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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칼럼니스트의 눈] 금융 사기꾼들이 무차별 정치 폭로에 나선 까닭은…

중앙일보 2020.10.27 00:25 종합 22면 지면보기

금융사기이자 권력형 비리인 라임·옵티머스 사태

VIK 사건 2심에서 법원이 12년 중형을 선고한 이후 금융사기 범죄자들은 형량을 줄이고 사회적 관심을 돌리기 위해 전방위 로비 폭로전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VIK 사건 2심에서 법원이 12년 중형을 선고한 이후 금융사기 범죄자들은 형량을 줄이고 사회적 관심을 돌리기 위해 전방위 로비 폭로전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라임·옵티머스 주범들이 정치 로비 리스트를 필사적으로 흘리는 것은 물타기, 시선 돌리기 전술이다. 재판에서 단순 사기로 3~5년형을 받기 위한 꼼수다.”
 

VIK 사건 이후 중형 판결 두려움
사회적 관심 분산시키려는 꼼수
여야, 정쟁보다 라·스법 만들고
법원은 가혹한 중형 판례 쌓아야

여의도 금융 전문가들이 보는 시각이다. 박순철 남부지검장이 사퇴하면서 “이 사건은 많은 사람에게 1조5000억 상당의 피해를 준 라임 사태와 관련하여 김○○은 1000억 원대의 횡령·사기 등 범행으로 수사와 재판을 받고 있다는 것이 그 본질”이라고 지적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여당은 이 사건을 “금융 사기”라 선을 긋고 야당은 “권력형 비리”라고 맞서고 있다. 하지만 둘 다 맞는 이야기다. 정확히 말하자면 금융사기로 시작했다가 권력형 비리로 비화된 것이다. 라임 사건은 투자 실패로 감당 못 할 펀드런이 일어나자 수익률 조작·돌려막기의 범죄를 저질렀다. 막판에 금융감독원과 검찰의 조사를 막기 위해 로비에 매달렸다가 권력형 비리로 번졌다. 옵티머스 사태는 아예 처음 설계할 때부터 사기를 치려고 작정한 것이다. 존재하지도 않은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투자한다고 속이고, 사모펀드치고는 이례적으로 낮은 3% 목표수익률을 제시해 안정적인 투자로 포장했다. 이렇게 끌어모은 돈으로 당초 약속과 달리 비상장기업의 사모 사채에 투자하거나 무자본 M&A의 기업사냥을 벌였다. 아예 통째로 빼돌리기도 했다.
  
VIK 중형 판결은 금융사기범에 공포
 
지금 이들이 끔찍하게 여기는 것은 VIK의 이철 대표 사례다.  사기 등 전과 5범인 지모씨와 채널A 기자 사건에 연루된 바로 그 인물이다. 이철은 금융사기로 1심에서 8년형을 선고받고, 너무 무겁다며 항소했다. 1심 법원은 “개인당 5억원이 넘는 피해자가 없다”며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의 사기가 아니라 단순 사기로 판단했다. 하지만 2심 판사는 달랐다. 무려 4년을 가중해 12년 형을 때렸다. “사회적 약자인 3만여명에게 반복적으로 7000억원의 피해를 준 조직적 사기”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들의 ‘연 20% 고수익 확정 추구 상품’에 속아 넘어간 피해자 중에서 무려 50여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한다. 참고로 단군 이래 최대 사기라는 조희팔 사건 때 자살한 피해자(30여명)보다 많다.
 
라임 펀드 사태

라임 펀드 사태

그동안 한국은 세계에서 경제 범죄에 대해 가장 처벌이 약한 국가로 꼽혔다. 범죄 수익 환수에도 무신경했다. 오히려 VIK의 엄중한 2심 판결이 예외적인 사례로 꼽힐 정도다. 그 결과 한국은 금융사기의 천국이 돼 버렸다. 전 세계에서 사기 범죄는 한국-멕시코-남아공-인도-아르헨티나 순이다. 한국의 고소·고발은 한해 70만건이다. 한국보다 경제 규모가 3배나 큰 일본의 2만건과 비교가 안 될 정도도 많다. 우리 법원의 이런 느슨한 관행이 VIK 중형 선고를 계기로 바뀌고 있다. 특히 피해자들의 집단 시위 이후 법원의 금융 사기에 대한 자세가 엄격해지고 있다.
 
금융정의연대 김득의 대표는 “라임·옵티머스의 무차별 폭로는 중형을 피하려 자신들에게 쏠린 사회적 관심을 분산시키려는 꼼수”라고 풀이했다. 이들은 청와대와 정치권·금융감독원에 불똥이 튀어야 펀드를 판매한 NH증권 등에 “피해자들에게 투자 원금의 100%를 돌려주라”고 압박 수위를 높일 것이라 계산한다. 피해자들이 흡족한 보상을 받아 조용해지면 법원의 선처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라임 피해자들은 피해 금액의 50%를 선지급 받고, 옵티머스 피해자들은 70%를 선지급 받는 쪽으로 가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은 사모펀드 역사가 오래된 만큼 규제가 아주 약하고 대부분 시장 자율에 맡긴다. 대신 금융사기로 체포되면 가혹하게 처벌한다. 피해액의 3배인 징벌적 배상도 뒤따른다. 2008년 미국 법원은 폰지형 금융사기를 저지른 버나드 메이도프에게 68세의 나이에도 150년형을 때렸다. 2001년 엔론 사건도 마찬가지다. CEO였던 제프리 스킬링은 24년 4개월 형과 함께 550억원의 벌금이 부과됐다. 케네스 레이 엔론 회장은 수감을 앞두고 아예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중형 피하려는 필사적인 몸부림
 
VIK 중형 판결 이후 금융사기범들은 어떻게든 수사를 무마하거나 형량을 줄여보려고 몸부림을 친다. 금융정의연대 김 대표는 “이강세 스타모빌리티 대표가 강기정 당시 정무수석에게 돈을 주었는지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며 “금감원 조사를 막기 위해 청와대로 찾아간 것 자체가 부적절한 만남”이라고 지적했다. 윤 검찰총장이 국감에서 “중형의 선고가 예상되는 사람의 말을 듣고 검찰총장의 지휘권을 박탈하고 또 검찰을 공격하는 것은 정말 비상식적이라 생각한다”고 답한 것도 이 사태의 본질을 짚은 것이다.
 
옵티머스 펀드 사태

옵티머스 펀드 사태

정부는 뒤늦게 일반 투자자의 최소한도를 1억원에서 3억원으로 올리며 진입규제 장벽을 높이고 있다. 불완전 판매를 줄이기 위해 은행 창구 판매도 막고 있다. 하지만 사모펀드는 75%가 증권사에서 팔린다. 또 사모펀드의 개인투자 비중은 4.6%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이번 대책은 땜질식 대증요법일 뿐이다. 오히려 과도한 진입 규제는 사모펀드의 순기능까지 막아버려 시장 자체가 죽을 수 있다. 게다가 초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으로 사모펀드 시장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현재로선 처벌 수준 강화가 가장 효과적인 해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자본시장연구원 황세운 연구위원은 “사전규제는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고 오히려 사후 규제가 효율성이 크다. 중형 선고와 함께 징벌적 과징금을 더 높이는 게 효과적이고 올바른 방향”이라고 말했다. 집단소송과 징벌적 손해 배상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여·야도 더는 사기꾼들의 장난에 놀아나지 말아야 한다. 국회에서 서로 머리를 맞대고 금융사기의 처벌 수위를 확 높이는 법률 개정이 시급하다. 필요하면 라·스(라임·옵티머스) 특별법이라도 만들어야 한다.
 
수사 전문가들에 따르면 금융사기범들이 돈을 끌어모은 뒤 가장 처음 하는 일은 범죄수익 은닉이라고 한다. 마늘밭에 현금을 파묻거나 경마장에 쌓인 마권 영수증을 끌어모아 돈을 탕진한 것처럼 속인다. 2~3년 실형을 살고 나와 은닉자산으로 흥청망청 즐기겠다는 계산이다. 따라서 미국과 유럽처럼 수십 년 형을 때리는 판례가 쌓여 “내 평생에 범죄 수익을 쓸 수 없다”며 범죄를 미리 단념시키는 게 중요하다. 행동경제학으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게리 베커 교수도 똑같은 해법을 제시한다. 처벌 수준을 확 끌어올리고 범죄 수익을 확실히 회수하는 것이다.
  
저승사자 증권범죄합수단 부활시켜야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

미국과 유럽의 사모펀드 시장은 믿음과 신뢰가 잣대다. 뛰어난 운용능력과 다양한 경험이 확인된 펀드로 자금이 몰리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사모펀드는 인맥과 후광이 좌우하는 분위기다. 최근 말썽을 일으킨 사모펀드 중에는 조국 전 장관의 5촌 조카 조범동, 장하성 전 정책실장의 동생 장하원의 디스커버리자산운용 등 실세와의 인맥을 내세운 경우가 적지 않다. 그 결과 모험자본의 상징이던 사모펀드가 어느새 범죄의 온상으로 변질돼 버렸다.
 
사기는 재범률이 38.8%로 일반 사건의 3배나 된다. 특히 지능적인 금융사기는 가정을 파괴하고 사회적 신뢰를 훼손하는 악질 범죄다. 범죄 수법도 교묘해지고 있다. VIK는 수익률을 명시적으로 보장하면 불법 유사수신으로 처벌받는 것을 피하려 ‘확정수익 추구형 상품’으로 포장해 투자자를 속였다. 라임 펀드 역시 한쪽 자펀드가 환매중단의 위기에 빠지면 다른 우량 자펀드의 자금을 쏟아붓는 꼼수를 썼다. 옵티머스 주범들은 도주 시나리오를 포함한 ‘펀드 하자 치유 문건’까지 만들었다.
 
이제라도 금융사기범들에겐 공포감을 부를 저승사자가 필요하다. 이런 지능적 사기는 웬만한 특수부 검사라도 10년 이상의 경험이 쌓이지 않으면 파헤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해체시킨 증권범죄합동수사단부터 부활시켜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금융사기가 터질 때마다 특검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고개를 들 수밖에 없다.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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