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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금융허브 변방으로 밀려난 한국

중앙일보 2020.10.27 00:22 종합 29면 지면보기
오영환 지역전문기자 겸 대구지사장

오영환 지역전문기자 겸 대구지사장

한 달 전 나온 국제금융센터지수(GFCI 28) 보고서는 두 가지가 놀랍다. GFCI는 영국 싱크탱크 지옌(Z/Yen)이 해마다 3월, 9월에 내는 금융허브 도시 경쟁력의 대표적 잣대다. 하나는 홍콩의 순위다. 올 3월 뉴욕·런던·홍콩의 철의 3강 구도는 깨졌다. 홍콩이 6위로 내려앉으면서 “올 것이 왔다”는 해석도 없잖았다. 홍콩은 이번에 1단계 올라가면서 싱가포르와 순위를 맞바꿨다. 톱 10 순서는 뉴욕·런던·상하이·도쿄·홍콩·싱가포르·베이징·샌프란시스코·선전·취리히다. 서울은 25위다.
 

국제금융센터 지수 서울 25위인데
도쿄, 상하이·베이징·선전은 톱10
동북아 금융허브 전략 재검토해야

홍콩과 싱가포르의 역전은 의외다. 중국의 강권 지배와 이에 맞선 미국의 제재 움직임으로 홍콩의 자본·인재 이탈이 예상돼온 터였다. 현재 홍콩의 안전판은 본토 기업의 상장과 투자다. 본토 기업은 홍콩증권거래소 상장사 수의 절반이다. 시가총액으론 80%다. 2018~19년 모두 기업공개(IPO)를 통한 자금조달액이 세계 최대였던 배경이다. 홍콩의 활황은 엑소더스를 막는 방패막이다. 중장기적으론 홍콩의 금융허브 좌표축이 유동적일 것이라는 시각이 적잖다. 미·중 충돌의 지정학 리스크가 엄존한다.
 
중국의 약진도 주목거리다. 상하이·베이징·선전의 세 도시가 처음으로 10위권에 동시 진입했다. 상하이의 3위 입성도 상징적이다. 1990년 푸둥 지구 개발·개방 결정 이래 30년 만에 뉴욕·런던을 잇는 지위로 올라섰다. 국제금융센터 상하이는 중국의 비원(悲願)이자 국가 전략이다. 상하이는 중국 금융 자유화·국제화의 시험대다. 홍콩·런던과 주식 상호거래제를 도입하고 채권시장 개방을 선도했다. 중국은 올 초 상하이 금융허브 건설을 가속하는 새 정책 지침을 내렸다. 상하이를 금융 패권의 심장부로 삼겠다는 생각일지 모른다.
 
선전의 상승세도 눈길이 간다. 선전과 상하이는 1992년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의 남순강화(南巡講話)에 나선 곳이다. 중국은 GFCI 핀테크 경쟁력 분야서도 두드러졌다. 5개 도시가 10위권에 포진했다(서울 18위). 세계의 공장·시장에서 다시 금융 허브로 용트림하는 중국의 파죽지세는 차라리 두렵다.
 
서소문 포럼 10/27

서소문 포럼 10/27

일본 도쿄는 3월 3위에서 한 단계 떨어졌다. 오사카는 39위다. 홍콩 사태 이후 일본 정·관계는 국제금융도시 구상으로 부산하다. 총리·자민당, 도쿄도 지사가 전면에 등장했다. 스가 총리는 세제 조치와 행정의 영어 대응, 외국인 체류자격 문제에 속도감 있게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외국 인재의 소득·상속세, 외국기업의 법인세 인하를 고려하겠다는 얘기다.
 
자민당은 7월에 금융 인재 유입을 위한 프로젝트팀을 만들었다. 좌장은 JP모건 부사장 출신의 나카니시 참의원 의원이다. 스가는 9월 조각(組閣)에서 나카니시를 재무성 부대신에 발탁했다. 속이 훤히 보이는 포석이다.
 
도쿄도는 이미 관민 합동의 도쿄국제금융기구(핀시티 도쿄)를 가동 중이다. 런던과 연계해 해외 기업·인재 유치에 나서고 있다. 고이케 지사는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와 홍콩 정세를 고려하면 지금이 국제금융도시의 마지막 기회”라고 했다(산케이 기고문).
 
서울은 3월 33위에서 8단계 올라갔다. 부산은 11단계 올라간 40위다. 순위는 뛰었지만 중·일과 비교가 안 된다. 전반적 흐름도 퇴보 국면이다. 서울은 2012~15년 6위 두 번을 포함해 4년 연속 10위권에 들었다. 2003년 동북아 금융허브 로드맵 마련 이래 쌓아 올린 공든 탑에 큰 금이 간 상태다. 외국계 금융회사는 162개로 2016년(168개) 이래 감소세다. 진입보다 철수가 많다. 동북아 중심 일보 직전서 변방으로 밀려난 것은 뼈아프다.
 
금융 허브의 장벽은 여전하다. 높은 법인세·소득세, 경직된 노동시장, 불투명한 금융 규제 등등. 그나마 규제 완화의 산물인 사모펀드는 사기 범죄의 온상이 됐다. 여기에 주요 금융 공공기관 6곳이 지방으로 이전했다. 지금은 국책은행도 검토 대상이다. 국가균형발전은 헌법상 의무지만, 금융은 집적(集積) 효과의 산업이다. 정치 주도의 기계적 분산이 아닌 금융 경쟁력을 고려한 대안이 긴요하다.
 
GFCI 순위로 본 국제 금융센터는 다극화 경향이다. 중국이 가세하면서다. 인도가 따라올 날도 머잖았다. 국제 금융 허브를 둘러싼 각축은 불가피하다. 한국은 해양과 대륙 세력의 교차로다. 통일의 뉴프런티어도 갖고 있다. 금융허브 비전이 여기서 멈춰선 안 된다. 새 질서의 여명기인 지금은 전략을 원점에서 재검토해볼 기회다. 금융 중심 도시의 경쟁력과 매력에 나라의 앞날이 달려 있다.
 
오영환 지역전문기자 겸 대구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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