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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가족] 류장훈 기자의 노트북

중앙일보 2020.10.26 00:04 건강한 당신 4면 지면보기
 조인찬 황반변성환우회장은 지난 12일 중앙일보 건강한 가족에 기고한 글에서 “시력을 점점 잃어 가고 있는 여러 (황반변성) 환우에게 정부는 한 줄기 빛과 같은 소식이 아닌 감염에 노출된 주삿바늘을 들이밀지 않기를 다시 한번 간곡히 바란다”고 호소했다. 무슨 사연일까. 이는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10월 발령한 ‘허가 또는 신고범위 초과 약제 비급여 사용승인에 관한 기준 및 절차’ 고시 전부 개정안에서 출발한다. 허가받지 않은 약제를 약사법령에 따라 지정된 의약품 임상시험 실시기관이 아닌 요양기관에서도 허가 범위를 초과해 사용 가능한 약제를 결정하는 절차를 신설한다는 것이 골자다. 즉 의약품의 허가 범위를 초과해 사용하는 것이 개원가에서도 가능해진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 개정안의 첫 대상으로 항암제인 아바스틴(성분명 베바시주맙)이 지목되고 있다. 사실상 일반 병·의원에서도 이 항암제를 황반변성과 같은 망막 질환 치료에 허가사항을 초과해 사용하는 것이 검토되고 있는 것이다. 아바스틴은 대장암 등에 사용되는 약으로, 이미 대학병원 등 대형병원에서는 망막 치료제로 사용되고 있다. 망막 치료에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효과가 아니다. 이 항암제가 망막 질환 치료 목적으로 사용할 때는 항암 치료 용량 기준 10분의 1, 20분의 1 정도의 소량만 사용한다. 실제 의료 현장에서는 관행적으로 나눠서 주사하고 있다.
 
즉 이런 관행이 지속할 경우 개원가에서 안전성과 관련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없을까가 관건이다. 지나친 우려는 아니다. 주사에 의한 감염 사례는 적지 않게 경험한다. 실제 2017년 한 대학병원에서 오염된 주사제 분주(分注)에 따라 발생한 신생아 사망 사건이 아직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안전 절차와 제재를 제대로 숙지하지 않은 관행적 행동이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 어디에도 의원급 의료기관이 아바스틴과 같은 약물 분주를 위한 시설을 제대로 갖추도록 제재하는 세부 가이드는 찾아볼 수 없다. “환자 안전이 우려된다”는 조 회장의 주장에 납득이 가는 대목이다.
 
현재 아바스틴 허가초과 사용은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기본적인 약물 사용에 대한 평가 부분을 받았고 진료심사평가위원회를 통해 전체 확대 여부를 타진해 보는 절차가 남았다.
 
지금이라도 아바스틴의 관행적 분주를 바로잡고 환자들이 안전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분주에 대한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지난 3월 아바스틴의 안과 사용은 허용하지만 사용 시 적절한 안전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분명히 한 영국 법원의 결정과 안과 질환에 사용할 때 지정된 업체에서 분주해 시판되는 아바스틴을 사용하도록 한 미국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황반변성은 시력을 잃어가는 질환이다. 흐릿한 시력이라도 붙잡고 있는 환자들의 희망과 안전을 관행이라는 명목으로 무시해선 안 된다.
 
류장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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