이건희 회장이 부친인 이병철 선대회장을 기리며 만든 호암상 예술상을 수상한바 있다. 정경화씨는 “이건희 회장은 아주 거장이고, 이 나라에 자신감을 줬다”며 “국제 어디를 나가더라도 ‘내가 한국인이다’ 이런 자신감을 줬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보육과 의료 시스템도 일류 추구…기업이 나서야 한다  

이건희 회장은 한국이 선진국으로 발전하기 위한 방편으로 여성인력 활용과 어린이집 설립을 역설하기도 했다.  1987년 신라호텔에서 오찬을 하던 도중 창밖의 낙후된 집을 보고 “저기 사는 사람들이 제대로 근무하려면 아이들을 편안하게 맡겨야 할 텐데, 좋은 곳에 맡길 수 없을 것 아니냐”며 “그러면 우리가 해야 한다”고 어린이집 건립을 지시하기도 했다. 
 
한용외 전 삼성사회봉사단 사장은 “삼성은 1989년 ‘달동네’였던 서울 송파구 마천동에 직접 땅을 사고 집을 지어서 서울시에 기증하는 방법으로  천마 어린이집을 세우는 등 지금까지 전국 57곳에 어린이집을 세웠다”며“직장 내에 어린이집을 지은 것도 삼성이 국내에서 처음”이라고 말했다. 

삼성서울병원 전경. 사진 삼성서울병원

삼성서울병원 전경. 사진 삼성서울병원

 
삼성의료원 역시 일류병원을 만들라는 이건희 회장의 지시로 설립됐다. 이건희 회장은 생전 “낙후된 병원이 환자 입장에서 얼마나 큰 고통인지 알면서 그대로 두는 것은 기업 총수로서 할 일이 못된다”고 말했다. 세계 40개국의 일류 병원을 벤치마킹한 삼성의료원은 현재 국내 최고의 종합병원으로 성장했다. 서동면 삼성물산 전무는 "1993년 삼성서울병원 공사 당시 현장을 찾은 이 회장의 모습을 기억한다"며 "회장은 '3시간 걸려 3분 진료받는 현실, 보호자 노릇 3일이면 환자가 되는 현실, 촌지라도 집어줘야 좀 어떠냐고 물어보는 현실'을 지적하시면서  '모든면에서 세계 초일류 병원을 만들라'는 주문을 했다"고 회상했다.
이 회장은 병원 뿐 아니라 부속시설 중 하나인 장례식장 시설과 문화에도 변화를 주도했다. 이 회장은 병원 공사 과정에서 피로에 지친 상주가 샤워하고, 쉴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하라고 구체적인 지시를 했다. 서 전무는 “이후 삼성의료원 장례식장엔 시설 개선 뿐 아니라 당시 만연했던 화투와 지나친 음주 등의 문화도 사라졌다”면서 “이 회장이 만든 삼성의료원이 앞서 장례문화를 선도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사회 복지 인프라 구축은 기업이 당연히 나서야 하는 분야가 아닐 뿐더러 선진국에서는 요구하지 않는 드문 일"이라면서 "이건희 회장과 삼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다양한 역할을 맡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장주영 기자 jang.joo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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