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헌법 환경권…40년 전 '장식용'에서 환경정책 발전 밑거름됐다

중앙일보 2020.10.28 05:00
지난 5월 서울 양천구 안양천 생태공원 테마원 맑은 하늘 아래 장미꽃이 활짝 피어 있다. 27일은 '깨끗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인 환경권이 우리 헌법에 도입된 지 40년이 되는 날이다. 뉴스1(양천구청 제공)

지난 5월 서울 양천구 안양천 생태공원 테마원 맑은 하늘 아래 장미꽃이 활짝 피어 있다. 27일은 '깨끗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인 환경권이 우리 헌법에 도입된 지 40년이 되는 날이다. 뉴스1(양천구청 제공)

"모든 국민은 깨끗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1980년 10월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공포한 5공화국의 8차 개정 헌법에는 이 같은 '환경권'이 명시돼 있었다.

 
87년 개정된 현행 헌법 35조에도 이 환경권 조항은 유지되고 있어 헌법에 '환경권'이 도입된 지 꼭 40년이 됐다.
 
환경부는 27일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 한국환경법학회 주관으로 서울 여의도 글래드호텔에서 '환경권의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환경권 40주년 기념 포럼·국제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는 1부 전문가 포럼과 2부 국제학술대회(웹비나)로 나눠 진행됐다.
조명래 환경부 장관이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에서 개최된 '환경권 40주년 기념 전문가 포럼'에서 인사말 하고 있다. 연합뉴스(환경부 제공)

조명래 환경부 장관이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에서 개최된 '환경권 40주년 기념 전문가 포럼'에서 인사말 하고 있다. 연합뉴스(환경부 제공)

 

"환경권은 실체적 권리"

환경권 40주년 포럼 대표이자 한국환경한림원 회장인 이규용 전 환경부 장관이 기조 강연을 하고 있다. 강찬수 기자

환경권 40주년 포럼 대표이자 한국환경한림원 회장인 이규용 전 환경부 장관이 기조 강연을 하고 있다. 강찬수 기자

1부 포럼에서 기조연설에 나선 이규용 한국환경한림원 회장(전 환경부 장관)은 "권위주의적 정부가 만든 헌법에 처음 환경권이 도입됐을 때만 해도 국가권력 자체가 관심이 없었던 장식용 환경권 시대였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거치고 환경 운동이 강력하게 전개되면서 80년대 중반 이후 '환경권 발아기(發芽期)'를 맞았고, 90년대 낙동강 페놀 오염사고를 거치면서 환경권을 보장하기 위한 환경정책의 '성장기'를 맞게 됐다는 것이다.
1980년 10월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국민투표를 거쳐 확정된 8차 개헌안에 서명하고 있다. 중앙포토

1980년 10월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국민투표를 거쳐 확정된 8차 개헌안에 서명하고 있다. 중앙포토

2000년대 이후에는 환경 정책의 추진 성과가 가시화되는 동시에 환경권 보장의 업그레이드가 요구되는 '환경권의 확장기'에 들어섰다고 이 회장은 정리했다.
환경정책의 발전과 그 성과의 배경에는 헌법에 명문화된 환경권이 바탕에 자리잡은 덕분이라는 것이다.
 
이 회장은 "우리 학설과 판례는 환경권을 '추상적 권리'로 보고 있으나, 국민 개개인에게 인정된 실체적 권리"라며 "헌법재판소도 환경권이 종합적 기본권의 성격을 가진다고 판시한 바 있다"고 밝혔다.
 
다른 기본권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환경권의 보장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환경권을 더욱 보장하기 위해서는 국가와 개인, 기업 등이 모두 함께 확인하고 추구해야 할 4가지 대원칙, 즉 ▶생명존중 ▶지속가능한 발전 ▶모든 경제 주체의 고통 분담 ▶확고한 법 집행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환경단체 소송법 제정 필요"

27일 열린 환경권 40주년 포럼. 강찬수 기자

27일 열린 환경권 40주년 포럼. 강찬수 기자

한상운 KEI 선임연구위원은 '환경권 구현의 입법 과제'라는 주제 발표를 이맡았다.
 
그는 "KEI에서는 2018년 개헌 논의에 맞춰 환경 헌법 개정에 대한 포럼을 운영했는데, 환경권 조항을 사회권 조항과 별도로 제10조의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 추구권 등과 연계해 총론적 조항으로 옮겨야 한다는 전문가의 지적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또, 현행 헌법 35조 2항에서는 "환경권의 내용과 행사에 관해서는 법률로 정한다"고 돼 있어 환경권을 법률에 유보하고 있는데, 이 조항을 삭제하고, 헌법에 구체적인 내용을 담아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환경권 실현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환경단체가 원고가 돼 소송을 진행할 수 있도록 환경단체소송법을 제정하고 ▶환경영향평가에서 주민들이 적절한 시기에, 이해하기 쉬운 내용으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개선하고 ▶환경권 보장을 위한 행정 구제 수단의 통폐합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 연구위원은 "선진국 가운데 환경단체의 원고적격을 인정하지 않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라며 "중국에서도 민사소송법과 환경보호법에 환경단체 소송을 규정해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소개했다.
 

"자연 파괴하라고 정부에 권력 맡긴 적 없어"

한국청소년기후소송단 회원들이 지난해 5월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524 청소년 기후행동 기후변화 대응 촉구 집회'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스1

한국청소년기후소송단 회원들이 지난해 5월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524 청소년 기후행동 기후변화 대응 촉구 집회'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스1

2부 국제학술대회에서는 미국 오레곤대학 법학과 메리 우드 교수(환경과 자연자원 법률 센터장)와 독일 베를린자유대학의 크리스티안 칼리스 교수 등이 현지에서 인터넷을 통해 참여했다.
 
우드 교수는 '자연과 미래세대를 위한 환경권'이란 주제 발표에서 '공공 신탁(信託, trust)의 원칙'을 설명했고, 미국과 한국 등 전 세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젊은이들의 기후 소송을 언급했다.
기후 소송은 정부가 과학에 기반을 두고 충분하고 신속한 온실가스 감축 대책을 마련, 기후 위기를 피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소송이다.
메리 우드 교수. [오레곤 대학]

메리 우드 교수. [오레곤 대학]

우드 교수는 "공공 신탁의 원칙이란 사람들이 헌법과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치"라며 "시민이 정부에 권력을 부여할 때는 정부가 시민의 생존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기를 기대하는 것이지 천연자원, 자연을 파괴하라고 권력을 준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2015년 21명의 청소년이 시작한 미국의 대기 신탁 소송은 아직 계류 중인데, 제9 순회 항소법원은 지난 1월 법원이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밝혔지만, 그럼에도 젊은이들이 안정된 기후를 누릴 기본권이 있음을 인정한 것은 큰 승리"라고 지적했다.
 

"환경권 개선 위해 보완 필요"

환경권 40주년 포럼에서 6가지 제안을 발표하는 강금실 지구와 사람 대표(전 법무부 장관). 강찬수 기자

환경권 40주년 포럼에서 6가지 제안을 발표하는 강금실 지구와 사람 대표(전 법무부 장관). 강찬수 기자

강금실 지구와 사람 대표(전 법무부 장관)는 이날 행사에서 "환경권이 헌법에 도입된 이후 72개의 환경법률이 만들어졌지만, 현재의 환경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지구 공동체와 인간을 위한 환경권 제안'을 발표했다.
 
강 대표는 환경권을 보장하고 환경보호 책임을 다하기 위해 필요한 6가지를 제안했는데, ▶'자연'과의 조화를 국가 목표로 삼아 헌법에 천명할 것 ▶정부는 법률로써 구속력을 갖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할 것 ▶정보 접근권과 의사결정 참여권을 보장할 것 ▶지속가능발전위원회의 독립적 위상을 복원할 것 ▶기업의 지속가능한 환경경영체제를 구축할 것 ▶법과 문화에 지구 공동체의 실재성과 가치를 반영할 것 등이다.
 
한편, 환경부는 지난 6월부터 정계·학계·언론계·시민단체 등 각 분야 인사들이 참여하는 '환경권 40주년 기념 포럼'을 운영해왔다.
그동안 3차례 포럼에서 '환경권의 실질화 방안', '환경권과 환경정의', '기후변화와 환경권' 등 다양한 주제를 논의했다.
27일 환경권 40주년 포럼에 참석한 강금실 지구와 사람 대표와 이규용 한국환경한림원 회장, 윤제용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장(왼쪽부터). 강찬수 기자

27일 환경권 40주년 포럼에 참석한 강금실 지구와 사람 대표와 이규용 한국환경한림원 회장, 윤제용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장(왼쪽부터). 강찬수 기자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