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열, '회귀' 연작, 1987, Oil on canvas, 195 x 330cm.[사진 갤러리현대]](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010/25/dc036c4d-e1e7-4144-b865-0e58158698e1.jpg)
김창열, '회귀' 연작, 1987, Oil on canvas, 195 x 330cm.[사진 갤러리현대]
![김창열, '회귀' 연작, 1991, 캔버스 위에 한지, 먹과 아크릴, 130.3x162.2cm. 초록 바탕에 천자문의 첫 두 구절인 '천지현황 우주홍황(天地玄黃 宇宙洪荒)'이라 쓰여 있다. [사진 갤러리현대]](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010/25/9399d761-5cfc-4d08-83c9-bf70b00059e7.jpg)
김창열, '회귀' 연작, 1991, 캔버스 위에 한지, 먹과 아크릴, 130.3x162.2cm. 초록 바탕에 천자문의 첫 두 구절인 '천지현황 우주홍황(天地玄黃 宇宙洪荒)'이라 쓰여 있다. [사진 갤러리현대]
갤러리현대서 'The Path' 23일 개막
미술계 "생전 마지막 전시될까" 걱정
문자와 물방울 만남 집중 재조명
"삶의 무상성 현대적 해석" 평가
그는 물방울로 말했다
![김창열, Le Figaro, 1975, 신문에 수채, 53.5x42cm. [사진 갤러리현대]](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010/25/309fef57-0f7b-4c1d-8881-f07f09e2f360.jpg)
김창열, Le Figaro, 1975, 신문에 수채, 53.5x42cm. [사진 갤러리현대]
이번 전시는 '문자와 물방울의 만남'에 방점을 찍었다. 이를테면 1층 전시장에서 소개한 1975년 작 '휘가로지'는 김창열의 물방울이 문자와 처음 만난 기념비 같은 작품이다. 작가는 세 명의 무장 강도가 은행을 털었다는 기사와 처칠의 전시회 풍자만화가 실린 프랑스 신문 1면 위에 수채 물감으로 투명한 물방울을 그려 넣었다. 한자의 획을 연상시키는 추상적 이미지와 물방울이 만난 1987년 작 '회귀(Recurrence)' 연작도 단연 눈길을 끈다. 캔버스에 스며든 듯한 획의 이미지와 물방울들이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다.
1972년 시작한 물방울 회화
![문자와 물방울의 만남에 초점을 맞춘 갤러리 개인전 'The Path'가 열리고 있는 전시장. [사진 갤러리현대]](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010/25/b11d872a-cbef-42a3-9107-89dcfaf5de01.jpg)
문자와 물방울의 만남에 초점을 맞춘 갤러리 개인전 'The Path'가 열리고 있는 전시장. [사진 갤러리현대]
![김창열 화백은 2000년대 이후 화면에 다채로운 색을 도입했다. [사진 갤러리현대]](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010/25/6e338202-5e86-4320-a929-a22bd6049d29.jpg)
김창열 화백은 2000년대 이후 화면에 다채로운 색을 도입했다. [사진 갤러리현대]
물방울의 발견은 우연이었다. 1972년 파리에서 작업할 당시 "밤새도록 그린 그림이 마음에 안 들어 유화 색채를 떼어내고 캔버스를 재활용하기 위해 물을 뿌려놨는데 물이 방울져 아침 햇살에 빛나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 순간 존재의 충일감에 온몸을 떨며 물방울을 만났다"고 회고했다. 그해 파리에서 열린 전시 '살롱 드 메'에서 물방울 회화를 처음 선보였고, 2009년 프랑스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온 이후 지난해까지 물방울 그림에 반평생을 바쳤다.
문자 주변에 물방울, '회귀'연작
![김창열, '회귀' 연작, 1989, 캔버스에 얹은 한지, 먹과 아크릴, 193.9x130.3cm. [사진 갤러리현대]](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010/25/d9910982-2e5f-425c-8ce6-d896e49a570b.jpg)
김창열, '회귀' 연작, 1989, 캔버스에 얹은 한지, 먹과 아크릴, 193.9x130.3cm. [사진 갤러리현대]
이번 전시엔 초록 바탕에 천자문의 첫 두 구절인 '천지현황 우주홍황(天地玄黃 宇宙洪荒)'이라 쓴 '회귀' 연작도 눈에 띈다. 그는 천자문을 쓰면서 한지와 먹 등 동양화 재료를 적극적으로 썼다. 농담을 다르게 쓴 글자를 겹겹이 교차시키며 쌓은 문자로 화면을 뒤덮기도 했고, 추상표현주의 화가 잭슨 폴록처럼 물감을 뿌리고 그 위에 라텍스로 만든 한자를 붙였다 떼어내며 입체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단정한 글씨가 한쪽에 빼곡하게 자리한 대형 화면에 단 한 방울의 물방울이 마주하고 있는 1991년 작 '회귀'는 독특한 균형감 면에서 압권이라 할 만다.
마지막에 우리는 모두 사라진다
![김창열, '회귀' 연작, 1991, 캔버스에 먹과 유채, 197 x 333.3cm.[사진 갤러리현대]](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010/25/e146685e-c272-4c02-a261-b5addee8949c.jpg)
김창열, '회귀' 연작, 1991, 캔버스에 먹과 유채, 197 x 333.3cm.[사진 갤러리현대]
일본 미술평론가 주니치 쇼다는 "김창열의 회화를 단순한 리얼리즘 회화로 파악해서는 안 된다"며 "스쳐 가는 시간 속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물방울의 온갖 모습이 여기 담겨 있다. 요컨대 그것은 시간의 회화"라고 말했다. 이어 "물방울 회화에서 화가의 의도는 다름 아닌 화면의 구성에 담겨 있다. 얄궂을 정도로 정묘한 구성, 시적인 공간의 아름다움과 질서가 화면을 지배한다. 여기에는 동양의 전통적인 공간 감각이 살아 있다"고 보았다.
1988년 도쿄 전시 당시 작가 스스로 물방울에 대해 밝힌 대목도 있다. "물방울을 그리는 것은 모든 사물을 투명하고 텅 빈 것으로 만들기 위해 용해하는 행동"이라며 "나는 나의 자아를 무화시키기 위해 이런 방법을 추구하고 있다."
빛을 머금고 있는 투병한 물방울, 그 안엔 오래 전 작가를 전율하게 했던 충일감과 텅 빈 것으로 나아가기 위한 그 치열한 과정이 모두 담겨 있는 셈이다. 전시는 11월 29일까지.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