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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패션위크' 디지털 패션쇼…표현력 풍부해졌지만, 영상 조회수 부담 커져

중앙일보 2020.10.28 15:14
누구나 ‘패션쇼 1열’에 앉는 시대가 됐다. 초대권을 가진 사람만 들어갈 수 있었던 패션쇼 무대가 모니터 속으로 들어오면서 안방 1열에서의 관람이 가능해졌다. 이른바 비대면 패션쇼, 디지털 런웨이다.  
지난 20일부터 25일까지 6일간 ‘서울패션위크 21S/S’가 디지털로 진행됐다. 명예 디자이너로 선정된 지춘희 디자이너의 ‘미스지컬렉션’을 시작으로 국내 34개 디자이너 브랜드의 영상이 차례로 공개됐고, 신진 디자이너를 위한 ‘제너레이션 넥스트’ 부문도 9개 브랜드의 영상을 선보였다. 이번 디지털 패션쇼 영상은 네이버 스타일 TV와 V라이브, 서울패션위크 공식 채널에서 중계됐다. 해외에선 네이버 스타일 TV, V라이브, 위챗 서울패션위크 미니 프로그램, 서울패션위크 유튜브, 패션 필름 플랫폼 쇼스튜디오 등의 채널을 통해 관람할 수 있었다. 국내외 채널을 통해 서울패션위크를 관람한 사람은 총 67만 명(26일 기준)을 넘어섰다. 

2021 SS 서울패션위크 리뷰

코로나19로 인한 언택트 시대를 맞아 '서울패션위크'가 올해 처음 디지털 패션쇼로 열렸다. 사진은 지춘희 디자이너의 '미스지컬렉션' 피날레 장면. 사진 서울디자인재단

코로나19로 인한 언택트 시대를 맞아 '서울패션위크'가 올해 처음 디지털 패션쇼로 열렸다. 사진은 지춘희 디자이너의 '미스지컬렉션' 피날레 장면. 사진 서울디자인재단

 

공간 한계 벗어나, 서울 곳곳 누비다

오프라인 패션쇼의 형식은 대부분 비슷하다. 새로운 시즌의 옷을 입은 모델이 음악에 맞춰 무대를 걸어 나오면서 객석의 관객들에게 디자인과 스타일, 분위기를 전달한다. 하지만 무대를 벗어난 디지털 패션쇼는 공간적 한계가 없다. 거리에서, 공원에서, 디자이너 작업실에서 혹은 가상의 공간에서 펼쳐진다.   
장소의 한계가 없는 디지털 패션쇼의 특성을 잘 살려 웅장한 배경에서 펼쳐진 장광효 디자이너의 '카루소' 컬렉션. 사진 카루소 2021SS 컬렉션 화면 캡처

장소의 한계가 없는 디지털 패션쇼의 특성을 잘 살려 웅장한 배경에서 펼쳐진 장광효 디자이너의 '카루소' 컬렉션. 사진 카루소 2021SS 컬렉션 화면 캡처

장광효 디자이너의 ‘카루소 2021SS 컬렉션’은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에서 ‘비밀의 화원’이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거대한 붉은색 벽돌 건물이 드리운 그림자 아래 여섯 명의 모델이 카루소 의상을 입고 등장했다. 조선말기 천주교 박해의 비극적 역사가 기록된 장소에서 펼쳐지는 현대적인 패션쇼는 색다른 분위기를 전달하기에 충분했다. 약 7분 가량의 짧은 영상이지만 10시간 이상 촬영한 결과라고 한다. 장 디자이너는 “하나의 주제 아래 음악과 의상이 어우러지면서 기승전결을 갖춰 진행된다는 점에서 리얼 무대와 영상의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며 “다만 영상 제작 경험치가 적다 보니 메시지를 담는 동시에 옷까지 세세하게 보여주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프라인 패션쇼는 디자이너 대부분의 무대가 비슷해서 옷 외에는 차별화 방법이 없었는데, 영상은 장소는 물론 형식도 다양해서 특정 콘셉트나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효과적”이라고 덧붙였다.   
임선옥 디자이너의 ‘파츠파츠2021SS 컬렉션’ 영상은 디자이너 작업실인 듯 보이는 공간에서 모델들이 옷의 패턴을 따고, 자로 치수를 재는 등의 작업을 하면서 시작된다. 이후 작업실을 나와 공원과 숲을 거닐면서 본격적인 런웨이가 진행된다. 모델들이 야외 정원에서 춤을 추듯 유연한 몸짓을 표현하는가 하면 숲 사이로 걸어 나오는 장면 등이 ‘제로 웨이스트(쓰레기를 생산하지 않는 친환경 운동)’ 패션 브랜드의 정체성을 잘 살렸다는 평이다. 임선옥 디자이너는 “많은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 관람하는 패션쇼는 큰 비용과 에너지를 소모하는 행사일 수밖에 없다”며 “코로나19 때문에 강제로 시기가 당겨지긴 했지만 지속 가능한 패션쇼를 선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디지털로의 변화를 환영한다”고 했다.
'제로 웨이스트' 패션 브랜드의 정체성을 살려 숲 속 런웨이 장면을 연출한 임선옥 디자이너의 '파츠파츠'. 사진 파츠파츠 2021 SS 컬렉션 화면 캡처

'제로 웨이스트' 패션 브랜드의 정체성을 살려 숲 속 런웨이 장면을 연출한 임선옥 디자이너의 '파츠파츠'. 사진 파츠파츠 2021 SS 컬렉션 화면 캡처

이밖에도 이재형 디자이너의 ‘막시제이’는 서울 도심 곳곳을 누비는 감각적인 런웨이 영상을 선보였다. 도심 속 아파트와 교각, 바쁜 거리와 높은 빌딩 숲 사이를 마스크를 쓰고 걷는 모델들을 통해 현시대의 리얼한 풍경을 반영하기도 했다. 한현민 디자이너의 ‘뮌’ 역시 도심 건물의 너른 옥상과 주차장 등을 활용해 밝은 낮부터 해질녘 노을까지 다양한 조명 아래 시시각각 변화하는 의상의 분위기를 풍성하게 담아냈다.  
밝은 낮부터 해질무렵까지 시간의 흐름을 영상으로 담아 옷을 보다 풍성하게 표현한 한현민 디자이너의 '뮌.' 사진 서울디자인재단

밝은 낮부터 해질무렵까지 시간의 흐름을 영상으로 담아 옷을 보다 풍성하게 표현한 한현민 디자이너의 '뮌.' 사진 서울디자인재단

 

광고 영상 같기도…감각적 패션 필름 선보여

"약 8분 분량의 영상이면서, 20~30벌의 의상이 등장하고, 지나치게 추상적이지 않으며, 옷의 세부와 전체가 잘 보이도록 제작해 달라." 이번 디지털 패션쇼를 앞두고 주최측인 서울디자인재단이 디자이너들에게 전달한 가이드라인이다.   
앞으로 걷는 여러 명의 모델을 나란히 이어서 옆으로 흘러가는 형태의 영상을 연출한 박승건 디자이너의 '푸시버튼.' 사진 서울디자인재단

앞으로 걷는 여러 명의 모델을 나란히 이어서 옆으로 흘러가는 형태의 영상을 연출한 박승건 디자이너의 '푸시버튼.' 사진 서울디자인재단

 
결과는 다양했다. 오프라인 패션쇼와 비슷한 형식으로 무대 위를 걸어 나오는 단순한 영상을 제작한 디자이너들이 있는가 하면, 광고 영상 혹은 패션 영화처럼 감각적인 영상들을 선보인 디자이너들도 있었다.   
마치 게임 속 캐릭터 소개처럼 창을 분할해 의상의 전체 모습과 세부를 모두 보여준 박윤희 디자이너의 '그리디어스.' 사진 그리디어스 2021 SS 컬렉션 화면 캡처

마치 게임 속 캐릭터 소개처럼 창을 분할해 의상의 전체 모습과 세부를 모두 보여준 박윤희 디자이너의 '그리디어스.' 사진 그리디어스 2021 SS 컬렉션 화면 캡처

 
‘그리디어스’의 박윤희 디자이너는 독특한 그래픽 패턴이 만화경처럼 돌아가는 배경 위에 게임 속 캐릭터 소개처럼 모델들을 등장시켜 시선을 모았다. 박 디자이너는 “행복의 절정을 의미하는 ‘클라우드 나인’을 형상화했다”며 “코로나19라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긍정적인 기운을 불어 넣어주고 싶었다”고 했다. 디지털 패션쇼에 대한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무대가 갖는 압도적인 현장감을 영상으로 대신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영상으로 주제를 표현하는 일이 처음이다 보니 의상의 색상 표현이나 화면 디자인 등을 세세히 챙기기 어려웠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미지 영상을 배경으로 모델들이 등장한 이성동 디자이너의 '얼킨.' 사진 얼킨 2021 SS 컬렉션 화면 캡처

이미지 영상을 배경으로 모델들이 등장한 이성동 디자이너의 '얼킨.' 사진 얼킨 2021 SS 컬렉션 화면 캡처

이성동 디자이너의 ‘얼킨’ 역시 몽환적인 이미지 영상을 배경으로 모델이 등장하는 형식을 선보였다. 특히 모델의 모습이 콜라주처럼 겹쳐 표현되는 등 실험적인 도입부 영상이 눈길을 끌었다. 이 디자이너는 “전통적 런웨이선 할 수 없는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며 “다만 영상의 경우, 조회수가 높아야 효과적이기 때문에 앞으로 모델 기용이 일부 인기 모델이나 인플루언서 쪽으로 집중될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유지연 기자 yoo.jiyo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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