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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 별세] ″마누라 자식 빼곤 다 바꿔라” 과감한 결단으로 이룬 초일류 기업의 꿈

중앙선데이 2020.10.25 11:47
2013년 신경영 20주년 만찬에 참석한 이건희 회장.

2013년 신경영 20주년 만찬에 참석한 이건희 회장.

 
 

1993년 6월 신경영 선언으로 혁신 시동
품질경영, 질경영, 디자인경영 등으로 대도약
TV·반도체·스마트폰 등에서 세계 1위에 올라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 1993년 6월 나온 신경영 선언의 핵심 내용이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 60년사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으로 꼽히는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을 계기로 초일류 삼성의 기틀을 닦았다. 당시 이 회장은 삼성가 분할을 거의 완료한 후 삼성전자 경영진을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불러 작심 발언으로 제2의 창업을 선언했다. 이 회장은 이 자리에서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라고까지 말했다. 그는 앞서 세탁기의 불량 부품을 칼로 깎아 조립하는 사내방송을 보고 격노했다. 또 독일행 비행기 안에서 삼성전자 조직의 문제점을 분석한 후쿠다 타미오 고문의 보고서를 읽으며 변화 의지를 다졌다.  
 
 
 
이후 삼성전자는 품질경영, 질경영, 디자인경영 등으로 대도약을 이뤘다. “품질을 위해서라면 생산·서비스 라인을 멈추라”는 지시로 시작된 ‘라인 스톱제’, “문제가 생기면 5번 정도는 이유를 따져보라”는 ‘5WHY’ 사고론, ‘디자인과 경영은 별개가 아니다’는 디자인경영론, 학력·성별제한을 없앤 ‘열린 채용’ 등의 혁신이 이어졌다. 특히 1995년 3월 9일 오전 10시, 신경영 선언 못지 않은 인상적인 장면이 또 나왔다. 이날 삼성전자 구미사업장 운동장에 2000여 명의 전 직원이 모인 가운데 애니콜과 무선전화기, 카폰, 팩시밀리 등 15만대가 쌓여 있었다. ‘품질은 나의 인격이요 자존심’이란 현수막 아래로 ‘품질 확보’란 머리띠를 두른 직원 10여 명이 해머로 제품을 부수고 불에 태웠다. 앞서 설 선물로 삼성 임원들에게 2000여 대의 휴대폰을 돌렸는데 “통화가 안 된다”는 불만이 나왔고 이를 이건희 회장이 전해 들은 것이다. 이 회장은 “돈 받고 불량품을 만들다니, 고객이 두렵지도 않나”라면서 제품 화형식을 지시했다. 당시 불에 태운 제품 가격만 500억원에 이르렀다. 1995년 당시 회사 전체 이익의 5%를 한순간에 불태운 결단이 애니콜 신화를 만든 원동력이 된 것이다. 이런 과감한 결정과 혁신 노력 덕에 삼성은 2006년 글로벌 TV 시장에서 일본 소니를 제치고 세계 1위를 차지했고, 애플을 따라잡고 스마트폰 시장 1위를 달성했다. 메모리 반도체를 포함해 20여 품목의 글로벌 1위를 일궈냈다. 고인이 삼성그룹 회장에 오른 1987년 1조원이던 삼성의 시가총액은 2012년 390조원대로 커졌다.
 
1987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취임식.

1987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취임식.

 
 
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1942년 대구에서 호암(湖巖) 이병철 삼성 창업주와 박두을 여사의 3남 5녀 중 일곱 번째이자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경남 의령 친가로 보내져 할머니 손에서 자란 고인은 선진국을 배우라는 부친의 엄명으로 일본에서 중학교에 다녔다. 어린 시절 영화 감상과 애완견 기르기 등에 심취했고 서울사대부고 재학 시절에는 레슬링부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서울사대부고 졸업 후 일본 와세다대학 상학부와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수학했다.  
 
 
 
1970년대 이 회장은 미국 실리콘밸리를 누비며 하이테크 산업 진출을 모색했다. 이어 1978년 삼성물산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삼성그룹 후계자로서 경영수업을 시작했다. 애초 형인 고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이 경영권을 물려받을 것으로 보였지만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호암의눈 밖에 나면서 이건희 회장이 후계자로 낙점됐다. 이 회장은 이병철 창업주 별세 이후 46세이던 1987년 12월 삼성그룹 2대 회장에 올랐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왼쪽)와 유년시절 이건희 회장.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왼쪽)와 유년시절 이건희 회장.

 
 
이 회장은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인으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각종 수사로 홍역도 치렀다.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시작된 삼성 비자금 사건으로 특검 조사를 받았다.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되자 2008년 회장직 퇴진과 전략기획실 해체 등을 발표했다.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재계·체육계 건의로 사면된 이 회장은 2010년 경영일선에 복귀해 삼성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헌신했다. 2010년 ‘위기론’, 취임 25주년인 2012년 ‘창조 경영’ 등을 내놓으며 ‘초일류 기업’의 꿈을 다졌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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