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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에너지 정치

중앙일보 2020.10.26 00:15 종합 33면 지면보기
강기헌 산업1팀 기자

강기헌 산업1팀 기자

때는 1973년 10월 6일.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중동전쟁이 발발했다. 곧바로 원유가격이 요동쳤다. 배럴당 2.9달러 수준이던 원유가격은 74년 1월에는 11.6달러로 4배 폭등했다. 1차 오일쇼크다.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물가가 폭등했다. 주요국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스태그플레이션의 시작이다.
 
오일쇼크는 국가 에너지 정책을 송두리째 바꿨다. 한국 정부는 원유 비축에 나섰다. 2002년 폐쇄된 마포 석유비축기지에는 당시 서울시민이 한 달 정도 소비할 수 있는 석유를 보관했다. 미국 정부는 77년 8월 에너지부를 신설했다. 일본도 석유파동 무렵에 자원에너지청을 만들었는데 도쿄에선 연탄난로가 불티나게 팔렸다고 한다. 프랑스는 오일쇼크 직전  80%를 넘던 에너지 수입 비율을 50% 수준으로 낮췄다. 에너지 안보(energy security)가 각국 정책 요약서의 표지를 차지했다.
 
에너지 안보 앞에선 보수도 진보도 없다. 미국이 대표적이다. 재생에너지 확대를 내건 오바마 행정부는 2015년 11월 “원자력 발전이 향후 미국의 청정에너지 정책에서 주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트럼프 행정부도 다르지 않았다. 셰일오일·가스로 에너지 수출국 반열에 오른 미국이지만 원자력 발전을 내려놓지 않았다. 재생에너지의 경제성이 원자력 발전의 그것을 뛰어넘도록 시장 원리에 맡긴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40년 무렵에는 재생에너지 경제성이 원자력 발전을 넘어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국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에너지 99.5%를 수입하는 에너지 고립국이라는 대전제는 보기 좋게 무시되는 중이다. “정치가 검찰을 덮었다”며 검사장 한 명이 최근 검찰을 떠났는데 이보다 더한 게 에너지다. 국가 에너지 정책은 정치가 삼켜버린 지 오래다. 감사원 감사에선 에너지 정책을 총괄하는 산업부 고위공무원이 월성 1호기 경제성과 관련된 컴퓨터 파일 444개를 삭제한 게 확인됐다. 대통령 한 마디에 국가 에너지 안보는 바탕화면 휴지통에 버려졌다.
 
미래 세대를 위한 정책은 사라졌다. 바로 문재인 대통령이 국정과제로 제시한 사용후핵연료 영구저장소다. 골치 아프고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질 게 뻔한 국정과제는 청와대 캐비넷에서 3년 넘게 잠자고 있다. 
 
강기헌 산업1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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