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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조 백일장] 10월 수상작

중앙일보 2020.10.28 00:03 종합 22면 지면보기

〈장원〉 

문패  
-최현주 
 
셋방살이 전전긍긍 술 취해 들어오시면
미안하다 하시더니 꿈같은 집 장만에
아버지
종일 부르시던
십팔번이 살던 집 
 
이삿날 준비해 둔 문패 달고 흘린 눈물
날마다 가족위해 보초 서시던 이름 석 자
문패는
그대로두시고
이사 가신 아버지
 
◆최현주
최현주

최현주

대전시조시인협회, 한국시조협회, 토방시조 회원, 전국한밭시조백일장 수상, 한밭시조문학상 신인상

 
 
 
 
 
 

〈차상〉

저녁의 포구  
-최정희
 
새끼 품은 어미처럼 포구가 누워있다
늘어진 젖을 빨 듯 매어 달린 어선 몇 척
파도는 지친 뱃전을 가만가만 쓸어준다 
 
고단했던 오늘 하루 소주 몇 잔에 위로받은
어부의 얼굴 가득 노을빛 물들었다
등 뒤로 까만 봉지가 달랑달랑 따라간다 
 
어둠 내린 수평선이 바다를 잠근다
어판장을 빠져나온 비릿한 바람 한 점
제 안의 등댓불 쫓아 골목을 오른다 
 

〈차하〉

석류  
-김영수 
 
심산 유곡 천길 절벽 틈새를 갈라치고
금은 보화 가득 채운 세월의 곡간 안 쪽
이 가을 막장 알몸을 그대에게 바칩니다.  
  

〈이달의 심사평〉  

감성을 자아내는 계절의 영향이 있어서인지 가을을 주제로 하는 응모작품이 많았다. 그러나 대부분 상투적인 표현 또는 감정의 과잉이 주를 이루고 있는 작품은 아쉽게도 주목을 받지 못했다.  
 
장원으로 최현주의 ‘문패’를 올린다. 셋방살이를 전전한 아버지의 신산한 삶을 노래한 작품이다. 내 집을 마련하고 문패를 달았던 아버지는 이제 문패만 남아있고 또 다른 곳으로 이사를 했다.  
 
이승에서 다한 삶을 또 다른 ‘이사’로 인식하는 시인의 시선이 아프다. 아버지와 ‘문패’를 사유하는 개성적인 시각이 이 작품을 살리고 있다. 차상으로 최정희의 ‘저녁의 포구’를 뽑았다. 포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단한 삶이 애련하다.  
 
첫 수 초장의 묘사가 탁월한 것이 돋보이나 마지막 수 초장과 종장에서 시조의 리듬이 흐트러지는 것은 유의해야 할 점이다. 시조의 리듬은 글자의 수만 맞추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차하로는 김영수의 ‘석류’를 선한다. 석류는 제목 자체로 많은 뜻을 함축하고 있다. 석류의 내밀한 공간을 모두 들여다보곤 이를 ‘알몸’으로 치환하는 수법이 흥미를 자아낸다. 그러나, 이 작품의 시어 선택은 자칫하면 단점으로 여겨지기도 한다는 점을 지적해 두고 싶다.  
 
그 밖에 이달에 좋은 작품을 써낸 임주동, 신영창, 김재용, 이종완, 이수진의 작품을 놓고 토론을 거듭했다. 정진을 바란다.  
 
심사위원 : 이종문ㆍ김삼환(심사평 김삼환)
 

〈초대시조〉

나무학교 
-신춘희 
 
큰 나무 곁의 작은 나무 베다가
서둘러 하늘로 간 아들 생각했습니다
이후로 울컥의 늪에 툭 하면 빠졌습니다
외로울 때 서러울 때
그리울 때 죽고 싶을 때
건너야할 강들이 너무도 많아서
가슴에 눈물 강 하나 잡아두고 살았습니다
요즘은 상처를 간신히 견딜만해서
공수래공수거의 삶을 배우고 있습니다
나무의 계절 학교에 6학년 6반 학생입니다
 
◆신춘희
신춘희

신춘희

1980년 매일신문신춘문예당선. 울산광역시문화상(문학)수상. 시집 『늙은제철소』 『식물의 사생활』

 
 
 
 
 
 
남의 가슴을 읽은 것이 죄만 같습니다. 아직도 슬픔의 공황을 견디리라 짐작하며 이유를 묻지도 못한 채 위로조차 어림없군요.  
 
누가 말했다지요. 상처란 산 자만이 걸치는 옷이라고. 일흔 해를 바라보는 아름드리 나무에 이렇게 애잔하고 가슴 쓰린 옹이가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리울 때 죽고 싶을 때 건너야 할 강들이 너무도 많아서”라는 현실의 강에 이르러 목소리가 왜 이리 떨립니까. “가슴에 눈물 강 하나 잡아두고 살았습니다”며 흔들리는 마음을 추스르는 당신에게 겨우 안도의 한숨을 쉽니다.  
 
자식이란 누구에게나 분신이며 희망이며 그러므로 우리들 미래가 아니겠습니까만. 이 만가에 시적 전략이란 위작이며 위증일 뿐입니다.  
 
나무도 옹이를 딛고 자라더군요. 인간무상 세상무정, 살아보니 그게 다 사람살이의 옹이 아닙디까. 마디에 옹이지고 옹이에 마디 진다는 말이 괜히 생겼겠습니까.  
 
“서둘러 하늘로 간” 사실 하나가 모든 허구를 압도합니다. 그러나 삶을 지탱하는 것은 허구일지도 모릅니다. 인간이 가진 사랑이란 허구 하나가 “외로울 때 서러울 때” 사랑에서 가지 친 그리움의 옹이 하나 붙들고 우리가 견디며 살아갑니다. 그것이 나무와 인간의 합일이 아닐까요.
 
최영효 시조시인
 
◆응모안내
11월 20일까지 우편(서울시 중구 서소문로 100번지 중앙일보 문화부 중앙시조백일장 담당자 앞) 또는 e메일(choi.jeongeun@joongang.co.kr)로 접수할 수 있습니다. 응모 편수에 제한이 없습니다. 02-751-5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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