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8년 4대 그룹 총수
젊어진 총수들, 달라진 경영스타일
선대 ‘엄근진’ 모드 대신 친숙·소통
2인자 안 두고 집단지도체제 선호
서로 영역 지켜주기 깨진지 오래
신수종 산업 찾는 전쟁 더 치열

2020년 4대 그룹 총수
이들은 사고방식에서 공통점이 많다. 미국 MBA(경영학 석사)를 비롯한 해외 유학 경험은 기본이다. 비슷한 연배의 재벌가 자제들과 어울리며 형성된 네트워크가 겹치기도 한다. 그래서 일부에선 선대 회장보다 젊은 총수들이 깊숙한 대인관계에서 보다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인다고 지적한다. 익명을 원한 재계 관계자는 “재계의 젊은 리더들은 소탈한 모습을 보이곤 하지만, 어려서부터 소위 ‘리더의 조건’을 몸에 익히며 자라온 사람들”이라며 “유년기부터 고르고 고른 인맥을 쌓아와 선대보다 더 인간관계에 있어 조심스럽고 보수적인 측면이 있다”고 전했다.
경영 스타일도 달라졌다. 현재의 젊은 대기업 총수들은 대개 ‘2인자’를 허용하지 않는다. 특정인에게 힘을 실어주는 경우도 드물다. 일부에선 젊은 오너 대부분이 승계 과정 등에서 창업 1·2세대와 함께 그룹을 일군 ‘힘 있는 2인자’로 인해 어려움을 경험했기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대신 이들은 SK그룹의 SK수펙스추구협의회 같은 집단 지도체제를 선호한다. 여기엔 구조적 측면도 있다. 한국 재벌들이 글로벌화하면서 총수 개인이 모든 의사 결정을 내리는 것의 한계가 분명해졌다.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선대부터 내려온 카리스마 강한 창업 공신은 아무래도 젊은 총수에게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며 “총수가 모든 걸 챙길 수 없는 만큼 집단지도체제를 구축해 그룹을 이끌어 갈 수밖에 없다”고 평했다.

2020년 대한민국 재계 순위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과거처럼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등을 통한 경영권 승계가 어려워졌지만, 차등 의결권 등을 통해 승계 구도를 마련할 가능성이 크다”며 “국민의 신뢰를 받는 대기업이 되고자 한다면, 확실하게 경영 능력을 검증하고 이를 바탕으로 승계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룹별로 주력 사업 분야가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정유·오프라인 유통·조선·자동차 등 기존 산업은 모두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있다. 각 그룹별로 10년 후, 20년 후를 내다보고 신수종 산업발굴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앞으로 대기업간 영역 다툼은 더 치열해질 것이란 전망이다. 기존 사업 영역 내에선 원하는 만큼의 수익을 내기 어려워서다. 서로의 사업 영역은 넘보지 않는 ‘동업자 정신’은 사라진 지 오래다. ‘사자와 호랑이’가 같은 링에서 싸우는 일이 더 빈번해질 것이란 얘기다. 이미 현실이 된 분야도 있다. 자동차용 배터리를 놓고 혈투를 벌이는 SK그룹과 LG그룹의 다툼이 대표적이다. 반면 재벌간 제휴와 협력 등 합종연횡도 활발해질 전망이다. 현대차가 전기차 배터리 확보를 위해 삼성·LG·SK와 모두 협력 관계 구축에 나선 것이 그런 사례다. 최근 SK그룹의 인텔 낸드 플래시 사업부문 10조원대 인수 사례 처럼 국내외 대규모 인수·합병(M&A)도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창업세대가 아니면서 미국식 MBA 교육을 받은 상당수 3·4세 총수들은 M&A를 통한 영토 확장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이수기 기자 lee.sooki@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