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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창수 "이건희는 영원한 일등. 나라 사랑한 애국경영인"

중앙일보 2020.10.25 16:15
2011년 3월 허창수 전경련 회장(왼쪽)과 이건희 삼성 회장. 중앙포토

2011년 3월 허창수 전경련 회장(왼쪽)과 이건희 삼성 회장. 중앙포토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은 25일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에 대한 추도사에서 “당신은 영원한 일등이십니다”며 “저희 후배들은 회장님의 그 큰 뜻을 소중히 이어받아 일등의 길을 걸어가겠습니다”고 명복을 빌었다. 허 회장은 “회장님은 더 나은 미래국가 건설을 위해 애쓰시며 누구보다 나라를 사랑하셨던 애국 경영인이셨다”며 “이제는 먼 곳으로 보내드려야 한다니 가슴 속 깊숙이 느껴지는 비통함과 허전함을 감출 수가 없다”고 했다.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이 회장직을 맡은 대한상공회의소도 이날 “이 회장은 파격의 혁신 경영을 통해 새로운 산업인 반도체와 모바일 등 첨단 분야에 도전함으로써 삼성을 글로벌 초우량기업으로 키워냈다”며 “고인의 도전과 혁신의 정신을 계승, 발전시켜 갈 것”이라고 밝혔다. 대한상의는 “이 회장은 삼성의 변신과 성공을 주도하며 우리도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고 덧붙였다.
 
중소기업 이익단체인 중소기업중앙회도 같은 날 논평에서 “고인은 평소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한배를 탄 부부와 같다며 함께 살아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며 “1997년 경기 용인에 중소기업 인재양성을 위한 ‘중소기업인력개발원’ 건립을 지원하며 특별한 인연을 이어왔다”고 소개했다. 중기중앙회는 “이후에도 중소기업과 공동 기술개발을 위해 혁신기술기업협의회를 운영해 협력사의 경쟁력을 키웠다”며 “중소기업 스마트공장 구축을 지원하는 등 대ㆍ중소기업 상생과 동반성장을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왔다”고 밝혔다.
 
대기업들도 일제히 애도의 뜻을 표했다.
현대자동차그룹 고위 관계자는 "고인은 삼성의 오늘을 이끈 최고경영자였던 동시에 한국 경제에 큰 발자취를 남긴 분이셨다"라며 "이건희 회장의 별세는 한국 경제 발전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우리나라 산업계의 대표 리더 중 한 분을 잃었다는 점에서 애석한 일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밝혔다.
 
SK그룹 고위 관계자도 "이건희 회장은 최종현 SK그룹 선대 회장께서 전경련 회장(1993~98) 하실 때 든든한 우군이 되어주셨던 분"이라며 "우리나라에 큰일 하셨고, 우리 회사도 다 같은 뜻의 애도를 하고 있다. 그의 발자취가 큰 울림이 돼서 계속 국가 경제 발전에 원동력이 됐으면 좋겠다”며 애도의 뜻을 나타냈다. 
 
전자를 비롯한 다양한산업 분야에서 삼성과 경쟁했던 LG그룹의 고위관계자 역시 “국가 경제 발전에 큰 기여를 하신 분이다. 우리와 업종이 많이 겹치는 경쟁 관계로지내왔지만, 이건희 회장의 리더십과 추진력이 위대하다는 점에 대해선 우리도 이견이 없다"라며 "우리도 계속해서 그의 뜻을 교훈 삼아 국가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생각뿐이다”고 말했다.
 
최선욱 기자 isotope@joongang.co.kr
이명박 대통령 재임 당시 열린 30대기업 총수 만남. 중앙포토

이명박 대통령 재임 당시 열린 30대기업 총수 만남. 중앙포토

허창수 전경련 회장 추모사
당신은 영원한 일등이십니다.
 
이건희 회장님
 
잘 있으라는 작별의 말씀도 없이 이렇게 홀연히 떠나시는 것입니까? 병상에서 일어나시어 건강한 모습으로 뵙기만을 기다렸는데, 이렇게 황망히 떠나시니 슬픔과 충격을 주체할 길이 없습니다. 대한민국 경제계의 큰 어른으로서 우리 기업이 나아가야 할 길을 알려 주시고 사회의 아픈 곳을 보듬어 주시던 회장님이셨습니다. 이제는 먼 곳으로 보내 드려야 한다니 가슴 속 깊숙이 느껴지는 비통함과 허전함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돌이켜보면, 회장님은 반도체 산업을 이 땅에 뿌리내리고, 대한민국 미래 먹거리를 만들어 사업보국을 실천하신 기업인이셨습니다.
 
회장님은 우리나라에서 전자제품을 가장 많이 구입하고 분해하셨을 정도로 무수한 전자기기를 다루시어 일찍이 반도체의 중요성을 깨달으셨습니다. 1970년대 두 차례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자원이 부족한 한국이 살 길은 바로 부가가치가 높은 반도체 산업이라는 확신을 얻고 사업을 결심하셨습니다.
 
하지만 불확실성이 크고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사업이기에 그룹 차원의 추진이 어렵게 되자, 직접 사재를 털어 작은 반도체회사를 인수해 사업을 추진하셨습니다. 우리 민족은 젓가락 문화라 손재주가 좋고 주거생활에서 청결을 중요시하기에 반도체 산업에 적합하다며 가능성과 당위성을 설파하셨습니다. 반도체를 향한 회장님의 열정과 노력은 마침내 1983년 삼성의 반도체 사업진출이라는 결실을 맺었습니다.
 
회장님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결단력과 리더십을 발휘한 승부사이셨습니다.
  
1987년 4메가 D램 개발방식에서 회로를 위로 쌓는 스택으로 할 것인가 밑으로 파는 트렌치로 할 것인가 아무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자 회장님께서는 스택으로 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위로 쌓는 방식이 단순하고 문제가 생겨도 쉽게 고칠 수 있다 하시며 결단을 내리신 것입니다. 이후 트렌치 방식을 선택한 경쟁사들은 대량생산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수율 하락을 경험했고 이는 후발주자였던 삼성이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93년초 회장님께서는 반도체 집적회로를 만드는 웨이퍼의 크기를 6인치에서 8인치로 키워 양산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실패하면 1조원 이상의 손실이 예상돼 주변의 반대가 심했지만, 회장님께서는 성공하면 생산량을 2배로 늘릴 수 있다며 세계 1위가 되기 위해 과감한 투자로 월반하자고 하셨습니다. 같은 해 일본의 경쟁사와 16메가 D램을 동시에 개발하였지만 8인치 웨이퍼의 막강한 생산량을 바탕으로 일본을 따돌리고 마침내 93년 10월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1위로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회장님은 ‘변해야 살아남는다’고 외치던 개혁가이셨습니다.
 
1993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이른바 ‘신경영 선언’을 하셨습니다. 국제화 시대에서는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가 된다고 하시며 장장 68일 동안 1800명의 임직원들과 간담회를 가지셨습니다. 국내에서는 일류기업일지라도 세계무대에서는 한참 뒤쳐져 있다는 냉정한 자가진단을 내리시고 위기의식을 가지고 도약해 나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신경영을 선언한지 20년이 되던 2013년 6월에는 “앞으로 우리는 1등의 위기, 자만의 위기와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한다. 자리에 머물지 말고 앞서서 달려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추격자에서 선도자로 위치가 바뀌어도 경쟁자들과 초격차를 벌이려는 회장님의 개척정신과 일류주의의 발현이었습니다.
 
미래를 향한 뚝심 있는 전진은 연구개발, 우수인재 발굴에 대한 막대한 투자로 고스란히 이어졌으며, 이는 기술도 자원도 없는 한반도에 4차산업 혁명을 선도하는 세계 1위의 반도체, 휴대폰, 디스플레이, 2차전지 같은 첨단산업을 일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회장님은 품질에 있어서 타협하지 않는 완벽주의자이셨습니다.
 
1995년 삼성전자 구미공장에서의 ‘불량제품 화형식’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무선전화 제품출시를 서두르다 불량률이 높아지자, 불량을 근절하자는 회장님의 단호한 의지 하에 15만대의 무선전화기들이 불구덩이 속으로 내던져졌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임직원들의 표정에서는 비장한 결의가 느껴졌으며 국민들에게도 회사의 철저한 반성과 다시 시작하겠다는 다짐이 전해졌습니다.
 
“이제는 양에서 질로 전환하자”를 선언하시고 불량품이 있으면 생산라인 가동을 전면중단하는 등 품질관리에 집중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품질은 직원들의 인격이자 고객존중의 표현이며 세계 일류기업으로 가는 원동력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품질로 인한 손해는 본인이 감수하겠으니 최우선 순위로 하라 하시며 강한 책임감과 방향성을 보여주셨습니다.
 
회장님은 더 나은 미래국가 건설을 위해 애쓰시며 누구보다 나라를 사랑하셨던 애국경영인이셨습니다.
 
 
우리 경제가 살 길은 인재양성 밖에 없다고 하시며 장학재단을 만들어 ‘한국을 위해 일한다’는 단 한 가지 조건을 약속 받고 해외유학생들을 선발하셨습니다. “인재양성은 사과를 얻는 것이 아니고 사과나무를 심는 것이다”라며 이 땅에 인재를 키우는 토대를 만들고 나아가 전 세계 인재를 모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국가가 잘 되려면 국민, 정부, 기업이 하나가 되어 한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는 이른바 ‘삼위일체론’을 강조하셨습니다. 1993년 당시 기업이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공헌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며 국제자유무역도시 건설 등 20개의 SOC 프로젝트를 정부에 제안하기도 하셨습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 20년을 넘게 활동하시며 한국을 전 세계에 알리고 국격을 높이는데 힘을 보태셨습니다. 특히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하여 10차례에 걸쳐 170일 동안 지구 5바퀴가 넘는 21만km를 이동하셨습니다. 2011년 평창동계올림픽 개최가 발표되는 순간, 회장님께서는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국가를 위해 일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민간외교관으로서 헌신하신 회장님의 따뜻한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이건희 회장님,
 
오늘날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경제전쟁의 시대’로, 패자에게 도움의 손길도 보호해줄 이념도 사라졌다는 회장님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이제는 영원한 적과 동지도 없으며 나날이 강화되는 세계 각국의 보호무역주의는 우리 수출경제가 나아가야 할 길을 헤매게 합니다. 위기경영의 선구자이셨던 회장님의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지는 때입니다.
 
회장님께서 걸으셨던 길은 불굴의 개척정신으로 초일류기업을 넘어 초일류국가를 향한 쉼없는 여정이었습니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지만 기업은 각고의 노력으로 변신을 통해 얼마든지 새 생명을 얻고 영속할 수 있다는 말씀 잊지 않겠습니다.
 
“2등 정신을 버리십시오. 세계 최고가 아니면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저희 후배들은 회장님의 그 큰 뜻을 소중히 이어받아 일등의 길을 걸어가겠습니다.
 
이제 무거웠던 모든 짐 다 내려놓으시고 편안히 잠드시기 바랍니다.
 
2020. 10. 25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허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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