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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 인터뷰 | 열혈 팬 이재술 소믈리에가 보는 '나훈아 신드롬'

중앙일보 2020.10.28 00:05
젊은 시절 못지않은 에너지로 아날로그 감성 일깨워 깊은 감동
“목소리에 전과 다른 미세한 떨림, 세월의 무게 거스를 수 없어”

"다시 정점에 선 훈아 형 이제 내려올 준비 해야지요"

나훈아의 LP 앨범에 둘러싸인 열혈 ‘나훈아 마니아’ 이재술 와인 소믈리에. 나훈아는 지금까지 200장의 LP를 발매했는데 이씨는 197장을 소장하고 있다.

나훈아의 LP 앨범에 둘러싸인 열혈 ‘나훈아 마니아’ 이재술 와인 소믈리에. 나훈아는 지금까지 200장의 LP를 발매했는데 이씨는 197장을 소장하고 있다.

'잊을 수가 있을까 잊을 수가 있을까/ 이 한밤이 새고 나면 떠나갈 사람/ 기나긴 세월 속에 짧았던 행복 …’
 
인터뷰를 시작하며 그가 처음 들려준 나훈아(羅勳兒) 노래다. 1969년 발표된 나훈아 1집에 실린 ‘잊을 수가 있을까’였다. 1970년 신성일과 문희가 주연 배우로 나온 멜로드라마의 주제가로 쓰였다. 20대 젊은 나훈아 목소리는 언뜻 배호의 목소리를 떠올리게 했다. 굵직한 가운데 가느다란 선을 느낄 수 있었다. 요즘은 구경하기도 힘든 낡은 휴대용 야외 전축 턴테이블(야전)에 올려놓은 LP 앨범에서 흘러나오는 나훈아의 초기 목소리를 듣는 체험은 환상적이었다.
 
아날로그 감성이 풍성했던 이번 인터뷰의 주인공은 ‘나훈아 마니아’인 이재술 소믈리에다. 올해 추석 공연으로 큰 화제를 모은 나훈아 이야기를 듣기 위해 열혈 팬인 이씨를 찾았다. 58년 개띠로 올해 만 62세인 이씨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나훈아 노래를 즐겨 듣고 자랐다고 한다. “훈아 형을 순수한 마음으로 지금까지 좋아합니다. 아무 조건 없이 그냥 좋습니다. 유년 시절 전파상 스피커에서 훈아 형 노래가 나오면 멍하게 서서 다 듣고 지나가곤 했습니다.”
 
이재술씨는 나훈아를 ‘훈아 형’이라고 부른다. 나훈아가 소크라테스를 ‘테스형’이라고 부른 신곡이 떠올랐다. 이씨는 경북 칠곡군 약목면 금오산 자락에서 태어났는데, 나훈아의 고향 부산에서처럼 이씨의 고향 칠곡에서도 어느 정도 아는 사람 이름 뒤에 대개 ‘형’을 붙여 불렀다고 한다.
 
이씨에 따르면 나훈아는 지금까지 모두 200장의 LP를 발행했다. 200장 중 이씨는 단 3장을 뺀 197장을 보유하고 있다. 이씨는 ‘LP 수집가’이기도 한 셈이다. 모두 1만4000장을 모았는데, 그중 70%가 한국 가요다. 가수 남진의 LP도 100장을 수집했다. 그의 가요 LP 소장품 중 나훈아 LP가 가장 많고, 그다음이 남진 LP다. 신중현·송창식·김추자 등의 구하기 쉽지 않은 앨범도 수두룩하다. 나머지 30%는 재즈·팝송·클래식 음반이다. 우리 가요 음반은 추억이 묻어 있어 들으면 옛 생각이 난다고 했다.
 

‘나사모’ 창립 멤버… 나훈아 LP 197장 수집

이재술씨의 ‘나훈아 스크랩북’에 담겨 있는 자료들. / 1. 나훈아의 어린 시절 가족 사진과 신문 기사, 이재술씨가 스크랩북에 옮겨놓은 나훈아 팬들의 글들. / 2. 나훈아의 아기 때 사진과 초등학교 졸업 사진. 나훈아의 본명 최홍기로 앨범에 적혀 있다. / 3. 색동옷 입고 예능 끼를 뽐낸 나훈아의 어린 시절과 초등학교 사진. / 4. 수묵화를 그리고 있는 나훈아와 언론 자료. / 5. 나훈아가 유화로 그린 자화상. 나훈아의 사무실 아라기획이 서울 이태원동에 있을 때 입구에 걸려 있었다.

이재술씨의 ‘나훈아 스크랩북’에 담겨 있는 자료들. / 1. 나훈아의 어린 시절 가족 사진과 신문 기사, 이재술씨가 스크랩북에 옮겨놓은 나훈아 팬들의 글들. / 2. 나훈아의 아기 때 사진과 초등학교 졸업 사진. 나훈아의 본명 최홍기로 앨범에 적혀 있다. / 3. 색동옷 입고 예능 끼를 뽐낸 나훈아의 어린 시절과 초등학교 사진. / 4. 수묵화를 그리고 있는 나훈아와 언론 자료. / 5. 나훈아가 유화로 그린 자화상. 나훈아의 사무실 아라기획이 서울 이태원동에 있을 때 입구에 걸려 있었다.

2001년 나훈아 팬클럽인 ‘나사모’(나훈아를 사랑하는 모임)를 결성하기 위해 10여 명의 열혈 팬이 경기도 수원에 모였다. 그 자리 참석자 중 한 명이 이씨였다. “2001년 나사모 창립 멤버로 참여한 후 한동안 열심히 활동했어요. 지금은 저보다 더 열광적인 나사모 팬들이 많습니다. 저는 요즘은 바빠서 좀 활동이 뜸해졌지만 늘 나사모의 발전을 바라고 지지하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 들은 ‘머나먼 고향’ ‘고향역’ ‘해변의 여인’ ‘낙엽이 가는 길’ 등의 노래를 들으면 여전히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갈무리’ ‘사랑’ ‘영영’처럼 중년의 나훈아가 부른 노래들 역시 좋습니다.”
 
1971년 발표한 ‘찻집의 고독’(박정웅 작사·작곡)이란 노래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고 이씨도 이 노래를 좋아한다. “그 다방에 들어설 때에/ 내 가슴은 뛰고 있었지/ 기다리는 그 순간만은/ 꿈결처럼 감미로웠다…” 이렇게 시작하는 노래다. 나훈아는 이 ‘찻집의 고독’을 무대에서 부르기를 좀 꺼린다고 한다. 1972년 서울 시민회관(현재 서울시의회 건물) 리사이틀에서 ‘찻집의 고독’을 열창할 때 무대에 난입한 괴한이 흉기를 휘둘러 얼굴에 78바늘을 꿰매야 했다. 그때의 트라우마가 남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씨는 나훈아 음반뿐 아니라 나훈아 관련 신문과 잡지 등의 자료도 가능한 한 모았다. 나훈아 관련 두꺼운 스크랩북만도 10권이 넘는다. 부산 초량초등학교 졸업(21회) 사진, 그의 담임 선생님과 수학여행 사진까지 모아놓았다. 1971년 서울 시민회관 나훈아 리사이틀 입장권을 이씨는 보물처럼 여기고 있다.
 
스크랩북에는 나훈아가 직접 그린 자화상과 서예 글씨도 보였다. 나훈아는 상당한 수준의 그림 솜씨와 서예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나훈아의 사무실 아라기획이 서울 이태원동에 있을 때 그 사무실 입구에 나훈아 본인이 유화로 그린 자화상이 걸려 있었다고 한다. 올해 추석 공연으로 나훈아의 작사·작곡 실력을 많은 사람이 새삼 알게 되었는데, 미술과 서예에도 능한, 그야말로 팔방미인 예술가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색동 한복을 입고 5~6세 무렵에 찍은 것으로 보이는 나훈아의 사진도 있었다.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 한 손을 볼에 댄 채 카메라를 응시하는 자세에서 이미 예술가의 끼가 다분히 넘쳐 보인다. 이씨의 스크랩을 한 장 두 장 넘기다 보니 나훈아의 일생이 그 속에서 흘러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나훈아의 아버지는 마도로스 출신으로 집안도 넉넉한 형편이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나훈아가 판검사나 의사가 되기를 원했으나, 타고난 끼를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부산에서 대동중학교까지 마치고 형이 유학하고 있던 서울로 와서 서라벌예술고등학교에 다녔다. 서라벌예고 2학년 때 작곡가 심형섭씨의 눈에 띄었고 그의 소개로 오아시스레코드사에서 1966년 ‘천리길’을 발표했다.
 
이씨에게 나훈아가 언제 그림과 서예를 배운 것이냐고 묻자 가수가 된 이후라고 했다. “큰 공연을 끝내고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붓을 잡기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서라벌예고 다닐 때 미술의 기초는 배웠겠지만 본격적으로 유화와 서예를 배운 것은 70년대 후반일 겁니다. 그림과 서예 실력에 기타와 피아노도 잘 치고, 작사·작곡도 잘하죠. 한마디로 8박자 다 갖춘 예술가입니다.”
 

일상을 구성하는 두 키워드, 와인과 나훈아

2020년 가을 추석 연휴를 뜨겁게 달군 나훈아의 KBS 콘서트 장면. / 사진:KBS 방송 캡처

2020년 가을 추석 연휴를 뜨겁게 달군 나훈아의 KBS 콘서트 장면. / 사진:KBS 방송 캡처

이재술 소믈리에를 만난 것은 초가을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쬐던 10월 9일 오후 경기도 파주 서원밸리컨트리클럽에서다. 이씨는 이곳에서 수석 와인 소믈리에로 일한다. 경민대학교 호텔외식서비스과 겸임 교수이기도 하다.
 
와인과 나훈아는 이씨의 일상을 구성하는 두 가지 키워드다. 컨트리클럽에서 가끔 와인을 설명하면서 ‘특별 손님’에게 나훈아 노래를 틀어주기도 한다. 야외 전축 턴테이블에 올린 나훈아 LP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손님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이 된다.
 
“아날로그 감성을 능가하는 디지털은 없는 것 같습니다. LP나 와인은 모두 기계가 아닌 인간의 손의 수고스러움이 동반되는 아날로그라고 할 수 있어요. LP는 수 시간을 들어도 귀에 거슬리지 않아요. CD로는 한 시간 이상 듣기가 힘들어요. 그래서인지, 스티브 잡스도 턴테이블에 LP를 즐겨 들었다고 합니다.”
 
이씨는 음악을 들으며 와인 한 잔을 곁들이면 더욱 좋다고 했다. 와인을 마시고, 음악을 들으며, 자신을 돌아보기도 한다. 나훈아 노래의 가사는 특히 삶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한다고 했다.
 
“훈아 형의 노래하는 스타일이 있어요. 노래 가사에 의미를 부여하고, 관객이 그 의미를 생각해보게 합니다. 훈아 형의 공연에서 느낄 수 있는 매력 중 하나는 비음(鼻音)의 호소력입니다. 소리와 동작의 강약 조절을 잘하죠. 입으로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부르는 표정과 동작이 관객의 마음에 와닿습니다. 훈아 형은 허리와 어깨로 노래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녹슬은 기찻길’ ‘애정이 꽃피던 시절’ 등의 고음은 아마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창법일 겁니다.”
 
90년대에 나훈아는 서울 밀레니엄힐튼호텔에서 연말 송년 공연을 많이 했다. 이재술씨는 그 공연을 대부분 관람했다. 힐튼호텔 공연 때부터 노래할 때 손을 들면 자작곡, 손을 내리면 다른 사람 작곡이라고 한다. 나훈아의 LP 표지 사진을 보면 그는 머리 스타일로 변화를 준다. 짧게 했다, 길게 했다 그때그때 다르게 하는데, 요즘은 추석 공연에서 보듯 머리를 뒤로 묶었다.
 
1972년에 가수 조미미가 부른 ‘사랑은 장난이 아니랍니다’는 1971년에 나훈아가 직접 작사·작곡해 불렀던 노래이기도 하다. ‘해풍’ ‘그리움’ 등이 담긴 나훈아 자작곡집을 1972년에 발행하기도 했다. 나훈아의 작사·작곡 능력은 일찍부터 발휘된 셈이다. 하지만 데뷔 초부터 70년대까지는 싱어송라이터의 이미지는 좀 약한 것 같다. 나훈아의 싱어송라이터 이미지는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더 강해졌고 또 노래 가사의 의미도 깊어져 가는 듯하다. 그런 변화는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이재술씨에게 물어보니 “한동안 노래를 하지 않고 있다가 김지미(金芝美)씨와 헤어질 무렵부터 직접 작사·작곡한 노래가 쏟아져 나왔으며 인생과 철학의 깊이가 있는 노래가 많이 탄생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1982년에 발매된 나훈아 3집에 실린 ‘울긴 왜 울어’ ‘잡초’ 등이 나훈아 자작곡 시대의 본격적인 개막을 알리는 노래로 봐도 크게 지나친 해석은 아닐 듯하다. ‘울긴 왜 울어’의 경우 “울지 마, 울긴 왜 울어/ 그까짓 것 사랑 때문에/ 빗속을 거닐며 추억일랑 씻어버리고/ 한잔 술로 잊어버려요”라고 하면서 김지미와 자신을 위로하는 노래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이씨는 풀이했다.
 
이씨가 모아놓은 나훈아 관련 자료 중에 1982년 5월 2일 발행된 주간지 [선데이 서울]이 눈에 띄었다. 나훈아와 김지미 관련 기사가 실려 있다. “나훈아 인기 치솟자 김지미도 영화 출연”이라는 제목 아래 나훈아가 가수 활동을 재개하며 인기를 얻어가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이 기사 내용 중에 “나훈아는 노래에도 인생이 들어가고 철학이 들어 있어야 한다는 말을 부부끼리 종종 주고받는다고 한다”는 구절이 눈길을 끈다. 나훈아가 자신이 작사·작곡한 음악에 인생과 철학의 의미를 담아내려는 변화의 기점이 이때부터가 아닐까 추정해볼 수 있는 대목인 것 같다.
 

싱어송라이터 이미지 80년대 이후 짙어진 이유는

휴대용 야외 전축 턴테이블에 나훈아의 음반을 올려놓는 이재술 와인 소믈리에.

휴대용 야외 전축 턴테이블에 나훈아의 음반을 올려놓는 이재술 와인 소믈리에.

나훈아가 올해 발표한 신곡 아홉 곡 중에 ‘명자’라는 노래가 들어 있다. 김지미의 본명이 명자(明子)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이 노래가 김지미를 생각하며 만든 노래가 아닌가 하는 추측이 나돌기도 했다. 노래 가사가 6·25전쟁 중 1·4후퇴 때 북쪽에서 피난 내려온 실향민 부모를 둔 명자라는 여인의 추억을 담았다고 하는데, 이 노래와 김지미와의 직접 연관성은 확인되지 않는다. 그런데 김지미와 직접 연관은 없다고 하더라도, 명자라는 이름이 김지미의 본명임을 나훈아가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 점을 의식하면서 명자라는 노래 제목을 달았다는 점에서, 김지미와 함께 살던 시절에 대한 나훈아의 향수가 이 노래에 담겨 있지 않은가 생각해보게 된다. 그 향수는 나훈아 자신이 음악을 대하는 관점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그것은 자신의 인생과 철학을 담은 노래로의 변화가 시작된 시절에 대한 추억이 아닐까.
 
이번 추석 공연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노래는 ‘테스형!’이었다.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테스 형이라고 불렀다. 테스 형에게 세상살이의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세태를 풍자한 노래다. 추석 공연에서 ‘테스형!’에 곧바로 이어 부른 노래는 2003년에 발표한 노래 ‘공(空)’이었다. 이렇게 노래한다. “살다 보면 알게 돼 일러주진 않아도/ 너나 나나 모두 다 어리석다는 것을/ 살다 보면 알게 돼 알면 웃음이 나지/ 우리 모두 얼마나 바보처럼 사는지/ 잠시 왔다 가는 인생 잠시 머물다 갈 세상/ 백년도 힘든 것을 천년을 살 것처럼…” 불교의 ‘공(空)’ 사상을 나훈아식으로 풀어낸 노래로 보인다.
 
[선데이 서울] 기사에는 나훈아의 사진 밑에 흥미로운 설명도 붙어 있다. “극성 여성 팬들에게 나훈아는 최고의 남성적인 섹스 어필의 가수로 통한다”고 적어놓았다. [선데이 서울]이란 잡지의 특징을 반영한 사진 설명이기도 하겠지만, 나훈아에게 그런 측면이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올해 추석 공연에서 보듯 70대 나이인데 와이어를 타고 내려오는 공연을 펼치고,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무대에서 껑충껑충 뛰어다니기도 한다. 지금도 나훈아의 섹스 어필한 매력은 여전한 것 같다. 이씨는 “훈아 형은 남자가 봐도 잘생겼다”고 했다.
 
나훈아는 대동중학교 야구부 출신이다. 그래서인지 몸매도 날렵하고 상황 대처 능력이 뛰어났다고 한다. 이재술씨가 1999년 힐튼호텔 나훈아 공연에서 경험한 일화를 들려줬다. 디너쇼 공연 중 드럼 소리의 울림으로 인해 천장의 사이키 조명이 떨어지는 해프닝이 발생했다. 퍽 소리를 내며 테이블 옆 바닥에 떨어질 때 1500여 명의 관객이 깜짝 놀라 일대 소란이 벌어졌다. 침착하게 무대에서 내려온 나훈아는 중앙 테이블의 여성 관객 앞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고 다치지 않았냐고 물어본 후 자기가 받은 꽃다발을 그 여성에게 전해주었다고 한다. 장내는 다시 정리되었고 2시간 공연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
 
나훈아의 나이에 대한 궁금증도 물어봤다. 이씨는 나훈아가 1950년생으로 올해 만 70세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나훈아를 검색해보면 그의 프로필에 1947년 출생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과 다르다. “47년생까지 올라간 것은 가수 남진과 라이벌 경쟁이 치열할 때 ‘나이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출생 연도를 앞당기며 생긴 일”이라고 이재술씨는 추정했다. 뜨거웠던 라이벌 경쟁도 세월이 지나고 보니 다 추억이 되었다.
 
나훈아 노래에는 무엇보다 낭만이 있다. 이씨는 아날로그 감성이라고 불렀다. 너무나 바쁘게만 돌아가는 시대에 낭만과 아날로그 감성은 잊히기 십상이다. 올해 추석의 ‘나훈아 신드롬’은 잊혀만 가는 낭만적 아날로그 감성을 일깨운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일종의 ‘나훈아 신드롬’이 추석이 지나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몰랐던 나훈아의 새로운 면을 발견했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70대 나이에 어떻게 저런 몸매와 목소리를 유지할 수 있는지 놀랍다는 소리도 많이 들린다.
 
하지만 열혈 팬의 눈과 귀에는 뭔가 다르게 보이고 다른 것이 들리는 것 같다. 이씨는 이번 공연을 누구보다 감회 깊게 감상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안타까움을 느꼈다고 한다. 수십 년 즐겨온 나훈아의 목소리에서 어떤 변화를 감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단한 스케일이었죠. 역시 나훈아는 나훈아라는 소리를 들을 만합니다. 원숙미는 더 좋아졌습니다. 나훈아를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이번에 놀랐을 겁니다. 작사·작곡도 잘하고 감성적이면서 놀라운 기획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예전에 비해 미세한 차이를 느끼게 됩니다. 아직 목소리가 살아 있는데 아마 이번 무대가 정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스타는 내려올 때를 알아야 합니다. 세월의 흐름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자연의 순리 아닌가요?”
 
추석 공연에서 나훈아는 “내려올 시간과 자리를 찾고 있다. 길지는 않을 것 같다”는 말을 한 바 있다. 추석 공연에 특별출연했던 김동건 아나운서가 “100살까지는 노래해야 한다”고 했지만 그의 소망대로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을 것이다.
 

낭만이 넘치던 시대, 남진·나훈아가 있어 행복

'나훈아 마니아’ 이재술 와인 소믈리에. 와인과 나훈아 앨범은 그의 가장 소중한 보물이다.

'나훈아 마니아’ 이재술 와인 소믈리에. 와인과 나훈아 앨범은 그의 가장 소중한 보물이다.

이재술씨는 조심스럽게 은퇴를 언급했다. 그 시기가 올해 말이 될 것 같다고 예견했다. 이씨가 기억하고 있는 나훈아 목소리의 변화 과정을 이야기했다. “젊은 시절에는 청초한 자연의 미성이었다면, 중년에는 강한 에너지의 창법을 들려줬습니다. 지금 말년에는 맑은 미성의 목소리보다는 약간의 탁음과 더불어 호흡의 떨림이 보입니다.”
 
미세한 떨림은 열혈 팬에게만 들리는 것일까. 이씨는 나훈아의 젊은 시절 목소리를 그리워하는 듯하다. 이씨는 가장 아끼는 음반으로 나훈아 1집을 꼽았다. 세월을 이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누구나 늙게 마련이고 세월과 함께 힘이 빠지기 마련이다. 한 시대를 풍미한 가수라고 해도 시대와 함께 기억되고 잊히기 마련이다. 당연히 나훈아도 보통 인간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나훈아는 추석 공연에 이은 스페셜 프로그램에서 ‘어떤 가수로 남고 싶나?’라는 질문에 “그냥 유행가, 즉 흘러가는 노래를 부른 가수일 뿐”이라고 했다. 멋진 답변이다. 세월과 함께 모두 흘러갈 뿐인 것 같다. 그의 노래 ‘공’이 다시 떠오른다. “살다 보면 알게 돼 비운다는 의미를/ 내가 가진 것들이 모두 꿈이었다는 것을/ 모두 꿈이었다는 것을.”
 
하지만 오래된 팬은 그런 일반적인 모습을 그의 오래된 우상에게서 보고 싶지 않은 것 같다. 영원한 젊음의 목소리로 나훈아와 그의 시대를 기억하고 싶은 것이다. 이재술씨의 나사모 닉네임은 부루스리(Bruce Lee, 이소룡)이다. “훈아 형이 은퇴를 하면 훈아 형과 함께 와인 한잔하며 지난날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우리 시대에 낭만과 스릴이 넘치던 남진 형, 나훈아 형, 그들이 계셨기에 참으로 행복했다고 생각됩니다.”
 
 
- 글 배영대 학술전문기자 balance@joongang.co.kr / 사진 신인섭 선임기자 shin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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