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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철인을 자처하는 정부·여당

중앙일보 2020.10.28 00:35 종합 29면 지면보기
채병건 정치외교안보에디터

채병건 정치외교안보에디터

객관적인 실체는 엄연히 그 자체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대상은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을 통해 현실로 완성되는가. 지금 한국 사회는 이 철학적 질문의 답을 구하기 위해 거대한 실험을 하는 것 같다. 실험에 나선 주체는 정부·여당이다. 사회 각 분야에서 전방위로 진행 중이다.
 

현실에 시선 더해 재해석
국민 피살에 월북 혐의 부각
전세난엔 주거 안정 온다
현실 비판 땐 적폐로 몰아

그간 평범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상식은 A=A였다. ‘전세난=전세난’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핵무기’다. 그런데 정부와 여당의 접근법은 이를 뛰어넘었다. 현상은 시선을 통해 새롭게 정의되고 완성된다는 ‘A(현상)+B(시선)=C(해석된 현실)’ 공식을 곳곳에서 적용하고 있다. 일찌감치 전세난 우려가 계속됐는데 주무장관은 한 달 전 “몇 개월 있으면 전셋값이 점차 안정을 찾을 것”이라고 했다. 이 정부 전반기에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한 뒤 곳곳에서 아르바이트 자리가 줄었는데 정부는 고용감소 효과는 없다고 밝혔다. 북한이 신형 ICBM을 공개하자 여권에선 ‘핵무기는 대미용’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서해에서 한국 공무원이 피살됐는데 정부와 여당은 월북 가능성을 전면에 부각했다.
 
즉 정부·여당의 접근법은 ‘전세난+정책 효과 반영될 것=주거 안정’이고, ‘북한 ICBM+남녘 동포 발언은 긍정적=상호 협력 재개 기대’가 된다. ‘보좌관에게 전화하라고 시킨 일이 없다+기억나지 않는다=거짓 진술 아니다’이다. ‘피살당한 한국 국민+월북 가능성 다분=정부에 책임을 묻지 말라’가 된다.
 
서소문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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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는 대상을 내가 바라보는 것인지, 내가 바라봄으로서 비로소 우리가 의식하는 현실이 되는 것인지는 참으로 매혹적인 토론거리다. A=A가 당연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A+B=C도 작동 중이다. 사실 정치는 자신들의 이해에 맞춰 현실을 재해석해 지지자들에게 내놓는 게 일상이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도 A는 어느 순간 C가 된다. 내가 이름을 불러줘야 그가 꽃으로 존재하고, 그 전까지는 무의미한 몸짓에 불과하다. ‘몸짓=몸짓’에서 ‘몸짓+이름 부르기=꽃’이라는 기적이 만들어진다. ‘바라보는 나’의 중요성은 누구나 다 아는 물컵 묘사에도 담겨 있다. 물이 절반이 담긴 물컵을 놓고 누구는 ‘절반이나 남았다’고 하고, 누구는 ‘절반밖에 없다’고 한다. A+B=C에서 B에 따라 C가 달라진다.
 
그런데 현 정부가 보여주는 관찰자 효과 B는 물컵의 비유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절반이나 남았든 절반밖에 없든 전제는 ‘절반’이다. ‘절반’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반면 정부·여당은 A+B=C를 밀어붙이면서 A라는 출발점을 지우려 한다. 주거 안정 효과가 나올 것으로 규정하는데 전세난은 그대로다. 남북 협력을 추진한다는 데 북핵 위협은 그대로다. ICBM은 대미용이라 한들 북한의 스커드 핵 미사일은 없어지지 않는다. 기억나지 않는다 한들 법무장관이 보좌관에게 카톡 문자를 보낸 건 사라지지 않는다. 공무원의 월북 가능성을 집요하게 부각하는데 그가 피살당했던 현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 정부가 그토록 미워하는 게 검찰의 언론 플레이인데 정부 부처가 월북의 정황이라며 이미 사망해 반론권조차 행사할 수 없는 고인을 상대로 도박 빚이 얼마고 떼먹은 꽃게 대금이 얼마라며 샅샅이 공개하는 건 피의사실 공표를 연상케 한다.
 
정치의 힘은 엄혹한 현실을 가리는 게 아니라 현실을 극복할 미래를 보여주는 데 있다. 이게 비전이다. 현실은 바꾸기엔 너무나 단단하기 때문에 ‘담대한 희망’으로 용기를 불어넣으려 했고, 기득권이 대우받는 사회였기 때문에 ‘사람이 먼저다’라고 내걸었다.
 
그런데 지금 정부·여당의 태도는 자신들에게 불편한 현실을 현실로 인정하며 이를 극복할 대책을 고민하는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현실 자체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거나, 현실에 대한 불만 제기를 적폐 세력의 흔들기로 비난하거나, “과거 정부에선 이보다 더했다”고 비교하거나, 과거 정부에 책임을 돌린다. 때론 현실을 초월하는 논리도 만든다. ‘전세는 없어질 제도’라는데 전세가 옳고 그름의 판단의 대상인지는 이번에 처음 알았다. A를 부정하는 한 아무리 신박한 B라는 프리즘을 동원해도 결론 C는 문제를 해결하거나 최소한 증상을 완화할 해법에 근접하기 어렵다. 내가 정의한 현실만이 옳다고 밀어붙이는 건 정부·여당이 철인을 자처하는 것이고 이는 위험한 오만이다.
 
채병건 정치외교안보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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