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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코로나에 빠르게 적응하는 내가 낯설다

중앙일보 2020.10.27 00:26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욱연 서강대 중국문화학과 교수

이욱연 서강대 중국문화학과 교수

코로나19 거리두기 단계가 다소 완화됐지만, 오늘도 점심은 혼밥이다. 요즘은 늘 이렇다. 대학 시절부터 혼밥을 끔찍이 싫어하던 나다. 그래서 코로나 사태 이전에는 식당에서 밥을 사 오다가 아는 사람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밥을 든 손이 뒤로 갔다. 하지만 이제는 혼밥에 습관이 들어가는 ‘낯선 나’를 발견한다.
 

혼밥에 길들어가는 자신에 놀라
상자형 인간, 상자형 국가의 시대
반성적 성찰로 균형점 찾아가야

악마에게도 시간이 가면 길이 드는 게 사람이어서, 코로나 시대의 삶에 꾸역꾸역 길이 들어간다. 문밖을 나서려면 으레 신발을 챙겨 신듯이 마스크를 챙긴다. 마스크가 이제는 신발이나 옷처럼 되어가고 있다.
 
모처럼 모임이 생기면 반가우면서도 겁이 나고, 모임이 취소되면 서운하면서도 마음이 놓인다. 민얼굴인 낯선 사람이 보이면 멀리서부터 발걸음이 느려진다. 코로나가 초래한 낯선 삶에 진저리를 치면서도 ‘코로나 형 인간’으로 변해가는 내가 낯설고, 무섭다.
 
코로나 사태가 길어지면서 코로나가 끝난 이후에도 이렇게 살까 봐서, 코로나 이전의 나로 영영 돌아가지 못할까 봐서 살짝 겁이 난다. 물론 내 삶의 신조는 원래 “내가 어디에서 온 누구인가”를 묻기보다 앞으로 어디로 갈지를 물으면서 살자는 것이긴 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코로나 시대에 인이 박이게 되면, 과거 내 삶과 다를 뿐만 아니라 내가 원래 꺼리던 삶을 살까 봐서 솔직히 두렵다.
 
동아시아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밥을 같이 먹어야 인간관계가 맺어진다고 생각한다. 중국인들은 형제란 같은 엄마 젖을 먹은 사람이어서 내 것 네 것 없이 주고받는 관계다. 같은 동네 사람은 같은 우물물을 먹은 사이여서 서로 도와주는 관계라고 생각한다.
 
같이 밥 먹는 자리는 화해를 추구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밥 한번 먹자”는 인사를 입에 달고 살고, 같은 음식을 나눠 먹는 회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우리 식문화도 이런 문화적 배경이 있다. 아무리 문명이 발달해도 만나서 밥을 같이 먹으면서 소통하고 관계를 맺는 인간의 지극히 원시적인 속성은 본능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 코로나 시대에 같이 밥 먹는 게 가장 위험한 일이 됐고, 인간관계의 출발점이 흔들리고 있다.
 
사람 때문에 때론 크게 상처를 받지만, 사람이 제일 큰 힐링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제 친구나 동료에게 “같이 밥 먹으러 가자”는 말 꺼내기를 주저한다. 식문화처럼 코로나는 가장 일상적인 우리 삶을 파고들고, 그래서 가장 익숙한 나날의 일상이 먼저 변한다.
 
정권이 아무리 바뀌어도 일상은 잘 바뀌지 않는데, 코로나는 일상을 단번에 바꾸고 있다. 그래서 힘들다. 가장 익숙한 것, 우리가 그동안 습관적으로 살아온 것을 바꿔야 해서다.
 
코로나가 지금보다 더 잠잠해지거나 종식되면 기성세대는 오랫동안 습관적으로 살아온 익숙한 삶의 양식으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세대를 중심으로 나만의 상자 속으로 들어가는 고립형 인간, 단절형 인간이 더 많아질 것이다. 코로나는 참으로 문명사적 전환을 촉발한 재난이다.
 
하지만 이미 온 재난인데, 어쩔 것인가. 다만 이 재난이 주는 교훈에서 배우는 수밖에 없다. 물극필반(物極必反)이라고, 세상일이란 극에 이르면 기어이 다시 돌아간다고 했다. 근대에 기원한 이 문명이 극한에 이르렀고, 그 반작용의 징후가 코로나일지 모른다.
 
얼마 전, 어느 대기업 임원에게 코로나가 가져다준 혜택(?) 이야기를 들었다. 재택근무를 해보니까 굳이 필요 없는 사람이 누구이고, 없어도 되는 넘치는 자리가 어디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나더란다.
 
어디 기업만 그럴까. 코로나 이전 우리 삶에서도 그렇게 넘친 곳도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비대면 영상 회의를 해본 뒤에야 굳이 모일 필요가 없는 회의가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굳이 같이 밥을 먹지 않아도 될 회식, 습관적인 과잉 만남, 과잉 접촉이 넘쳤다는 것도 실감한다.
 
이처럼 많은 인류가 온 지구를 휘젓고 다닌 시대는 인류사에 없었다. 그동안 너무 몰려다녔다. 쉼과 성찰을 위한 여행이 아니라 사회관계망에 올리기 위해서, 자랑하고 인정받으려고 간 여행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코로나가 시작된 중국 우한이 지난 10년간 인구가 152% 폭증한 지역이자 전 세계 기업이 가장 많이 몰려든 도시라는 것은 상징적이다.
 
과잉 세계화, 과잉 접촉과 과잉 유동에서 벗어나 성찰하면서도 고립과 폐쇄의 상자 속으로 들어가 칩거하지도 않는 그 어느 균형점을 찾는 것. 이것이 우리가 코로나 재앙 속에서 문명적 교훈을 얻는 출발점일 것이다. 변화된 낯선 일상 속에서 새로운 문명과 삶을 생각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욱연 서강대 중국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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